페테르 파울 루벤스: 예술작품으로 보는 그의 결혼생활과 사랑

페테르 파울 루벤스(Sir 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단순히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6개 국어에 능통한 박식한 외교관이자, 뛰어난 사업가, 그리고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이었다.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거대한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제단화, 초상화, 역사화, 풍경화, 드로잉은 물론, 대규모 실내 장식, 태피스트리 디자인, 책 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들을 쏟아냈다.
루벤스의 그림은 대담한 붓질,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 풍부한 색채, 그리고 극적인 빛의 효과가 특징이다. 신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경건한 가톨릭 성화를 통해 신앙심을 드러내며, 유럽 각지의 왕족들을 위엄 있게 그려냈다.
루벤스는 밀려드는 주문을 작업하는 중에도 가족 초상화를 그리며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이 작품들은 그의 예술 세계에서 가장 친밀하고 따뜻한 감성이 담긴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작가의 초상화, 1623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패널에 유화; 33 3/4인치 x 24 2/5인치. 영국 왕실 컬렉션. | Public Domain
거장의 시작: 루벤스의 남다른 성장기
위대한 플랑드르 화가 루벤스는 독일 지겐에서 태어나 1589년 가족과 함께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네덜란드의 안트베르펜으로 이주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고전 교육을 받으며 지성을 길렀는데, 이는 그의 지성미 넘치는 예술의 단단한 기반이 되었고, 13세에는 백작 부인의 시종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찍이 궁정문화를 접했는데, 이는 훗날 그의 예술적, 직업적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에는 안트베르펜에서 세 명의 화가 밑에서 견습 과정을 거쳤다.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1606–1608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캔버스에 유화; 121 3/5인치 x 101 3/16인치. 프라도 국립 박물관, 스페인 마드리드. | Public Domain
루벤스의 예술 여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1600년부터 1608년까지 이탈리아에서 보낸 시간일 것이다. 고대미술의 정수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 티치아노와 같은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 그리고 카라바조를 포함한 바로크 시대의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제노바, 만토바, 로마의 부유한 귀족들과 가톨릭 교회로부터 중요한 주문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사벨라와 행복의 꽃 피우다
1609년은 루벤스에게 기념비적인 해였다. 안트베르펜에 다시 자리를 잡은 그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통치자 알베르트 대공과 이사벨라 대공비의 궁정화가로 임명되는 영예를 얻게 됐으며 같은 해, 운명처럼 이사벨라 브란트(1591–1626)와 결혼했다. 결혼을 기념하며 그린 이중 초상화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의 인동덩굴 정원’은 서로 포갠 손을 통해 부부의 깊은 사랑과 유대감을 표현했다. 현재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에 소장돼 있다.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 인동덩굴 정원’, 1609–1610년경,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캔버스에 유화; 70인치 x 53 3/4인치. 알테 피나코테크, 독일 뮌헨. | Public Domain
이듬해에는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꿈을 실행했는데, 안트베르펜의 땅을 매입해 작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직접 설계했다. 안뜰을 갖춘 웅장한 이탈리아식 저택은 기둥 현관을 통해 잘 가꿔진 정원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현재는 대중에게 ‘루벤스하우스(Rubenshuis)’라는 박물관으로 공개돼 있다. 직업 면에서 그는 교회와 왕실의 잇따른 의뢰를 받으며 꾸준한 성공을 누렸고 개인적으로는 이사벨라 사이에서 세 자녀를 얻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가족의 성장하는 모습을 따뜻한 필치로 그림과 드로잉에 담아냈다.
그러나 행복은 영원할 수 없었다. 1626년 이사벨라가 사망하자(흑사병으로 추정) 루벤스는 슬픔을 견디기 위해 일에만 매달렸다. 스페인과 영국 왕실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중요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양국 왕실로부터 초상화, 역사화 등 수많은 작품을 의뢰받으며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벨기에 안트베르펜 루벤스 하우스 외부의 바로크 정원. | Jerrye and Roy Klotz MD/CC BY-SA 3.0
1630년, 루벤스는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했다. 헬레나는 안트베르펜의 부유한 상인이자 루벤스의 오랜 후원자이기도 했던 친구의 딸이었다. 당시 그는 또 다른 후원자 이사벨라 대공비로부터 ‘궁정 신사’로 인정받았고, 스페인의 펠리페 4세(대공비의 조카)로부터 귀족 작위를 부여받아 충분히 귀족 여성과 결혼할 수 있는 신분이었기에 그의 선택은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헬레나와 결혼하기 몇 년 전, 루벤스는 짚모자(Le Chapeau de Paille)로 알려진 작품을 그렸다.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인 이 초상화는 헬레나의 언니 수잔나 룬덴(1599–1643)을 카리스마 넘치는 여인으로 그렸다. 흥미롭게도 수잔나의 딸은 훗날 루벤스가 전처 이사벨라 사이에서 얻은 큰아들과 결혼했다.

수잔나 룬덴의 초상화 (‘짚모자’), 1622–1625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참나무 판에 유화; 31 1/8인치 x 21 1/2인치.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 Public Domain.
새로운 영감: 헬레나 푸르망, 루벤스의 마지막 뮤즈
루벤스는 헬레나의 아름다운 미모보다 당시 많은 귀부인에게서 흔히 보이던 허영심 없이 진솔한 그녀의 성품에 매료됐다. 결혼할 무렵 헬레나는 16세로 당시 52세이던 루벤스와는 상당한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부부는 자녀 다섯을 낳으며 행복하고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헬레나는 루벤스 생의 마지막 10년간 예술적 영감을 준 뮤즈였다. 루벤스는 아내를 단독 초상화로 또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 루벤스의 이상적인 여성상이었던 아내는 그의 신화적, 종교적 작품에도 꾸준히 등장하며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다.

웨딩드레스 차림의 헬레나 푸르망 초상화, 1630–1631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참나무 판에 유화; 64 1/2인치 x 53인치. 알테 피나코테크, 독일 뮌헨. | Public Domain
‘루벤스, 헬레나 푸르망, 그리고 그들의 아들 프란스’는 루벤스 말년에 탄생한 걸작 중 하나이다. 1635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유화는 말버러 공작 가문, 로스차일드 가문의 프랑스 지점, 그리고 찰스와 제인 라이츠만 부부를 거쳐 현재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루벤스, 헬레나 푸르망, 그리고 그들의 아들 프란스’, 1635년경,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나무에 유화; 80 1/4인치 x 62 1/4인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뉴욕. | Public Domain
‘사랑의 정원’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그림은 배경으로 루벤스의 집 정원을 이상적으로 표현했다. 카리아티드(여인상 기둥), 분수, 담쟁이덩굴 등 다산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고 성모 마리아의 모성을 상징하는 앵무새는 순수함이라는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루벤스는 헬레나와 다정하게 산책하고 있다. ‘인동덩굴 정원’처럼 아내와 부드럽게 맞닿은 손은 여전하지만, 젊은 아내의 손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의 손은 37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확연히 드러낸다. 루벤스의 어깨에서 옆구리 아래로 가로지르는 수대(발드리크)는 그가 귀족 신분임을 보여준다.
부부의 첫아이는 딸이었다. 그림에는 한 아이만 나오기 때문에, 오랫동안 학자들은 그림 속 아이가 루벤스의 장녀라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의상 전문가들은 아이의 납작한 칼라 깃과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맨 파란 띠가 당시 남아 의복인 데다 루벤스의 복장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현재는 그림 속 아이가 헬레나와 루벤스의 둘째 자녀, 아들 프란스가 보행 끈과 보호모자를 착용한 채 걷기를 배우는 모습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아내이자 아이의 어머니 헬레나이다. 아들 프란스와 남편 루벤스가 모두 그녀를 바라보면서 취하는 자세는 특히나 헬레나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학자들은 X선 촬영으로 패널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최종 완성된 그림에서는 루벤스가 헬레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세를 취하지만 작업 초기에는 그의 머리를 거의 정면으로 향하도록 그렸음을 밝혀냈다. 루벤스의 이러한 모습은 알테 피나코테크에 소장된 1640년 작품 ‘루벤스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의 정원’ 그림에서도 반복된다.

‘루벤스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의 정원’, 1640년경,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패널에 유화; 38 1/4인치 x 51 2/5인치. 알테 피나코테크, 독일 뮌헨. | Public Domain
루벤스의 예술은 북유럽의 사실주의, 이탈리아의 강렬한 표현력, 그리고 고전 조각의 웅장함을 결합한 혁신적인 스타일이었고 수세기 동안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의 개인적인 작품들, 전처 이사벨라와 후처 헬레나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은 인간적인 감성과 예술가로서의 창의성이 놀랍도록 조화롭게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임은혜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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