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술사상 가장 뛰어난 초상화 ‘제라늄을 든 루벤스 필’

‘필(Peale)’ 가문은 미국 역사상 가장 명망 높은 예술가 가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집안의 가장 찰스 윌슨 필(Charles Willson Peale , 1741–1827)은 저명한 자연주의자이자 혁신적인 박물관 설립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아들이 그린 가족 초상화로 유명하다. 17명에 달하는 자녀 중 대다수는 찰스 린네(Charles Linnaeus) 같은 과학자와 라파엘(Raphaelle), 티티안(Titian),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sola), 앙겔리카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 같은 거장 화가들의 이름을 따 지었고 실제로 그들은 뛰어난 과학자,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중 초상화가이자 역사화가인 렘브란트 필(Rembrandt Peale, 1778–1860)은 가장 성공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그린 초상화 ‘제라늄을 든 루벤스 필’은 ‘미국 미술사상 가장 뛰어난 초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미국 최고의 초상화가

1828년 렘브란트 필의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19인치 x 14 1/2인치. 디트로이트 미술관 | Public Domain
렘브란트 필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벅스 카운티에서 태어나 다른 형제자매들처럼 아버지에게서 미술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여 불과 13세에 첫 자화상을 그렸고 70년 가까운 화가 생활 중에 자화상 12점을 포함해 1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렘브란트 필은 학업과 미술 작업을 위해 당시 흔치 않게 미국 동부 해안을 두루두루 다니거나 장기간 해외에 머물렀다. 초기 화풍은 아버지와 스승 벤자민 웨스트의 영향을 받아 영국 초상화 학파식이었다. 그러나 이후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신고전주의를 받아들이면서 화풍을 바꿨고 미국 미술수집가들과의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조지 워싱턴, 미국 건국의 아버지’, 1824년, 렘브란트 필, 캔버스에 유화; 72 1/4인치 x 54 1/4인치.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 소장 | Public Domain
렘브란트 필은 10대 때부터 조지 워싱턴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아버지 찰스 윌슨 필의 기여가 컸다. 그는 아들이 당시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직접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줬고, 단 한 번의 그 만남 이후 렘브란트 필은 무려 79점의 초상화를 남겼다. 조지 워싱턴을 시적이고 영웅적인 이미지로 묘사한 이 작품들은 정부기관과 후원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동생 루벤스 필

동생 루벤스. 1807년 렘브란트 필이 그린 루벤스 필의 초상화. 캔버스에 유화; 26 1/4인치 x 21 1/2인치. 미국 워싱턴 국립 초상화 갤러리 | Public Domain
동생 루벤스 필(Rubens Peale)은 시력이 나빠 예술가로서 기대받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미술을 배우는 대신 가족 – 아버지, 형 렘브란트 필, 그리고 자신이 각자 설립한 여러 박물관을 운영 및 관리했다. 또한 정원사, 농부, 선구적인 식물학자로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놀랍게도 71세가 되어 딸 메리 제인 필에게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고 그도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루벤스 필의 작품은 삼촌 제임스와 형 라파엘의 작품을 연상시킬 만큼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라파엘은 미국 최초의 정물화 전문 화가로 알려져 있음). 그가 남긴 작품은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단연코, 그가 81세로 사망한 해에 그린 ‘수박이 있는 정물’일 것이다.

1865년 루벤스 필의 ‘수박이 있는 정물’. 캔버스에 유화; 19인치 x 27 1/2인치. 프린스턴 대학교 미술관
1801년 작품 ‘제라늄을 든 루벤스 필’은 현재 미국 국립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다. 1985년 J.카터 브라운(J. Carter Brown) 당시 국립미술관장은 소더비 경매에서 이 작품을 구매하면서 “사랑스러운 그림이자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 있던 미국의 위대한 회화 중 하나인 이 작품이 이 위대한 화가를 배출한 미국에 돌아오게 돼 정말 기쁘다”라고 말했다. 가격은 당시 미국 회화 최고가에 버금가는 4백만 달러 이상이었다.
필 가문의 이중 초상화

필의 이중 초상화. 1801년 작 렘브란트 필의 ‘제라늄을 든 루벤스 필’. 캔버스에 유화; 28 1/8인치 x 24인치.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 | Public Domain
렘브란트 필이 이 작품을 그리던 당시 그는 23살, 모델인 동생은 17살이었다. 이 작품에는 루벤스 필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재배된 최초의 제라늄 표본이라며 오래 제기돼 온 중요한 식물의 모습도 담겨 있어 이중 초상화라 할 수 있다. 또한 렘브란트 필의 초기작 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작품으로서 사실주의를 표현하는 그의 뛰어난 기술을 엿보게 한다. 그림 속 인물과 식물 모두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있어 감정적 몰입을 이끄는데, 모델의 복숭앗빛 뽀얀 살결부터 테라코타 화분까지, 렘브란트가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익힌 인물, 빛, 질감 표현에 대한 탁월함을 드러낸다.
미국 국립미술관은 “(작품이) 확고하고 명확한 묘사, 섬세하게 조절된 색감, 그리고 세밀함에 대한 강한 몰입을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그림에서 루벤스는 흥미롭게도 안경을 쓴 채 왼손으로 또 다른 안경을 잡고 있는데, 안경에 반사되는 조명 빛과 루벤스의 눈 밑에 드리운 안경의 그림자는 빛과 반사를 능숙하게 묘사하는 렘브란트의 실력을 보여준다. 어린 루벤스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손은 화분에 얹어 두 손가락으로 흙의 습도를 확인하면서 제라늄과 교감하고 있다. 형제는 각자 자신이 맡은 대상에게 세심한 태도로 임하는데, 형은 모델인 동생에게, 동생은 소중히 여기는 식물에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있다.
루벤스 필의 외동딸 메리 제인 필(Mary Jane Peale)은 이 작품의 배경과 제작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에 따르면 처음에는 루벤스가 안경을 쓰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작업이 완성됐을 때 렘브란트는 미적인 측면에서 안경 쓴 모습이 더 낫다고 판단했고 다만 이미 완성된, 안경 잡은 손은 원래 묘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 그녀는 또한 “식물이 미국에 처음 들어와 재배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록은 학자들에게 매우 귀한 자료가 됐다.

1732년 요한 야코프 딜레니우스의 ‘Hortus Elthamensis’에 실린 펠라르고늄 인퀴난스 삽화 | Public Domain
미술사학자들은 이 식물이 미국에서 최초로 재배된 제라늄이 아니라, 제라늄 의 특정한 첫 품종, 즉 ‘펠라르고늄 인퀴난스(Pelargonium inquinans)’일 것으로 추정한다. 원산지가 남아프리카인 펠라르고늄은 18세기 초 유럽에 전해져 현재까지 제라늄이라 불리지만 두 식물은 서로 다른 속(genus)에 속한다.
19세기 초 미국에서 펠라르고늄 재배 기술은 곧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미국 국립미술관은 렘브란트 필이 초상화에 다홍색 펠라르고늄을 넣은 이유가 ‘동생이 펠라르고늄 재배에 성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메리 제인 필의 기록에 따르면, 초상화의 진짜 주인공은 펠라르고늄이었다.
렘브란트 필의 작품 ‘제라늄을 든 루벤스 필’에 대한 사랑과 인기는 오늘날 생활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정원사들은 여전히 펠라르고늄을 기르며 감상하고 있으며, 미국의 전통 도자기 제작사 가이 울프(Guy Wolff)는 루벤스의 화분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끈 모양의 테두리로 장식된 단순하고 우아한 18세기식 화분 ‘필팟(Peale Pot)’을 판매하고 있다. 누구나 집에서 필팟으로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할 수 있다.
*임은혜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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