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中 ‘정의구현’ 신상털기 확산… 당국 “무관용 단속” vs “권력 감시 순기능”

2025년 06월 02일 오후 2:07

당국 “사생활 침해 방지”… 비판 측 “특권층 부패 감시 차단”
공안이 유출 진원지? 개인정보 거래업자 “공안과 수익 나눈다” 폭로도

중국 당국이 최근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카이허(開盒·신상털기)’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강력한 단속에 나섰다.

당국은 이를 ‘사회 안정과 온라인 질서 유지’ 차원에서 추진한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특권층의 부패를 폭로해 온 시민 기자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한 조치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인터넷정보판공실은 최근 각 지방 정부와 주요 플랫폼에 ‘카이허’ 행위 근절을 명령하는 통지문을 내고, 실명제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책임 강화를 요구했다.

판공실이 개최한 대책 회의에는 웨이보, 텐센트, 더우인(틱톡), 콰이쇼우, 바이두, 샤오훙슈, 즈후, 빌리빌리, 더우반 등 중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들이 일제히 소환됐다.

중국 관영매체에서는 ‘카이허’를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온라인 괴롭힘으로 규정하며 당국의 엄정 대응 방침에 힘을 실어주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공산당 당국이 지목한 ‘카이허’란 상자를 연다는 의미이지만, 중국 온라인에서는 타인의 실명, 사진, 신분증 번호, 주소, 전화번호, SNS 계정 등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하고 유포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국의 ‘신상털기’와 유사한 개념이다.

당국은 이를 사생활 침해 및 불법 정보 유포로 규정하고 전면 단속에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견해도 제기하고 있다.

하나는 ‘카이허’가 억압된 사회 속에서 온갖 특혜와 부당한 권력을 누리는 특권층을 향한 시민 사회의 정의 구현 욕구를 해소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이허’는 중국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인물들에 대한 사적 제재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예컨대 ▲여성에게 집단 폭력을 행사한 탕산(唐山) 식당 사건 가해자들 ▲1억 원으로 추정되는 고가의 귀걸이를 과시해 공무원 아버지의 비리 의혹을 일으킨 17세 여배우 ▲각각 국영기업 고위 간부와 대학 부총장인 ‘부모 찬스’ 논란에 휘말린 유명 병원 의사 등이다.

이런 사건 대부분은 부패한 특권층과 관련됐다는 점에서 여론을 분노로 들끓게 했고, 온라인에서는 이들의 신상정보가 전격 공개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인들의 공분을 산 ‘탕산의 여성 집단 폭행 사건’ 역시 현지 공안과 가해자 간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다른 하나는 중국에서 유통되는 민감한 개인정보 일부는 해킹으로 유출된 것이 아니라, 공안 스스로 돈벌이를 위해 유출시켰다는 점이다.

중국 매체 남방도시보는 지난 3월, 개인정보 불법 거래 실태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포착했다. 한 기자가 동료 기자의 동의를 얻어, 해당 기자의 호적 정보를 구매하려 시도했다. 그러자 한 판매업자가 “300위안(약 5만 원)”의 돈을 요구하며 거래에 응했다.

놀라운 것은 이 판매업자가 “이 중 240위안은 ‘공안 내부 사이트 캡처 비용’이라고 밝혔다”는 점이다. 또 다른 판매자 역시 “개인정보 판매 수익을 공안과 3대 7로 나눈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는 공안 관계자들이 직접 개인정보 유출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안 당국의 신상털기 엄정 대응 방침이 ‘제 식구 감싸기’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만의 정치사회 연구단체인 대만격려협회의 라이룽웨이 협회장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며 “중국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모든 공공 데이터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정보 유출은 단순한 사이버 보안상의 문제가 아니라, 당국 관계자들의 사적 이익 추구의 결과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직자로서의 윤리나 책임감이 무너진 상태에서,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는 공공 데이터를 개인적 돈벌이에 악용하는 것이 공공연한 관행이 됐다는 것이다.

무고한 피해자에 보복용 역공작까지…카이허의 두 얼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부패한 특권층의 신상정보에 대한 소셜미디어상의 폭로는 공산당 당국이 외면하거나 감추려 한 진실을 민간 여론이 드러낸 성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정보가 퍼지거나, 무고한 제3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도 있다. 잘못이 폭로된 가해자들이 선의의 신고자를 상대로 보복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잖다.

진멍(金萌)이라는 이름의 대학생은 동물 학대 영상을 신고했으나, 이에 앙심을 품은 이들이 그의 신상정보를 단톡방에 공개하는 바람에 수많은 스팸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았다.

틱톡에서 보이스피싱 등 다양한 사기 수법을 폭로해 인기를 끈 콘텐츠 제작자 촨례(川烈)는 그 자신의 신상정보가 노출돼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시사평론가 탕징위안(唐靖遠)은 “당국은 이번 무관용 단속 방침을 밝히며 게시물 삭제나 계정 일시정지 등 행정조치뿐만 아니라 형사처벌도 예고했다”며 “이 때문에 시민 사회의 자발적 감시 기능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카이허’ 단속을 명분 삼아, 각 플랫폼 업체에 이용자 정보 제공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대만격려협회의 라이룽웨이 회장은 “중국 플랫폼 업체들은 당국에 따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며 “당국은 이용자 정보를 이용해 통제 강도를 높일 것이고, 인터넷의 다양성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룽웨이 회장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시민 기자들의 사회 고발은 억압된 개개인의 울분을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 역할을 해왔다”며 “이마저 차단될 경우, 응축된 불만이 나중에 더 격렬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탕징위안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사생활 보호는 분명 중요한 가치”라며 “그러나 현재 중국 공산당 당국이 택한 방식은 공적 권력에 대한 감시마저 억누르고, 권력자의 민감 정보를 절대 금기시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분별한 ‘카이허’는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의 부패와 정권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민간의 자구적 반응이라는 맥락도 존재한다”며 “왜 시민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