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품 ‘원작’ 볼 때 감정반응, 복제품의 10배” 네덜란드 연구

로레인 페리에(Lorraine Ferrier)
2025년 02월 01일 오후 2:23 업데이트: 2025년 02월 01일 오후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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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실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복제품을 보는 것보다 10배 더 강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신경과학자들은 예술과 아름다움이 우리의 뇌와 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해서 밝혀내고 있다.

최신 신경학적 연구 결과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바로 원작 미술품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의 신경 심리학 교수인 에릭 셰르더(Erik Scherder)는 보도 자료를 통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뇌를 자극한다”며 “감정을 북돋우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뇌를 최대한으로 활성화하는 최상의 풍요로움이다”라고 설명했다.

시각적 예술 감상의 신경학적 경로

존스홉킨스대 ‘마음과 뇌 연구소’ 잔빌 크리거 소장과 신경과학 교수인 에드 코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이를 하나의 능력이나 과정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시각은 뇌가 수행하는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과정은 뇌의 복측시각경로에 있는 수십억 개의 뉴런 네트워크에서 비롯됩니다.”

베리빅브레인 웹사이트에 따르면, 감정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도체는 감정적으로 강렬한 예술 작품에 의해 활성화할 수 있다. 자아와 인식에 관여하는 섬엽(insula)은 특정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울림을 줄 때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 더욱이 예술 감상은 단일한 뇌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뇌 영역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이를 통틀어 ‘예술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이 네트워크는 감각적, 정서적, 인지적 영역을 포함해 예술과의 상호 작용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차원적인지를 잘 보여 준다.

미술과 신경과학의 만남

미술에 대한 신경과학적 연구가 서서히 진전을 보이고 있다. 2011년, 런던대학교 신경 미학과 학과장인 세미르 제키 교수는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할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자기 공명 영상(MRI)을 사용해, 연구 참가자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그림을 감상할 때 뇌의 욕망과 쾌락 영역인 안와전두피질 (안와 바로 위에 위치)에 혈류가 어떻게 증가하는지를 측정했다.

그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볼 때 혈류가 증가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혈류가 증가하는 것과 같다. 이는 예술이 뇌에 직접적으로 기분 좋은 감각을 유도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라고 말했다.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은 신경과학 연구자들에게 의뢰해, 관람객들이 미술관의 원작 그림을 감상할 때와 복제품을 감상할 때의 반응을 분석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 |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연구 참가자 20명은 시선을 추적하고 감정 반응을 측정하기 위해 시선 추적 안경과 뇌전도(EEG) 캡을 착용했다.

첫 번째 그룹 10명은 먼저 미술관에 전시된 원작 그림을 감상했다. 이 작품들에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 렘브란트의 ‘자화상’(1669),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의 ‘바이올린 연주자’(1626) 등 단일 인물화 세 점이 포함됐다. 또한 렘브란트의 다인물 작품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와 페르메이르의 도시 전경화 ‘델트프의 풍경’(1660-1661년경)도 감상했다.

이후 이들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의 도서관에서 세 점의 단일 인물화 복제 포스터를 관람했다.

나머지 연구 참가자 10명은 반대 순서로 그림을 감상했다. 그들은 미술관의 도서관에서 세 점의 복제품을 먼저 감상한 후, 미술관에 전시된 다섯 점의 원작을 감상하면서 반응을 측정했다.

연구자들은 암스테르담대학교에서 연구의 두 번째 단계를 진행했다. 연구자들은 20명의 참가자가 다섯 점의 그림 복제품을 감상하는 동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법(fMRI)을 통해 뇌를 스캔했다. 연구의 첫 번째 단계에서 수집했던 뇌파(EEG) 데이터에 ‘내재된 감정 반응’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연구 결과

연구팀의 분석 결과, 미술관에서 원작을 감상할 때의 감정적 반응이 복제품을 볼 때와 비교해 10배 더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독특한 관람 패턴을 보였다. 시선 추적 데이터 분석 결과, 관람객들의 시선은 소녀의 눈에서 시작해 입으로 이동한 뒤 진주 귀고리로 향하는 특정한 패턴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주의 지속 고리 현상’이라고 명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주의 지속 고리 현상이, 연구 대상이 된 다섯 점의 작품 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만 독점적으로 관찰됐다는 것이다. 이는 관람객들이 이 작품에서 특별히 더 오래 머무르며 깊이 있는 감상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 참가자들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감상하는 동안 경험한 ‘주의 지속 고리 현상(sustained attention loop)’를 나타낸 이미지. |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연구진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감상할 때 참가자들의 쐐기앞소엽(precuneus) 영역이 가장 활발하게 자극되는 것을 발견했다. 두 개의 대뇌 반구 사이의 뒷부분에 위치한 쐐기앞소엽은 자기 성찰, 자기 인식, 자의식, 그리고 에피소드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연구의 MRI 단계에서는 더욱 주목할 만한 발견이 있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감상한 참가자들은 부정적 감정을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위험과 혐오’ 측정치도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요인들이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림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의미를 성찰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결론지었다.

네덜란드 박물관협회의 베라 카라소 관장은 보도 자료를 통해 이번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현실의 복제본과 재해석된 결과물을 점점 더 많이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실제 예술품이나 물건들의 중요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정반대입니다. 실물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실제 예술 작품과의 만남은 복제품과의 만남보다 훨씬 더 강렬합니다.”

“이러한 효과가 이제 과학적으로 입증돼 뇌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한상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