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이념 갈등에 분단된 한국 뒤흔든 45년 만의 비상계엄

2024년 12월 05일 오전 11:00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10시 25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와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으로 구성된 계엄군이 국회 장악을 시도했다. 계엄군은 4일 자정쯤 헬기를 타고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해 의사당에 진입했다.

또한 경찰은 정부 지시에 따라 이날 오후 10시 50분부터 국회 외곽 출입구를 봉쇄하고 국회의원과 직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국회 건물 밖에는 이미 계엄 선포를 듣고 항의하려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집결해 있었다. 시민들은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으나 심각한 위기는 없었으며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했다.

경찰의 국회 봉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하기 위해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일부 시민들은 계엄군과 몸싸움을 벌이며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었다.

이날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은 전체 300명 중 190명이었다. 이들은 4일 오전 1시 1분, 190명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비상계엄이 내려지고 2시간 35분 만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요구안을 받아들여 평화롭게 계엄을 해제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국회와 시민들은 초조하게 대통령의 결정을 기다렸다.

4일 오전 4시 27분,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잠시 후인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이 의결되면서, 전날 오후 10시 30분 내려졌던 비상계엄이 해제됐다.

군 당국 역시 동원된 병력이 모두 각자의 기지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그사이 계엄군과 국회에 모인 시민들,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 몸싸움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사상자 단 1명도 없이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은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45년 만이다.

이번 사건은 1987년 군사정권이 끝난 이후 한국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 중 하나로 남게 됐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획책한다”고 비난했다. | 대통령실 제공

비상계엄 사태의 발단

윤 대통령은 2022년 취임 이후 야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국회 과반을 차지한 제1야당인 민주당은 의석수를 앞세워 윤석열 정부의 예산안을 거부하고, 정부 관료들을 상대로 지금까지 22차례 탄핵안을 발의해 왔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야당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고 묘사하면서, 비상계엄 선포는 “국가 정상화” 조치라고 밝혔다.

그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북한 공산 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라고 이유를 밝혔다.

또한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 ‘내란죄’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공산주의 세력의 한국 국가체제 파괴를 막기 위해 비상계엄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한국 헌법은 77조 1항에서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2024.12.4 | 연합

사회적 반응

야권과 언론계에서는 이번 계엄 선포에 합법적 절차가 미흡했다는 입장이다.

현 상황이 헌법에서 규정한 비상계엄 선포 요건인 ‘전쟁’이나 ‘사변(북한의 침공)’이라고 볼 비상사태는 없었다며 계엄 선포의 적법성과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 국회에 통고하지 않았다면서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77조 4항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3일 오후 11시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됐다.

박안수 계엄사령관 겸 국방부 육군참모총장(대장)이 발표한 ‘계엄 포고문’에 따르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이 금지됐다.

계엄군은 또한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지하고,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라고 명했다. 아울러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고 했다.

국회로 달려간 언론의 방송 카메라에는 헌병이 국회 의사당 출입구를 막고, 군용 헬리콥터가 국회의사당에 착륙하는 장면도 담겼다. 또한 현장에 모여든 수많은 시민의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계엄군의 모습이 포착됐다.

계엄령은 곧 반대의 물결을 촉발시켰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국회 밖에 모여 “계엄령을 폐지하라”고 외쳤다.

뉴스 영상에는 일부 시위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경찰과 충돌하는 모습이 담겼다. 4일 이른 아침 시위대는 더욱 늘어나 서울 여의도 인근 거리까지 점거했다.

민주당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의원 전원에게 국회 의사당으로 갈 것을 촉구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군경의 철수를 촉구하며 “민주주의를 국민과 함께 지켜내겠다”고 약속했다. 300석 규모의 의회 중 190명의 의원이 만장일치로 계엄령이 ‘무효’라고 선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여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계엄령 선포에 대해 “잘못된 결정”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대통령의 극단적 행동을 막기 위해 국민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 반응

미국, 영국, 유엔(UN)은 모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일반적인 수준의 반응으로 평가된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며 “한국의 사태에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 역시 “우리는 대한민국의 최근 사태 전개를 중대한 우려로 지켜보고 있다”며 “한국의 어떤 정치적 분쟁도 평화롭고 법치에 따라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희망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한국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영국 국민은 영국 정부의 여행 권고사항 업데이트를 살펴보고 현지 당국의 조언을 따르라”고 밝혔다.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 스테판 뒤자리크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상황을 매우 면밀히, 그리고 우려하면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2.5 | 연합

이어지는 후폭풍

윤 대통령은 4일 오전 계엄령 해제를 알리는 대국민 담화에서 전날 계엄 선포에 관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를 즉각 중지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그 어떤 선포 요건도 지키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원천무효이고, 중대한 헌법 위반이자, 법률 위반이다. 이는 엄중한 내란행위이자, 완벽한 탄핵 사유다”라고 밝혔다.

계엄령 사태 여파로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이상급 참모들이 4일 오전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도 사의를 발표했으며, 5일 윤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현재 민주당은 국회 장악력을 이용해 윤석열 대통령과 행정부가 국정을 운영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봉쇄했다. 윤 대통령은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여기에 각종 논란으로 국정 지지율마저 추락하면서, 민주당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국가 기능이 마비될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미 강력한 추진력으로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이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최종 결정은 헌법재판소로 넘겨지게 된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정치적 해법이 불가능한 현 상황을 법정으로 옮겨 법리 싸움으로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라는 분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