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결코 잊지 않는다”…‘우정의 액자’ 증정
“숭고한 희생에 마땅히 해야 할 윤리적 도리 다해야”
“70년 넘게 슬픔에 잠긴 가족들…마음 전해 고통 덜어줘야”
“은혜를 갚자. 제가 마음속에 새기고 사는 다섯 글자입니다. 74년 전 미군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한정윤 ‘리멤버투게더 7697’ 회장은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출생한 전쟁둥이다. 황해도 사리원에 거주하던 부모님은 그해 12월 초, 남쪽으로 피란을 결심했다. 당시 해주에 가면 군용 열차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는 만삭의 어머니를 부축해 무작정 해주역으로 갔다. 말도 통하지 않는 부부의 사연을 알아챈 미군 장교는 한 회장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군용 열차에 태워줬다. 따뜻하게 데운 시레이션(C-ration·미군 전투식량)까지 건네준 미군 병사들 덕분에 부모님은 무사히 조치원까지 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를 떠올리며 울면서 음식을 드셨고, 아버지는 하늘에 대고 살려달라고 계속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평생 먹어본 음식 중에 그날 미군이 준 음식이 최고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하십니다. 조치원역에 내려서 부서진 집들 사이로 보이는 불빛을 보고 무작정 문을 두드렸는데 그 집에 사는 할머니가 ‘복덩이가 왔다’면서 방을 내줬답니다. 추운 겨울인데 주변 폐가에 널린 판자를 주워다 뜨끈뜨끈하게 군불까지 지펴주셨고 12월 21일, 그곳에서 제가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다 실종된 미군들을 인식하고, 그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 회장을 지난 9월 2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리멤버투게더7697’은 어떤 단체인가요?
“리멤버투게더(remember together)는 ‘함께 기억하자’는 뜻이고, 7697은 단체를 만든 2018년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된 6·25 참전 미군 병사의 숫자입니다. 70년 넘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나 아버지, 아들, 형제를 기다리며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미군 실종자 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약 3만 6500명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6년 사이에 232명의 유해가 가족 품에 안겼다. 실종자 수가 꾸준히 줄고 있으나 7465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이 중 5300여 명은 북한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4년 전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주저 없이 많은 청춘을 보내 대한민국을 ‘공산화’로부터 지켜주고 구해 주었습니다. 3년의 전쟁 기간 중 16개국 참전 병사들의 90% 이상인 180만여 명이 미군이었죠. 정전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땅속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7500여 명의 실종 미군을 포함해 이들은 우리에게 결코 잊혀선 안 될 영웅입니다. 한국을 구해주고 돌아오겠다는 마지막 말을 잊지 않고 70년 이상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실종자 가족에게 우리는 은혜와 감사를 잊지 않고 윤리적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6·25전쟁이 종료된 직후 몇 년간 유해 3000구를 분석해 약 2000명 신원을 확인한 바 있다. 이후 유해 감식을 통해 1982년부터 현재까지 추가로 700명의 신원을 전사자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DPAA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쟁터에 남겨진 군인을 다시 고국으로 데려오겠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
-단체를 2018년에 만드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전쟁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전쟁 통에 자신이 무사히 태어나게 된 배경을 수없이 듣고 자랐다는 한 회장은 “가슴속에 늘 감사함을 품고 살았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홍보 기획사를 운영하던 시절, 올림픽대로, 자유로 등 자동차전용도로에 응급 전화를 설치하자고 제안해 대한적십자사·삼성전자·체신청의 도움을 받아 실행한 것도 그러한 마음의 발로였다. 은퇴 후 결정적 계기가 찾아왔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 후 얼마 안 돼서 북한에서 55구의 미군 유해가 담긴 박스가 오산 기지로 송환되는 것을 TV에서 봤습니다. 그 순간 내 부모를 도와준 미군들이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다음 날 동두천 미군 부대(캠프 케이지)를 찾아갔어요. 군목(군종 목사)에게 6·25 때 제 어머니를 도와준 미군 덕분에 무사히 태어난 제 사연을 말해 주고 주일마다 여기서 미군들과 함께 실종 미군을 기리는 기도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카투사 통역으로 전해 들은 군목은 70년도 넘은 선배들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고맙다면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어요.”
기도를 마친 뒤 한 회장은 그 자리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Aamazing Grace)’ 노래를 불렀고, 미군 병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박수 소리가 마치 70년 동안 뭐 하다 이제야 왔느냐는 질책으로 들렸다”며 “우리가 6·25전쟁의 잿더미를 걷어내고 경제 선진국이 된 것은 남의 나라에서 목숨을 바친 미군들과 그 가족들의 피와 눈물의 숭고한 희생 덕분인데,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전쟁둥이 몇 명을 중심으로 의기투합해 ‘리멤버투게더7697’이 탄생했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주말에 시청이나 광화문 주변에서 6·25 때 한국 땅에서 실종된 미군들을 기리는 행사와 캠페인을 열었습니다. 그러다 2022년부터 미군 실종자 가족들에게 ‘한국은 결코 잊지 않는다(Korea never forgets)’는 의미로 ‘우정의 액자’를 제작해서 보내고 있습니다.”
가로 60cm의 액자는 경첩을 달아 반으로 접을 수 있게 만들었다. 들어 보니 꽤 무거웠다. 왼쪽에는 성조기 바탕에 참전 당시 미군 사진 혹은 사진조차 없는 경우 POW/MIA 깃발 문양을, 오른쪽에는 ‘대한민국은 영웅과 그 가족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문구를 담았다.
우정의 액자에 윤석열 대통령 사진이 담긴 사연은 이랬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외교부와 보훈부에 ‘윤 대통령 방미 기간에 실종 미군을 위한 특별 이벤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는데 두 부처 모두 ‘적절한 의견’이라고 답변이 왔어요. 그런데 실제로 만찬장에 실종 미군을 위한 테이블이 마련됐더군요.”
“TV에서 실종 미군의 귀환을 염원하는 촛불을 켜는 장면이 나왔는데 갑자기 촛불이 흔들리자 윤 대통령이 재빨리 손바닥으로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겁니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라 얼른 사진을 찍었고, POW/MIA(미군포로·실종자가족연맹) 리처드 다운스 총재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Very nice(아주 좋다)’라고 회신이 왔습니다. 대통령실에 이를 알렸더니 원본 사진을 보내 주면서 자유롭게 활용하라고 했어요. 그 뒤로 윤 대통령 사진을 우정의 액자에 넣고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거주하던 다운스 총재의 아버지는 6·25 때 참전해 1952년 평양 폭격 도중 실종됐다. 한 회장이 동갑내기인 다운스 총재에게 리멤버투게더의 활동 상황을 전하면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액자 제작 비용은 얼마인가요?
“제작해서 포장·발송하는 데 25만 원 듭니다. 아내(박순자 씨)가 아껴서 저축해 둔 비용으로 해 온 일이지만, 이젠 그마저 마이너스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난 5월에 ‘한국전쟁미군포로실종자가족연합후원회’라는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어요. 많은 분이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활동에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종 미군 유해를 한 달에 서너 명밖에 못 찾는 현실 속에서 이미 고령이 된 실종자 가족들에게 대한민국 전체가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액자는 일부러 파손하지 않는 한 10~20년 이상 진열해 놓고 후손까지 볼 수 있어서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대한민국 이미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거로 생각합니다.”
-북한이 2018년 약속한 ‘싱가포르 유해 발굴 합의’ 이행을 중단했는데요. 해결 방안이 있을까요?
“북한도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 게 아니라 아군·적군 가리지 않고 부상병을 치료해 준 적십자 정신처럼 인도적 차원에서 다뤄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계속하실 생각인가요?
“6·25 당시 남편, 아버지, 아들, 형제를 이름도 낯선 타국 전쟁터로 떠나 보낸 아내와 자식들은 90대 중반이거나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한(恨)을 품고 돌아가셨다고 하죠. 그 한은 유해라도 찾아야만 풀어집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위안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이런 일을 제가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 많은 국민들의 자발적 동참과 함께 민+관의 원팀 형태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럼 대한민국 외교도 인도적 차원에서 한층 격상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제1회 한미연합 한국전쟁 미군포로·실종자 인식의 날’ 행사가 열렸는데요.
“사실 한국에서 열린 세 번째 실종자 인식 행사였지만, 한미연합으로 진행한 건 처음이죠. 무엇보다 실종 미군 7465명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했다는 게 의미가 큽니다.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미군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선 해마다 하는 행사인데 한국에선 처음으로 재작년에 제가 충남 금산에서 제1회 ‘미군 한국전쟁 미군 포로·실종자 인식의 날’ 을 개최했고, 작년엔 국군의날 광화문 주변에서 시가행진할 때 POW/MIA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어서 다운스 총재에게 보내줬어요.”
미국에선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매년 9월 셋째 주 금요일을 ‘전쟁포로·실종자 인식의 날’로 지정한 이후 매년 이날을 기리는 행사가 미국 전역에서 열리고 있다. 이 속엔 6·25 전쟁 포로와 실종자 7000여 명도 포함돼 있다.
한미 연합으로 진행한 행사의 소감을 묻자, 그는 “한미 간의 결속과 양국 공동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며 “내년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행사하면서 윤 대통령 부부도 오셔서 실종 미군의 귀환을 염원하는 촛불을 밝혀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70여 년 전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일 때 먼 길 찾아와 같이 싸우고 공산화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들입니다. 그 가족들은 한국을 구해주라고 남편과 아버지를 보내 준 착한 사마리언 아닌가요? 70년 넘게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며 슬픔에 잠긴 그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전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한 회장은 “대한민국 성적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등국이지만, 과연 ‘모범국’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 뒤 ”철근을 빼먹은 순살 아파트처럼, 70년 넘게 돌아오지 않은 가족을 기다리며 슬픔에 잠긴 그들의 고통 분담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이라며 “섭섭한 마음을 풀어주지 않으면 미국으로부터 섭섭함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 백악관에 미군 포로·실종자를 상징하는 POW/MIA 깃발이 걸린 것처럼 이곳 전쟁기념관에도 성조기 아래 POW/MIA 깃발을 게양하면 더 뜻깊은 추모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가와 국민이 다 함께 은혜와 감사를 잊지 않는 나라로서 윤리적 도리를 다하고, 동방예의지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한미 동맹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향후 계획은요.
“‘1사(社) 1가족 마음 잇기(From Heart To Heart 프로젝트)’로 우정의 액자 보내기 활동은 계속할 겁니다. 나아가 6·25 때 우리를 구하러 미 50개 주에서 총 180만 명의 미군이 온 것처럼 이젠 우리가 위문단을 구성해 50개 주를 차례로 돌면서 가족들과 함께 울고 위로해 주고 싶습니다.”
미국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전 참전 기념 동판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우리 국민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쳐 싸운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의 명예를 기린다.”
이날 한 회장은 참전용사 명비 앞에서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