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첫 여성 사법부 수장 지명…대법관 절반 여성 채워질 듯

대만은 양성(兩性) 평등 분야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주요 아시아 국가의 성불평등지수(GII)는 한국(0.067), 싱가포르(0.068), 일본(0.116) 순이다. GII는 0에 가까울수록 남녀가 평등하다는 의미다. 유엔 회원국이 아닌 대만 정부가 UNDP의 GII 공식을 활용해 자체 조사한 결과 대만의 GII는 0.058로 한국보다 낮았다. 아시아권에서는 성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인 셈이다. 이듬해인 2016년 차이잉원(蔡英文)은 총통에 당선됐다. 중화권 최초 선출직 국가원수였다. 10년이 지난 오늘날도 양성 평등지수는 아시아 최고 수준은 물론, 유럽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성 평등 국가 대만에서 ‘정치권 우먼 파워’도 두드러진다. 사상 첫 정권 수평 교체를 이룬 2000년 대선에서 뤼슈롄(呂秀蓮)이 첫 부총통에 당선됐다. 2004년 재선했고, 퇴임 후에도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다. 24년 후인 지난 1월 대선에서 샤오메이친(蕭美琴) 현 부총통이 당선돼 뒤를 이었다. 뤼슈롄, 차이잉원, 샤오메이친은 대만 정계 우먼 파워의 상징적 인물이다. 민주진보당 소속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지녔다.
2024년 5월 출범한 현 라이칭더 정부에서도 여성 정치인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내각에 해당하는 행정원(行政院)에는 정리쥔(鄭麗君) 부원장(부총리 해당)을 필두로 양전니(楊珍妮) 정무위원(정무장관 해당) 류스팡(劉世芳) 내정부장, 허페이산(何佩珊) 노동부장, 관비링(管碧玲) 해양위원회 주임위원, 쉬구이칭(徐佳青) 교무위원회(화교업무위원회) 위원장, 리메이(李鎂) 공평교역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주임위원, 천수쯔(陳淑姿) 행정원주계총처(통계청 해당) 총처장 등 핵심 포스트에 여성 각료들이 포진했다. 행정원 얼굴 역할을 하는 발언인(대변인)도 여성 정치인 셰쯔한(謝子涵)이다.
행정·입법·사법·고시·감찰의 5권 분립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만에서 행정원장(국무총리 해당)급에 해당하는 감찰원장도 민주진보당 원로 여성 정치인 천쥐(陳菊)이다. ‘화마(花媽·꽃엄마)’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2000년 민진당의 첫 집권 후 천수이볜(陳水扁) 정부 1기 내각의 행정원 노공위원회(勞工委員會) 주임(노동부 장관에 해당)으로 입각했다. 2006년 가오슝(高雄) 시장에 당선했고 2010년 가오슝현(縣)·시(市) 통합 시장에도 당선하여 2014년 연임에 성공했다. 이후 차이잉원 정부 총통부 비서장(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2020년 감찰원장에 지명됐다.
보수 성향 야당 국민당에서도 우먼 파워가 존재한다. 루슈옌(盧秀燕) 타이중(臺中) 시장이 대표 인물이다. 루수옌의 별칭은 ‘선거의 여왕’이다. 이제까지 출마한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낙선한 적이 없다. 국립정치대지정학과 졸업 후 지상파 방송 중화방송공사(華視·CTS)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1994년 대만성 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타이중에서 6선 입법위원을 지냈다. 2018년 타이중 시장 선거에서 당선됐고, 2022년 재선했다. 국민당 내에서는 중앙위원회 부비서장, 중앙위원, 중앙상무위원을 역임했다. 4년 후 치러질 대선의 국민당 유력 총통 후보로 꼽힌다.
이 같은 대만에서 사상 첫 여성 사법부 수장 탄생을 앞두고 있다. 대만 총통부(대통령실 해당)는 사법원장에 장원전(張文貞) 국립대만대 법과대학 특별초빙(特聘)교수를 지명했다. 앞서 샤오메이친(蕭美琴) 부총통은 8월 30일, 총통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10월 말 임기가 만료되는 사법원 원장, 부원장, 대법관 등의 후임자 7명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런 내용을 밝혔다. 전문성, 진보성, 국제화, 이론과 실무 겸비 등의 자질을 고려해 향후 사법 개혁을 추진할 인물들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대만 사법원은 한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기능을 수행한다. 대법관으로 구성된 ‘헌법법정’이 헌법재판소 역할을 수행한다. 장원전 지명자가 공식 임명되면 5원 중 2원 수장이 여성으로 채워진다.
올해 55세의 장원전은 미국 예일대 법학전문대학원 법학박사(SJD) 출신으로 국립대만대 법과대학 교수, 국립양명교통대학 법과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헌법, 국제인권법, 행정법, 환경법 분야 교수로 활동하며, 다수 정부 자문기구 위원으로 활동했다.
장원전 ‘교수’가 대만 첫 여성 ‘사법부 수장’이 되기 위해서는 헌법상 입법원 동의가 필요하다.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국민당, 민중당 등 야권의 반발 때문이다. 장원전 지명자는 선명 진보성향 법학자이다. 권위주의 통치 시기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 권리 회복기금회을 맡고 있는 그는 민주진보당 집권기 총통부 인권자문위원회 위원, 사법개혁국시회의 분과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법안 관련해서는 2019년 5월, 동성혼 특별법안 ‘사법원 해석 748호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법률’에 전문가 의견을 제공하며 법안 통과에 힘을 실었다. 한국에 비유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저명 법률가를 사법부 수장에 지명한 셈이다.
제1야당 중국국민당은 “대법관 추천 명단은 숭고한 사법적 지위인 대법관에 대한 치욕이다.”라고 비판했다. 사법원장 지명자를 비롯하여 대법관 후보가 친민진당 성향에 진보 성향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제2야당 대만민중당도 “총통부 대법관 추천 명단이 정치가 사법원 독립성을 무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장원전 지명자가 지난 6월 민진당이 입법원의 ‘의회개혁법(총통견제법)’ 효력정지 잠정 처분(가처분) 신청을 추천한 학자라는 점도 야권의 공격 포인트다. 국민당은 이를 비판하며 “라이칭더 총통의 입법원 개혁 차단 의지가 매우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법원 부원장 지명자에 대한 비판도 따랐다. 국민당은 “보은(報恩)인사이다.”고 반발했다. 부원장에 지명된 야오리밍(姚立明) 민의기구관찰문화교육기금회 이사장이 지난 1월 대만 총통 선거 시 집권 라이칭더 총통 후보 선거 캠프 총주임위원을 맡은 경력을 겨냥했다.
야오리밍은 대만 푸런대(輔仁大) 법학과를 거쳐 독일 빌레펠트대(Universität Bielefeld)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학 교수, 인권단체 간부로 활동했다. 정치권에서는 신당(新黨) 입법위원을 거쳐 샤오잉교육재단(小英教育基金會) 이사, 커원저(柯文哲) 현 민중당 주석의 타이베이 시장 선거캠프 간사로 활동했다. 국민당 내 보수파가 분당하여 창당한 신당은 국민당보다 강성 우파 색채이다. 그러다 차이잉원 총통 개인연구재단 간부를 거쳐 현 제2야당 커원저 캠프에 합류했다 다시 민진당으로 돌아온 셈이다. 2014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민진당은 쓰레기”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2024년 라이칭더 총통 캠프에서 요직을 맡았다. ‘정치 철새’ 논란을 일으킬 만한 경력이다. 사법원 원장 지명자와 부원장 지명자의 연령 차도 도마에 올랐다. 부원장 지명자 야오리밍은 민의기구관찰문화교육기금회 이사장은 올해 72세다. 55세의 장원전 지명자보다 17세 연상이다.
지명된 사법원장과 부원장, 다른 여성 2명의 대법관 후보자가 입법원 동의를 거쳐 임명되면, 대만 사법부는 또 다른 기록을 쓰게 된다. 대법관(원장, 부원장 포함) 전체 15명 중 과반에 육박하는 7명이 여성으로 채워진다. 사상 최다 기록이다. 대만 대법관 임기는 8년으로 연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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