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세수 메우나…中 주택연금 시범 도입 논란 확대

- 中 당국, 베이징·상하이 22개 도시 주택연금 시범 도입
- 기금 마련 방안 놓고 “개인부담·공적자금 비율 조정” 발표
- 온라인에선 “연금 아닌 부동산세 신설 목적” 반발 여론
중국 정부가 최근 상하이 등 22개 도시에 주택연금을 시범 도입하면서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연금을 가장한 부동산세 징수 포석이라는 의혹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26일 중국 주택도농건설부(주건부·한국의 국토부에 해당)는 소셜미디어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주택연금은 부동산세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주건부 관계자는 “주택연금이 새로운 부동산세라는 소문은 1인 미디어와 블로거들이 정책 안내를 제대로 읽지 않아 벌어진 오해”라고 해명했다.
이날 중국의 부동산·경제 관련 매체들은 일제히 해당 성명을 인용한 기사를 내며 “주건부의 주택연금 시범사업 관련 발표가 심각한 오해를 사고 있다”며 중국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中 정부, 양로보험 고갈에 주택연금 시범 도입 발표
중국 공산당은 이번 22개 도시 주택연금 시범사업을 실시하며 ‘고령인구 급증에 따른 사회안전망 확충’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앞서 지난 23일 중국 국무원 기자회견에는 주건부 둥젠궈 부부장(차관)이 참석해 “장기적인 주택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주택안전진단, 주택연금, 주택보험 등을 연구 중”이라며 “현재 상하이를 비롯한 22개 도시에서 시범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그다음 발언이었다. 둥젠궈 부부장은 “주택연금의 경우 특별주택관리 자금은 개인계좌에서 지출된다. 정부가 공적계좌를 개설하는 게 이번 시범사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주택연금제도에는 주택연금 외에도 주택유지보수와 정기 점검, 공용시설 수리 비용 등 전반적인 주택안전관리가 포함됐다. 문제는 이 돈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현재 중국 정부는 정부 자금(공적계좌)과 주민 부담(개인계좌) 등으로 기금을 마련하는 초안을 잡은 상태다.
다만, 공적계좌와 개인계좌 비율을 어떻게 배분하는지가 여론의 주된 관심사였다. 공적계좌 비율이 높아지면 정부의 보조금이 그만큼 투입된다. 개인계좌 비율이 높아지면 주민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날 사업 담당 부서 책임자인 둥젠궈 부부장이 “시범사업 핵심은 공적계좌 개설”이라고 발표하자, 여론은 ‘그렇다면 개인계좌 개설은 이미 다 끝났다는 이야기’라며 역으로 해석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정부 발표는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이 굳어진 까닭이다.
실제로 중국 온라인에서는 1인 미디어와 경제·시사 인플루언서들이 “주택연금은 사실상 부동산세 징수”라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투표 등 주민 눈치 볼 이유 없는 정부가 순순히 주택연금으로 혜택을 제공하겠냐는 현실론에 따른 분석이다.
주택연금 기금 마련 쟁점…정부 지원이냐 개인 부담이냐
현재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적연금(기본양로보험)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중 구조로 연금을 시행한다. 하지만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가입자가 적어, 국민 90%가 기본양로보험에 노후생활을 의존하는 처지다.
기본양로보험은 경제가 고속으로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하던 시절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현재는 기금 고갈 위기에 놓여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에 따르면, 기본양로보험은 오는 2027년 정점에 달한 후 급속히 소진돼 2035년이면 바닥을 드러낼 전망이다.
이에 중국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주택연금이다. 2021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약해진 경제 체질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주택연금 도입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처음부터 신통치 않았다. 온라인에는 “노후를 보장받으려면 집부터 사야 한다”는 비아냥 섞인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노후 보장은 공산당이 집권 정당성을 위해 내건 마지노선이었다. 공산당은 생산수단을 가져가는 대신 은퇴 후 안락한 생활을 약속했다.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의 2022년 ‘샤오캉(小康·모두가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달성 선언도 이러한 맥락이다.
기본양로보험의 노후 보장 약속이 깨어지면서, 고령인구 사이에서 당에 대한 지지도 흔들린다. 전통적으로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해온 자녀는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오히려 부모에게 의존하는 ‘전업 자녀’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발표된 정부의 주택연금 시범사업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주건부 당국자는 26일 위챗 성명을 통해 “주택연금 시범사업 시행 도시 및 지자체의 공적 자금과 토지 사용권 매각 대금 일부로 기금을 충당할 수 있다”며 부동산세 신설이라는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불붙은 여론을 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 지방정부들은 거액의 부채로 재정난에 허덕이고, 부동산 경기 침체로 세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토지 사용권 매각 대금이 급감하고 있다. 이런 처지를 다 아는 상황에서, 당국자가 ‘정부 재정과 토지 사용권 매각 대금’으로 기금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뻔한 거짓말’이 된 것이다.
시사 평론가 탕징위안은 “정부가 돈 나올 곳이 어디 있냐”라며 “결국 납세자 주머니에서 충당하겠다는 것인데, 세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기금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시장에서는 ‘증세하려 한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탕징위안은 “주택연금을 제대로 지급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며 “기금 운용에 대한 언론 감시가 이뤄지지 않아 개인 부담으로 마련한 기금이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원 취지를 벗어나 지방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을 충당하거나 눈 먼 돈이 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