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서 웜비어 추모식…“北여행으로 목숨 잃은 美청년 잊지마세요”

정향매
2024년 06월 21일 오전 11:35 업데이트: 2024년 06월 21일 오전 11:35

“청년의 억울한 죽음에 가슴 시려” 시민들
“북한 정권에 노출된 韓 청년들도 걱정돼”

지난 19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시민들이 주도한 작은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 대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 여행 갔다 목숨을 잃은 미국 대학생 고(故) 오토 웜비어(사망 당시 22세)다.

2015년 말 여행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웜비어는 호텔에 설치된 정치 선전물을 훔친 혐의로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이후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징역형) 15년을 선고받았다.

1년 5개월가량 북한에 억류된 웜비어는 2017년 6월 13일 미국으로 송환됐지만 이내 혼수 상태에 빠졌다. 결국 귀국 6일 만인 2017년 6월 19일, 웜비어는 2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웜비어는 북한에 억류된 동안 고문과 가혹행위를 받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사진이 찍힌 신문지로 신발을 포장한 것이 출국 심사에 걸린 게 비극의 발단이었다는 사실도 미국 정부의 조사로 인해 뒤늦게 드러났다.

이날 추모식 사회를 맡은 김병준 강남대 교수는 웜비어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폐쇄된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 정권이 행한 악행을 정확히 인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들이 한 젊고 건장한 청년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가혹행위를 행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악의적 선전 도구로 활용한 것은 인류 사회의 보편 타당성을 벗어난 심각한 범죄행위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그저 호기심 많은 젊은이로서 지구상에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국가(북한)에 간 결과는 온 인류가 경악할 정도로 처참했다”며 “오토 웜비어의 7주기를 애도하며 그의 죽음이 공산화된 폐쇄 사회의 해방으로 이끌어 주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박승제 ‘신아시아 안보연구센터’ 대표이사는 한국 국민들이 웜비어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첫 번째는 북한의 불법 감금, 고문, 인권 유린을 기억하자는 것”이라며 “두 번째로 북한은 다수 한국 국민도 납치했으며 우리는 오토 웜비어의 부모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웜비어의 부모는 미국 법정에서 북한 정권을 고소했고,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북한 정권에 5600여 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유가족은 몇 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압수당한 북한 소유의 선박으로 얻은 비용 중 일부를 지불받았다.

박 대표는 한국도 북한에 문책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사안도 제시했다.

“예를 들면 6·25 전쟁 당시 다수 천주교 신자가 북한 정권에 의해 처형당했다”며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바티칸과 협력해 북한이 유럽에 은닉한 자선을 동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쉽다. 사람이 죽임당한 사실도 쉽게 잊힌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잊지 말고 범죄는 언젠가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리를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범죄를 줄일 수 있다”며 “범죄 사실을 기억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범죄 행위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웜비어가 생전에 걸었던 서울 명동의 길 가운데 일부를 ‘웜비어길’이라고 명명하는 방법으로 그를 기억하자고 제언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 공동대표를 맡은 이제봉 울산대 교수도 이날 추모식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20대 대학생이 천진난만하게 (북한에) 관광을 갔다 신문지로, 이른바 ‘그들의 존엄’이라는 정치 리더의 사진이 찍힌 신문지로 구두를 포장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모진 고문 끝에 사망했다”며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상당히 가슴 아팠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외국에 나가 있고 항상 북한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앞서 발생한 한국인 관광객 금강산 피격 사건, 지난 정부 때 북한 어민 북송 사건 등을 언급하며 “한국이 북한 정권을 미화하는 종북 세력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민국을 바치려는 종중 매국 세력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것은 우리가 웜비어 사건뿐만 아니라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돌보지 않고 그들의 인권을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사상 우리나라는 늘 백성이 지켜왔다. 국민들은 더 용기를 내고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며 북한 동포들을 인권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이하의 삶 속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이날 행사에는 시민 10여 명이 함께했다.

78세 시민 활동가 A씨는 장미 한 송이들 들고 웜비어의 사진 앞에 서서 한참 중얼거리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었다.

그는 “저 청년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단지 거기 갔다는 이유만으로… 눈물이 난다. 청년들이 저렇게 당하지 않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추모식 소식을 접한 50대 주부 B씨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지하철 1시간을 타고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몰랐다. 더 일찍 참여해야 했다”며 “오랜만에 애국가도 부르니까 가슴이 벅차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이 시국이 좀 빨리 안정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했다.

방주혁 조각가는 행사 내내 묵묵히 웜비어의 옆모습 조소 작품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수년간 웜비어를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해 온 방씨는 “세계적으로 청년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비극이 더는 발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