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는 시대를 초월해 사랑과 연관된 상징이자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대표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장미를 사랑한 역사는 유구하다. 그것은 여러 대륙에 걸쳐, 그리고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됐다. 장미는 기원전 3000년 중국에서 처음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중국인들은 장미를 숭배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공자(기원전 551~기원전479년)는 당시 노나라 황제가 장미에 관한 책 600권을 소장한 도서관을 지었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장미를 매우 소중히 여겼는데, 당시 작가 중 한 명은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지금까지도 장미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고대 로마의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플리니우스는 작품 속에 장미를 자주 등장시켰고, 당대 사람들은 장미 향수와 장미수를 즐겨 사용하며 매년 장미 축제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장미는 수천 년 동안 종교와 정치,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됐고 이 모든 것은 서양 예술에 온전히 반영돼 있다.
장미 화환
피터 E. 쿠키엘스키와 찰스 필립스의 공동 저서 ‘장미 이야기’에는 고대 로마 사회에 장미가 얼마나 널리 활용됐는지 기술돼 있다. 장미는 관상용, 상업용 정원 모두에서 다량으로 재배됐고, 향수의 원료로 쓰이기도 했으며 당시 프레스코화 내용에도 등장했다.
‘네 명의 큐피드가 화환을 걸고 있는 프레스코화 조각’(50~70년 추정)에는 사랑의 전령 큐피드가 등장한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그의 아들 큐피드는 장미와 함께 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했다. 그림의 배경인 검은색은 덤불이나 소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탄소로 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과 꽃에 칠한 붉은색은 황토나 진사, 백납을 가열해 얻은 물질로 채색한 것으로 보인다.
‘장미의 로맨스’
13세기에 쓰인 작품 ‘장미의 로맨스(Le Roman de la Rose)’는 중세 시대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힌 세속 문학 작품이다. 이것은 두 명의 작가가 두 부분으로 나눠 쓴 서사시 형태의 작품으로, 사랑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한 은유적 이야기다.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갇힌 한 청년과 젊은 여성 간의 낭만적인 사랑을 담은 내용으로, 장미를 사랑에 빗대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작품은 수 세기에 걸쳐 화가, 조각가들에 의해 재해석돼 다양한 형태의 예술로 탄생했다. 특히 중세와 신화 및 문학에 열광했던 19세기 라파엘 전파(前派)의 예술가들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는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문예 유파로, 1848년 영국왕립미술원에 수학 중이던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등 영국의 화가들이 결성했다.
영국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는 영국 라파엘전파의 대표적 예술가다. 그는 낭만주의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 ‘장미의 영혼’(1908년)은 13세기 문학 ‘장미의 로맨스’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졌다. 작품 속 화려한 중세풍의 배경과 의상, 꽃향기를 맡는 아름다운 여성은 워터하우스의 미학적 묘사의 극치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워터하우스의 창의력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꽃과 여인’ 연작의 첫 작품이다. 그림 속 여인은 수놓은 비단 드레스를 입고 장미 향기를 맡고 있다. 그녀의 장밋빛 뺨은 손에 쥐고 있는 장미의 색과 조화를 이루며 붉은빛 머리카락은 인물을 더 돋보이게 한다. 배경이 되는 건물은 어두운 톤으로 깊이감 없이 묘사돼 여인과 장미에 시선을 집중하도록 한다.
2019년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이 작품은 469만 5천 달러에 판매됐다. 경매 안내문에는 “풍요롭지만, 밀폐된 정원의 역설은 워터하우스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장미의 향기는 사랑의 강렬함을 상징하는 향기로운 매개체 역할을 한다”라고 기재돼 있다.
프랑스의 장미
장미는 18세기 유럽 전역, 특히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장미는 정원과 실내, 가구, 패션 등 많은 분야에서 장식 소재로 사용됐다. 프랑스 로코코 미술 전성기를 대표하는 화가 프랑수아 부셰(1703~1770)의 작품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1756)에서도 당시 장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림 속에는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은 퐁파두르 부인(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이 수많은 장미로 장식된 녹색 비단 드레스를 입고 있다. 또한 그녀의 발아래, 책상 아래에도 장미가 놓여 있고, 머리에는 작은 장미꽃 봉오리들을 꽂았다.
장미에 대한 애정
유럽에서 장미에 대한 가장 큰 애정을 보이며 장미의 유행을 선도한 이는 나폴레옹 1세의 부인 조세핀 황후였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랑 이야기 중 하나는 한때 유럽 전역을 호령했던 황제 나폴레옹 1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 조세핀의 이야기다. 이들의 사랑에는 식물학이 큰 역할을 했다. 조세핀은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진지하고 열정적인 식물 애호가였다. 그녀는 자신의 저택에 거대한 장미 정원을 만들었고, 모든 장미 품종을 수집하고자 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나폴레옹은 장군들에게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식물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조세핀을 위한 일에 프랑스 제국의 모든 군대가 동원됐다. 나폴레옹은 식물 표본을 운반하는 선박은 자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무료로 통항(通航)하도록 했다.
조세핀은 수채화 화가이자 판화가인 피에르 조제프 르두테(1759~1840)에게 자신이 수집한 모든 장미를 기록하길 의뢰했다. 그 결과 170개의 수채 판화가 실린 총 3권의 ‘장미’가 출간됐다.
꽃의 라파엘로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두테는 ‘꽃의 라파엘로’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뛰어난 식물 화가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의 후원을 받았고, 프랑스 혁명 이후 조세핀 황후의 공식 예술가로 채용됐다. 식물 화가로서 그는 사실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식물을 묘사했고, 이 작품은 판화로 인쇄돼 전 세계에 널리 배포됐다.
‘장미’ 속 작품들은 배경이 없는 고전적인 꽃 초상화다. 미니멀리즘으로 묘사된 이 작품은 관객의 시선을 꽃의 세부적 부분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꽃의 형태는 작가의 천재적인 표현법과 채색을 통해 사실적이면서 아름답게 구현됐다. 특히 그는 점묘법을 그림에 도입해 섬세한 식물의 세부 사항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선이 아닌 점으로 묘사한 그림은 물감 속에 묻힐 뻔했던 종이 고유의 질감과 색감을 그대로 살렸다.
사랑의 상징
장미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구현돼 낭만과 사랑, 아름다움과 헌신의 상징이 돼 왔다. 장미의 매력은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으로 보존돼 우리에게 영원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