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주변 국가들과의 영유권 분쟁 지역에 대해 자국 영토라고 표기한 새 지도를 발표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해당 지도가 외교 문제 그 이상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중국공산당 내 권력 투쟁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교의 중국 및 티베트 전문가 디베쉬 아난드 교수는 에포크타임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지도에 그려진 선과 실제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면서도 “지도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중국 천연자원부는 주변국과 국경·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을 모두 자국 영토로 표시한 ‘2023 표준지도’를 공개했다.
중국이 ‘규범화된 지도를 사용함에 한 점 착오도 없어야 한다’는 슬로건 아래 제작, 발표한 이번 2023년 표준지도는 대만, 남해 9단선 범위 내의 지역, 인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티베트 남부 지역, 러시아와 중국이 절반씩 관할하고 있는 지역을 모두 중국 영토로 표시했다. 이는 인도,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대만,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다른 국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다.
특히 러시아 아무르강 인근 볼쇼이우수리스키섬 전체를 중국 영토로 표기한 부분이 주목된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처음 주장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러시아와 중국은 볼쇼이우수리스키섬을 절반씩 관할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협정에 따라 섬 절반에 해당하는 동쪽 지역은 러시아가, 서쪽 지역은 중국이 각각 관할해 왔다.
볼쇼이우수리스키섬 중 러시아 영토에 속하는 동쪽 지역에는 현재 100명가량의 주민이 작은 마을을 형성해 거주 중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학자 프랭크 레베르거는 에포크타임스에 “이곳에 사는 러시아인들은 중국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거부한다”
새로운 표준지도에서 중국은 남중국해 부분에 10개의 선(10단선)을 그었다. 10단선에 따라 남중국해의 약 90%가 중국의 영토로 명시됐다.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최소 7개국 주변국들은 곧바로 거세게 반발했다.
지도가 공개된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인도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에 강력히 항의했다.
이날 아린담 바그치 인도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근거 없는 주장을 거부한다. 중국의 이런 행동은 국경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밝혔다.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말레이시아 외무부 또한 “중국의 일방적인 해양 영유권 주장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는 중국이 ‘2023 표준지도’에서 주장하는 바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 지도 하나로 말레이시아를 구속할 수 없다”고 확언했다.
다만 러시아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균열과 민족주의
2023 중국 표준지도의 공개 시기와 관련, 전문가들은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다양한 파벌이 끊임없이 권력 경쟁을 벌이는 현 상황을 엿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레베르거는 “이 지도는 중국 외교부가 아닌 천연자원부에서 발행했다. 이것은 누가 가장 (시진핑에) 충성스러운 사람인지에 대한 중국공산당 내부의 경연”이라고 설명했다.
인도에서 활동하는 티베트 학자 클로드 아르피 역시 이번 표준지도가 중국공산당 내부의 균열을 나타낸다고 봤다. 다만 레베르거와는 다른 진단을 내놨다.
아르피는 에포크타임스에 “지금 중국에서 시진핑이 모든 측면을 장악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숙청된 친강 전 외교부장이 그 증거”라면서 “내가 추측하기로는 시진핑을 반대하는 정당이 지도를 통해 이웃 국가와의 분열을 심화하려는 것 같다”고 발언했다.
중국은 지난 9~10일 인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새 지도를 공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G20 정상회의에 불참했다. 아르피는 공개 시기를 주목했다.
아르피는 “이즈음에 지도가 발표된 데에는 시진핑의 해외 순방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며 “지난달 있었던 중국과 인도 간 제19차 군단장급 회의 등, 지난여름 베이다이허 회의 이후 상황은 시진핑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인도와의 분쟁에서 중국의 영유권을 주장한) 이번 표준지도에는 인도 관련 ‘새로운’ 내용이 없다. 문제는 인도와의 국경 분쟁지인 라다크 인근 지역 협상이 중요한 지금 시점에 하필 기존 주장을 반복할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르피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정권이 해당 지도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한 번에 여러 국가를 상대하는 것은 시 주석이 공언한 바와 중국 정부의 현실적인 입장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방증한다.
아르피는 “중국에서 이런 분열이 일어난다는 것은 강경 민족주의 측면에서 보는 입장과 외교적 관점에서 보는 입장 두 가지 견해가 서로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다시 말해 이는 당 내 최고 지도부 사이에서 깊은 분열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시진핑이 G20에 불참한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아난드 교수는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해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부 사이에 긴장 관계가 조성됐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최고 권력자로서의 시진핑의 권위와 당의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두는 지도부의 공통된 신념을 고려한다면 시진핑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국 주장, 앞으로 더 확대될 수 있어”
전문가들은 새로운 지도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실제 지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키며 “이는 중국이 영유권 주장을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레베르거는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력 충돌은 분명히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난드 교수는 “새로운 지도는 중국이 과거보다 더 호전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되면 위험 부담이 커진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싱크탱크 허드슨인스티튜트의 나가오 사토루 연구원은 에포크타임스에 “이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표현했다.
나가오 연구원은 “새 지도는 어느 국가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반발할 경우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며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앞으로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가오 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지도에 포함된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이 바로 정확한 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현재 중국의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주저 없이 러시아 영토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확대했다.
외교적 지지
전문가들은 중국의 지도상 침략과 국경 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자간 전략적 동맹을 구축해 외교적으로 대응하는 길뿐이라고 진단했다.
아난드 교수는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항의에 그치고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성공으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가오 연구원 또한 “진정한 대응은 중국 주변국들의 협력”이라며 “중국의 주장을 차단하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만약) 중국의 지도가 아시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새로운 군사기구를 형성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중국은 지도를 그렇게 쉽게 발표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비군사적 요소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나가오 연구원은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통해 수혜국에 부채를 안기고 그 나라를 통제한다. 따라서 중국의 소득을 줄이는 것이 중국의 정책에 대응하는 주요 방법 중 하나다”라고 했다.
실제 태평양 12개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과 미국이 지난해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가 중국을 제한하기 위한 경제 대응으로 꼽힌다.
“이러한 모든 프레임워크의 성공은 지도 문제를 포함, 중국 정권의 다각적인 공격을 억제하는 과정이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