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해 인도-중동-유럽을 연결하는 철도·항구 등 인프라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지난 9일(현지 시간) 인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설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국 주도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맞서는 게 목표다.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양해각서 전문에 따르면, IMEC는 인도와 걸프 지역을 잇는 동부 회랑, 걸프 지역과 유럽을 연결하는 북부 회랑으로 구성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인도, 아랍에미리트, 사우디, 요르단, 이스라엘, 유럽을 잇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며 비용을 절감하는’ 선박-철도 환적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하게 된다. IMEC 참가국들은 철도를 따라 송전·디지털 연결을 위한 케이블과 청정 수소 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도 설치할 계획이다.
사우디가 건설할 예정인 일부 철도 구간을 제외하고는 이미 전체 회랑은 완공된 상태로, 가까운 시일 내에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미얀마 정부가 IMEC에 동의할 경우 베트남, 태국,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으로 회랑을 확장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일대일로’에 대응하는 ‘경제회랑’
전문가들은 이번 IMEC 추진을 기점으로 미국 중심의 친서방 국가들과 중국 간 경쟁이 보다 더 심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은 이번 G20 회의를 계기로 IMEC라는 중국 견제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족했다. 또 이 같은 구상에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참여시킴으로써 미국의 영향력이 하락하고 있는 중동에서 미국에 우호적인 역학 구도를 조성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IMEC에 대해 “역사적인 일”이라고 표현하며 “인도와 페르시아만, 유럽을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철도 연결로 인도와 유럽(EU) 간 교역 속도가 40%가량 더 빨라질 것”이라고 환영했다.
동남아시아와 중동, 유럽 간 무역 흐름의 중심에 인도가 있는 IMEC는 인도뿐 아니라 중동의 경제발전을 촉진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도 중국이 아닌 주요 공급망을 찾아 다변화할 확률이 높다.
이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IMEC는 부채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닌 재정적 실행력을 키우며 친환경 규범 및 파트너 국가의 영토 주권을 존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차별화되는 요소들에 의미를 부여한 발언으로 보인다.
IMEC 프로젝트는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미국과 아랍에미리트, 인도 간 비공개회의에서 처음 거론됐다. 이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가 합류했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가입한 국가들로, 이 중 이탈리아는 현재 일대일로 탈퇴를 모색 중이다.
지난 2013년 중국은 자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육상과 해상으로 연결해 거대한 경제권을 만드는 프로젝트인 일대일로를 발표했다. 그간 전문가들은 “일대일로는 중국공산당이 지정학적 힘과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국방전략자원연구소의 중즈동 연구원은 에포크타임스에 “일대일로는 인력, 자원, 장비 등을 현지에서 구하지 않고 중국에서 가져온 것을 쓰면서 개발 자금은 현지에서 충당한다”며 “이는 일종의 경제적 착취“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 왕은 IMEC와 일대일로 간 차이점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IMEC는 미국과 유럽 등 민주주의 진영에 속하거나 미국 또는 유럽의 입김이 통하는 나라들로 구성됐다. 반면 일대일로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국가들이 가입해 있다.
데이비 왕은 “IMEC는 철도 운송, 관세 면제 등 경제적 측면에 더 중점을 둔다. 이와 달리 일대일로는 광산 굴착, 학교 및 병원 건설 같은 직접적인 프로젝트 투자와 인프라 건설에 더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IMEC는 (각국의) 지정학과 공유하는 가치, 법체계가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고려한다. 그러나 일대일로는 중국의 정치적 성향에 동의하는 것에 더 가깝다”며 “일대일로는 중국이 외교 관계의 모든 측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일대일로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넘어 세계의 규칙을 바꾸려는 이니셔티브라는 분석이다.
한편, 대만 국립정치대학 국제관계연구센터 쑹궈청 선임연구원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대일로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그 근거로 “중국의 투자 측면에서 정점에 달했을 때와 비교해 이미 3분의 2 이상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쑹궈청은 “(지속 불가능한) 두 가지 주요 이유가 있다. 하나는 중국공산당이 자신들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이들 국가에 투자했지만, 수혜국의 부채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다”라면서 “다른 하나는 경제난에 부닥친 중국이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