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일 군사협력, 차곡차곡 단계 밟으며 추진해야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3년 08월 23일 오후 8:11 업데이트: 2023년 08월 23일 오후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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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은 당사국 모두에게 있어 역사적 사건이었다. 권위주의 세력(axis of tyrannies)을 견제하는 세계전략을 펼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체’란 쿼드(QUAD)와 오커스(AUKUS)에 이어 동북아에서 대중(對中) 포위를 위한 또 하나의 포스트가 구축됨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구원(舊怨)을 씻고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역사적인 화해를 끌어냈던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한 가장 큰 이유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회담이 내놓은 세 가지 합의문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구상은 일단 순조로운 출발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체’의 순조로운 출발

 물론, 회담 직후 까칠한 비판들도 쏟아졌다. “한국이 미국 세계전략의 도구로 격하되었다” “한미동맹이 미일 동맹의 하부 동맹으로 전락했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험악해질 것이다” 등의 볼멘소리들이 있었고, 정치권에서는 “한국의 국익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푸념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은 과장되었거나 사실이 아니다. 북핵이라는 ‘발등의 불’과 중국 위협이라는 ‘앞산의 불’을 짊어진 한국이 동맹 강화와 한·미·일 안보 공조 강화로 방향을 잡은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는 그러한 기조를 전제로 하면서 폭발성을 줄이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일 것이다. 한국의 국익이 무시되었다는 푸념에도 동감할 수 없다. 이번 삼자 회담으로 한국은 워싱턴선언에서 확인한 확장억제에 일본을 가세시킴으로써 북핵 억제력을 키웠고, 당장 북한 미사일의 감시·추적·요격, 북한 잠수함 위협 대처 등에서 유리점을 얻게 될 것이다. 일본에 있는 유엔사후방기지가 발휘하는 북핵 억제력도 커질 것이다. 동맹이든 공조든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도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도 “역사적·정치적 갈등이 잔존하는 상황에서 한일 군사협력을 추진해야 하느냐”라는 힐난이나 “욱일기를 단 일본군이 또다시 한국을 집어삼킬 것이다”라는 외침과 관련해서는 좀 더 깊이 고찰해야 할 대목이 많다.

  모든 것을 종합할 때 한일 군사협력은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다. 100년 전에는 일본 군국주의가 주요 위협이었지만 지금은 ‘대륙으로부터의 위협’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 일본의 군사력을 당면 위협을 해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순서다. 그래서 한일 군사협력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단계들을 밟으면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한국의 반일정서나 일본의 혐한정서가 여전히 상당한 폭발성을 머금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를 관리하지 않은 채 너무 서두르면 ‘가야 할 길’ 자체를 가지 못하게 될 소지가 많아진다. 예를 들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침략사 미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은 힘들게 쌓아 올리던 우호적 정서를 일순간 붕괴시키는 파괴력을 가지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든 정리를 하면서 거기에 비례하여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이 다시 한국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주장은 현저한 과장이거나 현재를 100년 전으로 착각한 괴담이지만, 이런 우려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군사력이 일본을 능가하거나 대등한 수준까지 성장해야 한다. 이는 한국이 결심하기만 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그대로 두고는 온전한 삼각 공조 어렵다

 짚고 가야 할 단계는 또 있다. 현재 미국은 권위주의 독재국가들의 해양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차세대 ‘컬럼비아급’ 핵전략잠수함(SSBN)을 건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호주의 핵잠 보유를 도와 미·영·호 3국 간 잠수함 공조를 통해 중국의 해양위협에 대처하는 구상을 실천 중이다. 그러나 북한 잠수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핵추진 헌터킬러 잠수함을 필요로 하는 데다 우수한 건조 인프라까지 갖춘 한국과의 잠수함 공조는 배제하고 있으며,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이 한국의 농축 활동을 제약하고 있어 한국은 자체적으로 핵잠을 건조하기 어렵다. 1988년에 ‘포괄적 동의’를 통해 일본의 농축·재처리 권리를 인정했던 미국이 35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국의 농축·재처리 활동을 제약하면서 3국 간 안보공조를 운위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며,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한국으로서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우회하여 제3국과의 협력을 통해 핵잠 연료를 생산할 수 있으나, 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는 한국이 검토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결국, 이런 차별성 문제는 미국이 풀어야 할 과제다.

 요컨대 장단기 안보 위협에 직면한 한국이 ‘당장의 생존과 장기적 번영’을 위해 동맹 강화와 남방 삼각의 안보공조를 중시하는 기조를 정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헤쳐나가야 할 난관들도 적지 않다. 특히, 한일 군사협력도 그렇다. 한일 관계의 부침(浮沈)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양국은 2016년 한미일 미사일 탐지·추적(경보) 훈련, 2017년의 대잠수함 훈련, 2022년의 대잠 및 미사일 방어훈련 등을 이어가면서 북핵이라는 공동 위협에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그런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양국은 길섶에 매설된 폭발물들을 피하면서 차곡차곡 단계들을 밟아나갈 필요가 있으며, 그래야 상호 신뢰와 존중 속에서 승수효과를 최대화하는 안보공조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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