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중국 ‘유커’ 입국, 경제 효과 반갑지만 ‘초한전’ 가능성도

전경웅 객원기자
2023년 08월 21일 오전 11:55 업데이트: 2023년 08월 21일 오전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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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중국 문화여유부(우리나라의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가 한국, 미국, 일본 등 70개국에 대한 중국인 여행 제한을 풀었다.

국내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일명 ‘유커’가 6년 만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는 언론 보도가 다수 보인다. 관련 기업은 주가까지 급등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상황, 중국에 대한 서방국가의 견제와 감시 등을 고려하면 순수하게 자국민의 해외여행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가 아닐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수행 중인 ‘초한전’의 관점에서, 이번 해외여행 허용이 국제사회로부터의 포위·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 마련의 한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中, 합법·불법 동원한 주민 이주로 거점 확보

‘초한전’ 가운데는 중국인을 목표 국가에 대규모로 보낸 뒤 ‘차이나타운’ 같은 곳을 만들어 현지에서 세력을 넓힌다는 개념이 있다. ‘초한전’의 저자 이지용 계명대 교수에 따르면, 이런 전술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캐나다 밴쿠버와 호주 시드니다.

중국 공산당은 이 방식을 한국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초한전’을 연구한 안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중국인들은 20여 년 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에 자리를 잡기 시작해 금천구와 관악구로 세력을 넓혔다. 이어 서울 남서쪽의 위성도시인 안산시, 특히 단원구를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을 만들었다.

중국인들은 이를 하나의 축으로 삼은 듯 광명시, 부천시, 인천광역시,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 평택시 등으로 차이나타운을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는 아산시와 천안시에도 중국인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고 원주민들은 전한다.

불법체류자 감시단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런 중국인 밀집 거주 지역은 단순히 중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라 관광객으로 들어온 중국인이 불법체류를 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곳이라고 지적한다.

제주도 또한 중국인 관광객이 불법체류자로 변신하는 주요 거점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조선족을 포함 중국인 불법체류자 수는 약 6만 3000명이다.

‘유커’ 무사증 입국, 중국인 불법체류 주요 통로

‘유커’를 말하면서 중국인 밀집 거주지역과 불법체류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초한전’ 때문이다.

차이나타운은 목표 국가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필수다. 차이나타운의 전제 조건은 중국인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은 다른 나라에 입국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인에게 사증(비자) 없이 입국을 허용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국가들의 경우 관광조차 비자를 받아야만 허락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커’ 유치를 이유로 중국인 관광객에게 무사증 입국을 허용해 왔다. 제주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온 ‘유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불법체류자로 남는다. 제주도는 2002년부터 ‘유커’에 대해 무사증 입국을 허용했다. 하지만 유커 단체관광이 있을 때마다 여러 명이 이탈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모든 ‘유커’의 한국 입국이 관광 목적은 아니라는 정황도 포착됐다. 2018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업체 A사에 대해 중국인 전담 여행사 지정을 취소했는데, A사가 유치한 ‘유커’의 경우 여행 중 이탈한 비율이 전년도 2, 3분기에 각각 50%, 30.4%에 달했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중국인들이 여행 중 사라져 불법체류자가 되는 일이 빈번해지자, 이를 규제하기 위해 중국인 관광객 유치 전담 여행사를 지정하고, 업무 시행 지침도 만들어 배포해 왔다.

이 지침에 따르면 전담 여행사가 유치한 ‘유커’ 가운데 여행 중 이탈한 비율이 분기별로 평균 0.6~1%이면 4개월간 유커 업무를 정지시키고, 0.2% 미만이면 시정명령을 내린다. 1%를 넘으면 전담 여행사 지정에서 배제한다. 지정이 취소된 A사의 경우, 지정 취소 기준의 30~50배에 달한 셈이다.

A사는 중국의 특정 여행사가 보낸 사람들 가운데서 계속 이탈자가 발생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A사는 중국 측 말만 믿고 이탈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 법무부가 통보하기 전까지 이탈한 ‘유커’가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등 허술한 관리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후 A사는 소송을 통해 문체부의 전담 여행사 지정 취소에 대한 처분 집행 정지 신청을 했으나, 같은 해 12월 A사가 유치한 유커 454명 가운데 무려 304명(66.9%)이 이탈하며 같은 문제점을 또 노출했다. 결국 A사는 유커 전담 여행사에서 배제됐다.

‘유커’ 출신 불법체류자, 한국서도 공산당 눈치

유커 출신 중국인 불법 체류자의 행동에서는 중국 현지 상황에 크게 좌우되는 패턴이 나타난다. 이들이 여전히 중국 공산당의 영향 아래 있음을 시사한다.

2017년 3월 초, 제주도에서는 불법 체류하던 중국인 1473명이 자진 출국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직후였다. 당시 언론은 “중국의 한한령 때문에 입국하는 유커가 대폭 줄어들자,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결국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유커로 들어온 불법 체류 중국인들의 자진 귀국은 2020년에도 있었다. 2020년 3월 초순 중국발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자 제주에 머물던 중국인 불법체류자 200여 명이 동시에 귀국하겠다고 몰려들었다. 2월 초부터 계산하면 이때까지 500여 명의 중국인 불체자가 귀국했다.

같은 해 8월 ‘한라일보’ 보도에 따르면 2월부터 6월 말까지 본국으로 돌아간 불체자는 2433명이었다. 이 가운데 2406명(98.4%)이 중국인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불체자 자진 귀국의 이유를 ‘한국 내 일자리 감소’라고 해석했다. 그보다는 당시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펴던 중국 당국이 해외에 오래 거주하는 중국인의 귀국을 코로나 유행 종식 때까지 막을 가능성이 커지자 서둘러 귀국했다는 게 한국 내 중국인들의 반응이었다.

중국은 코로나의 기원이 미국이라고 주장하면서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의 귀국을 엄격히 제한했다가 2022년 12월에야 풀었다. CNN은 “중국 당국이 코로나 방역을 위한 입국 제한을 내년 1월 8일부터 풀기로 하면서 3년 가까이 가족·친지들과 생이별해야 했던 중국인들이 기쁨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집권 후 ‘여우(해외 도피 사범) 사냥’을 통해 해외에 있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사법적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최근에는 외국에 허가 없이 비밀 경찰서를 설립해 직접 현지 중국인을 추적·압박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공산당이 해외의 일반적인 중국인 혹은 중국계 이민자들에게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언제든 그럴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공산당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코로나19 대유행 전 연간 1억~1억 5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유커’라는 이름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이들 가운데 100만~200만 명이 한국에 온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 중 최대 규모다.

중국계 이민자와 중국이 여행객이 많이 찾는 호주와 캐나다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의회와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선거에까지 개입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 정부 및 의회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유커들이 불체자로 눌러앉아 세력화할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