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레이몬도(51) 미국 상무부 장관이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기 위한 초당파적 산업 정책을 펼쳐온 행적이 공개됐다.
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미국 스스로에게 투자해야
지난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레이몬도 상무장관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한 산업 정책을 통과시키려 소속 당인 민주당의 비판을 무릅쓰고 공화당 의원들에게 손을 내밀어 지지를 이끌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레이몬도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 책임자를 지낸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해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H. R. 맥마스터는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 조 로간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레이몬도 장관의 결단에 대해 칭찬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이에 대한 답례로 맥 마스터 전 보좌관과 트럼프 행정부 시절 관료를 지낸 3명을 초대한 자리에서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국과 경쟁 중인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과 경쟁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미국 스스로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중요한 광물,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 등의 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레이몬도 장관의 초당파적 행보 덕분에 4개월 뒤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은 공화당 의원 17명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무사히 상원을 통과했다.
미국 상무부, 바이든 행정부의 중·러 대응 전략 운전자 역할
WSJ는 레이몬도 장관이 이끄는 상무부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의 운전자 역할을 맡은 부처라고 평가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첨단기술 확보 등으로 미국을 압도하려는 전략에 맞설 산업적 대책을 상무부가 내놓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일례로 상무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무기 제조 역량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의 주요 우방국들과 함께 반도체, 통신 장비 및 기타 주요 제품의 대러 수출을 통제했다.
이 밖에도 상무부는 10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을 수출 규제 대상에 추가하는 등 미국의 기술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또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동맹국 줄 세우기’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IPEF는 디지털 산업과 무역, 세계 공급망 문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출범시킨 경제 연대체다.
그간 다자간 무역 협정은 미 무역대표부(USTR)가 주로 맡아왔지만 현재는 이 업무까지 상무부가 책임지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레이몬도 장관, 세계 3위 실리콘 웨이퍼 기업의 미국 투자 유치
이날 신문은 세계 3위 대만 실리콘 웨이퍼 공급업체가 미국에 투자하도록 설득한 사람이 레이몬도 장관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지난 2월 대만 기업 글로벌웨이퍼스는 50억 달러 규모의 독일 투자 계획을 포기하고 대체 부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상무부는 글로벌웨이퍼스를 미국에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지난 6월 글로벌웨이퍼스 회장 도리스 슈와 1시간가량 통화하며 미국에 투자할 것을 설득했다.
당시 도리스 슈 회장은 미국 당국이 지원해주지 않으면 공장 건설 비용이 미국의 3분의 1가량인 한국에 새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레이몬도 장관은 발 빠르게 지원 방안을 모색해 슈 회장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2주 뒤 글로벌웨이퍼스가 텍사스주에 신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레이몬도 장관이 글로벌웨이퍼스 공장 유치를 이끌어냄으로써 미국은 외자 50억 달러를 끌어들이고 일자리 1500개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산업 및 사회기반시설에 1000억 달러 투입 예정
신문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지원 법안과 지난해 통과된 사회기반시설 법 등으로 1000억 달러 이상의 추가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레이몬도 장관은 9월 6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 등 새로운 연방 정부 지원금을 할당하기 위한 부처 계획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로켓 연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이몬도 장관에 따르면 전체 반도체 지원 예산 중 약 280억 달러는 최첨단 칩을 생산·조립하는 시설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대출과 보조금 지급으로 사용될 계획이다. 그리고 약 100억 달러는 구형 및 특수 기술 제조업을 확장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산업 연구 및 개발을 지원하는 데 투자할 예정이다.
그는 “해당 지원금은 기업을 위한 백지수표는 아니다”라며 기업에 지원된 연방 정부의 자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면밀히 감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