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중국 공안·사법조직에 숙청 바람이 불고 있다. 내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과 주요 지도부 교체를 결정하는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반대 세력의 화력을 약화시키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9일 중국 공안부는 쑨리쥔(孫力軍·52) 전 공안부 부부장(차관급)에게 공직과 당직을 모두 박탈하는 쌍개(雙開) 처분을 내렸다. 공산당 일당독재 사회에서 당직 박탈은 정치적 사망을 의미한다.
이달 2일에는 중국 공산당 감찰기구인 ‘중앙기율위원회’(중기위)가 푸정화(傅政華·66) 중국 전국인민협상회의(정협) 사법·법제위원회 부주임(부위원장)이 “엄중한 기율 및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푸정화는 베이징시 공안국장 출신으로 공안부 부부장, 사법부 부장(법무부 장관 격)을 지냈다. 파룬궁(法輪功) 탄압 전담 비밀경찰조직 ‘610 판공실’의 수장을 맡기도 했다.
나흘 사이, 공안·사법조직 전현직 주요 책임자 두 사람에 대한 강도 높은 처분이 이뤄진 셈이다. 이 같은 숙청 바람은 이미 예견된 사태이기도 했다.
지난 9월 중기위는 정치법률위원회(정법위), 공안부, 최고법원, 최고검찰원, 국가안전부, 사법부 등 6대 공안·사법조직과 31개 성(省)·직할시·자치구에 감찰팀을 파견해 “사각지대 없이 사정하라”고 지시했다.
감찰팀 보고를 통해 드러난 전국 공안·사법조직의 문제점은 400여개로 발표됐다. 온라인에 공개된 목록을 보면 약 3분의 2가 정치적 문제와 관련됐다.
중화권 전문가들은 “이번 숙청 바람의 본질은 정치 투쟁”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안·사법조직 숙청으로 ‘정치 우환’ 제거”
지난 1일 중국 공안부는 확대 간부회의를 열고 쑨리쥔에 대한 쌍개 처분과 관련해 “당내 ‘악성종양’과 정치 우환을 단호히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현직 공안부 부부장인 왕샤오훙(王小洪)이 “저우융캉(周永康), 멍훙웨이(孟宏偉), 쑨리쥔 등이 남긴 악영향을 (공안부에서) 철저히 쓸어내야 한다”고도 말했다.
저우융캉은 중국의 공안·사법조직 총괄 책임자였으나 현재 거액의 뇌물수수 등 혐의가 인정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멍훙웨이는 공안부 부부장 출신으로 2018년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총재 재직 중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저우융캉의 측근이다.
쑨리쥔은 멍젠주(孟建柱) 전 중앙 정법위 서기의 직속 부하였는데, 멍젠주와 저우융캉은 모두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측근이다.
즉, 현직 공안부 부부장이 “철저히 쓸어내야 한다”고 말한 대상자 3명 모두 공안부 내 장쩌민 계파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안·사법조직 숙청은 시진핑 집권2기의 역점 과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29일 쌍개 처분을 받은 쑨리쥔 전 공안부 부부장은 공안부 2인자였고, 푸정화는 공안조직에서만 48년간 몸담은 인물이다.
2일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고 알려진 푸정화 역시 저우융캉과 무관치 않다. 그는 당초 상하이방에 속했지만, 저우융캉의 음모에 대한 정보를 시진핑에게 넘겨주면서 시진핑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 결국 낙마하게 되면서, 시진핑의 완전한 신임을 받지는 못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다.
시진핑 정권의 공안·사법조직 숙청은 이들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17년 10월부터 현재까지 공안조직에서는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 덩후이린(鄧恢林), 상하이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 궁다오안(龔道安 ) 등 부부장급(차관급)만 2명 이상 낙마했다. 지방에서는 공안청장급만 100명 이상이 숙청됐다. 법원, 검찰조직은 제외한 숫자다.
기율위는 쑨리쥔에 대해 “정치적 야심이 극도로 크고 권력관이 극도로 왜곡됐다”며 시진핑을 핵심이라는 원칙을 어기고,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권모술수를 쓰고 당내에 패거리를 만들어 개인 세력을 형성했다는 등 7가지 항목으로 죄를 나열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으나, 중화권에서는 지난 수년간 상하이방이 공안 조직 인맥을 동원해 시진핑에 대한 쿠데타를 몇 차례 시도했다는 설이 수 차례 나돌았다. 준 군사조직이나 다름없는 공안기관은 시내에서 공공연하게 무력을 움직일 수 있다.
공안부 실권자였던 쑨리쥔이, 기율위 지적대로 ‘극도로 거대한 정치적 야심’을 품었다면 쿠데타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다.
기율위는 쑨리쥔의 죄목 중 하나로 “건방지게 제멋대로 행동하며 권력을 휘둘렀다”고 지적했다. 항간에는 쑨리쥔이 시진핑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의 상관인 공안부 부장을 우회해 여러 가지 지령을 내렸다는 소문도 있다. ‘건방지게’라는 표현이 최고 권력자를 사칭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한 가지 이유다.
기율위가 제시한 쑨리쥔의 또 다른 죄목은 ‘비밀 누설’이다. 기율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일선에서 직무를 무단이탈해, 대량의 비밀자료를 사적으로 은닉하고 오랜 기간 미신 활동을 펼쳤다”고 밝혔다.
쑨리쥔은 중국 공산당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2월 멍젠주와 함께 우한으로 내려가 치안 유지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왜 ‘무단이탈’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을까.
쑨리쥔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우한의 사망자 수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의 자료 등 기밀정보 보안을 맡았다. 그는 공안조직 및 정보기관 책임자로서 이런 자료들을 모두 살펴보고 ‘사적인 목표’를 품게 됐을 수 있다.
중기위는 쑨리쥔이 비밀자료를 숨긴 뒤 미신 활동을 했다며 비밀자료와 미신적 행동을 연결시키려 했지만, 그가 숨긴 비밀자료는 코로나19의 진짜 기원을 밝혀줄 핵심 증거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훗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를 해외로 빼돌려 ‘보험’ 내지는 협상카드로 마련했으리라는 것이다.
프랑스 자유아시아방송(RFI)는 쑨리쥔인 코로나19 관련 기밀자료 외에 중국 공산당 내부 권력암투에 관한 문서, 음성 및 영상파일을 대량을 빼돌려 호주 국적자인 부인을 통해 호주로 유출했을 수 있다고 한 중국 반체제 인사를 인용해 전했다.
쑨리쥔은 지난 4월 조사를 받기 시작해 쌍개 처분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관례를 고려할 때, 그의 쌍개 처분이 내려졌다는 점보다는 왜 이 시점에 내려졌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쑨리쥔의 호주 국적 부인을 비롯해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과 모종의 협상을 통해 비밀누설을 확실히 차단한 뒤에야 쌍개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쑨리쥔은 자신의 상관인 멍젠주를 비롯해 쩡칭훙(曾慶紅)과 장쩌민에 관한 비밀정보도 다수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에, 쑨리쥔에 대한 쌍개 처분이 공안·사법조직 내 장쩌민 파에 대한 시진핑 진영의 전면적 선전포고라는 해석까지 제기된다.
시진핑 진영으로서는 내년 10월 20차 당대회 전까지, 장쩌민 계파를 비롯해 반대세력을 철저히 억누르고 3연임에 반드시 성공하지 않으면,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권력암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