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업계 “규제에 치이던 노동자들, 생계 막막해 이직”
공급망 일손은 부족한데, 인플레이션 우려에 구매는 급증
전 세계 항공·해운·육상운송 노동자들이 글로벌 공급망 시스템이 붕괴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국제해운회의소(ICS) 등 산업 단체들은 29일(현지 시각)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에 보낸 서한에서 “지속적인 코로나19 제한 조치와 격리 상황 속에서, 정부가 운송 노동자들의 이동 자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ICS는 서한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지난 2년간 격리, 여행 규제, 백신 접종, 진단 검사 등을 견디며 세계 공급망이 중단되지 않고 유지되도록 지탱해 온 해운업계·화물트럭업계·항공업계 노동자들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2년에 가까운 희생을 부담하던 운송 노동자들이 쓰러지면서 세계 공급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모든 운송 부문에 일손 부족이 발생하고, 코로나19로 대우가 열악해지면서 수백만 명이 운송업을 떠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글로벌 운송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며 유엔 총회에 참석한 각국 정상에 운송 노동자 백신 우선접종 시행 등 즉시 행동에 나서 줄 것을 요구했다.
이 서한에는 ICS와 전 세계 6500만명의 운송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국제도로운송연합(IRU), 국제운송노동자연맹(ITF)이 서명했다.
ICS의 서한을 요약하면 일손이 부족해져 공급망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2년간 견뎌온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일손이 부족해진 것은 각국의 중국 공산당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제한 조치 때문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해제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제한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올해 3월, 중국이 항구 3곳에서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외국 선박 선원들의 하선을 금지한 조치가 병목현상의 직접적인 기폭제가 됐다.
당시 ICS는 전 세계 선원 170만명 중 90만명이 개발도상국 출신이며, 이들은 2024년까지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난감함을 나타냈다. ICS가 이번 서한에서 운송 노동자들의 백신 우선 접종을 요구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공급망 병목현상은 인플레이션과도 직결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29일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콘퍼런스에 화상으로 참석해 “이것(공급망 병목현상)이 내년까지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공급망 병목현상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 답답하다”면서도 백신 접종과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우리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경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제한 조치 해제는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처 옵션에 없었다.
공급망 병목현상의 직격탄을 맞은 대형 유통업체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 대형 유통·소매업체 코스트코는 중국과 북미 사이를 오가는 컨테이너선을 통째로 전세 내는 전략으로 대처하고 있다. 중국-미국 동부 해안 노선은 세계에서 가장 물동량이 많은 항로의 하나지만, 올해 운임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0% 이상 폭등했다.
운임 폭등은 공급망 위기의 하나일 뿐이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코스트코는 “항구 지연, 컨테이너 부족, 코로나19 확산, 부품 및 원자재 부족, 인건비 압박”과 더불어 “트럭과 운전사 부족” 등 겹겹의 악재 속에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화장지 등 생필품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량이 급증한 것도 공급망 병목현상을 심화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로스앤젤레스 항구의 전무 이사인 진 세로카는 최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요 입항 항구 앞바다에 컨테이너선들이 상당히 많이 밀려 있다”면서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때 발생했던 생필품 구매 증가가 최근 다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월 연준 의장 역시 29일 ECB 콘퍼런스 발언에서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강한 수요와 부족한 공급의 결과”라며 언제까지 인플레이션이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결국 가격은 저절로 하락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공급망 병목현상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내년까지 이어지겠지만, 인플레이션이 매년 높게 유지되는 상황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 몇 년간 이런 과정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라며 “다만,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