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벌어진 ‘백색테러’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간 ‘송환법 반대’ 시위를 지켜보기만 하던 각계 원로와 시민단체, 공직자들까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홍콩사회의 시민자유와 법치질서를 파괴하는 ‘백색테러’를 규탄하면서 거리에서 피땀 흘리는 홍콩 젊은이들을 응원했다.
홍콩=지난 21일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한 ‘백색테러’ 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24일 홍콩 변호사 협회는 폭력범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고 정부에 조사단 설치를 촉구했다.
협회는 성명에서 “안전과 자유로운 행동은 홍콩 시민의 기본권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하는 것은 책임감 있는 정부로서 최우선 임무”라며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어 “경찰이 제때 유효한 시민 보호조치를 못 했다. 경찰 고위직이 이번 사태에 관련됐다는 의혹까지 언론에서 제기됐다”며 경찰 고위직 등 관계자를 모두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홍콩 법조계 인사들도 관련 성명을 내고 조사단 설치를 요구했다.
전 변호사 협회장 천징성, 량자제 등 번조계 원로들은 공동성명에서 “이번 사건은 최근 수십 년간 홍콩의 법치와 질서, 시민 자유에 대한 가장 심각한 타격”이라며 행정장관, 법무부 장관의 조속한 답변을 촉구했다.
정부 부처 공직자들도 개인이나 단체로 ‘백색테러’를 규탄했다.
홍콩 경찰을 비롯해 소방처, 출입국관리처, 교정처, 법무부, 교육국 등 각 부처 및 정부 기관 30여 곳 직원들은 각자 트위터 등 SNS에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공무원증을 찍은 ‘인증샷’과 함께 “경찰과 조폭의 유착을 규탄한다” “홍콩 힘내라” “젊은이들을 지지한다” 등 문구를 적은 쪽지 사진을 올려 시위대를 응원하고 폭력범을 비난했다.
홍콩의 한 소방구급대는 24일 경찰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경찰의 그 날 ‘대응’은 소방구급대원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무대응’이었다”고 질타했다.
서한에서는 “흉기를 든 조폭들의 시민 공격은 거의 1시간 가까이 진행됐지만, 경찰은 끝내 현장에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어 “경찰을 기다리던 시민들이 소방서에 신고했다. 우리 소방대원들이 출동했지만 폭도를 진압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고 관련 장비도 없었다”며 “경찰의 직무유기에 실망했고 같은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고 전했다.
홍콩 입국처와 교정처 직원들도 각각 공동성명을 내고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우리가 출동해 시민들을 보호하겠다” “사건 후 한 경찰이 백색테러단에 ‘도움’에 감사한다고 했다. 경찰이 의도적으로 사태를 방관했다는 의혹을 자초한다”며 정부의 엄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처럼 홍콩 경찰과 조폭 유착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관련 정황을 폭로하는 내용도 공개됐다.
신분증 인증샷을 제시하며 자신을 “999신고센터에서 근무하는 현직 경원(경찰 하위직)”이라고 밝힌 한 인물은 “사건 당일 당직근무 20명이 2만4천건의 신고 전화를 처리해야 했다. 일손이 너무 부족했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또한 “관할 경찰서가 문을 닫고 전화까지 받지 않았다. 999신고센터에 전화가 몰린 것도 이 때문”이라며 “경찰 고위층에서 현장에 병력을 파견하지 않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 입장은 내 입장이 아니다” “홍콩인 힘내라”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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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테러 혹은 위안랑 사건
2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43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후 홍콩 지하철 위안랑역과 인근 지역에서 하얀 티셔츠를 입은 남성 100명이 각목과 파이프, 흉기로 무장한 채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공격은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 집중됐지만, 피해자 중에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과 취재진, 임산부까지 포함됐다. 하얀 티셔츠는 ‘중국 정부 지지’를 뜻하며, 검은 옷은 ‘송환법 반대’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괴한들의 옷차림에 따라 ‘백색테러’로 명명된 공격으로 홍콩시민 최소 45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