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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탄생 150주년을 기리며

2026년 01월 01일 오후 6:38
‘시글린데를 구하기 위해 자매들에게 간청하는 브륀힐데’(아서 래컴 작, 1910) | Public Domain‘시글린데를 구하기 위해 자매들에게 간청하는 브륀힐데’(아서 래컴 작, 1910) | Public Domain

2026년 여름, 클래식 음악계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선율로 가득 채워질 전망이다. 바그너의 기념비적인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이하 ‘반지’)가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발퀴레와 거인, 용, 그리고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의 대서사기 베를린과 드레스덴, 파리, 런던을 거쳐 프라하, 잘츠부르크, 로스앤젤레스의 무대를 수놓을 예정이다. 물론 이 거대한 여정의 정점은 1876년 8월 모든 것이 시작된 성지, 독일 남동부 바이로이트가 될 전망이다. 이번 시즌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켄 나가노 등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들과 이 시대 가장 고귀한 바그너 보이스들이 대거 집결한다.

대중문화의 뿌리가 된 바그너의 유산

1200년경의 독일 서사시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신들의 시대가 저물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하는 전설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1876년 초연 당시 유럽 관객에게 이 ‘반지’ 연작은 단순한 오페라가 아닌 음악과 연극의 새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바그너는 이미 베토벤 교향곡 9번 이후 19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꼽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발표한 상태였다. 그는 천재적인 거장으로 추앙받는 동시에 오만한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 ‘문제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초연 당시의 스캔들과 찬반 논란조차 ‘반지’가 세운 역사적 성취를 가리지는 못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 영화 스틸컷

오늘날 대중문화 곳곳에도 바그너의 흔적은 깊게 박혀 있다. 오페라 가수가 뿔 달린 투구를 쓴 전형적인 모습은 사실 바그너의 의상 디자이너 칼 에밀 되플러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 속 헬기 공격 장면에 흐르는 ‘발퀴레의 기행’은 클래식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선율이다. 또한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속 절대반지를 향한 탐욕과 마력의 묘사 역시, 한 세기 앞서 바그너가 그린 보탄과 브륀힐데의 서사와 놀라울 정도로 궤를 같이한다.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열린 리하르트 바그너 페스티벌 개최 장소 | 리코 나이첼

‘종합예술’로 오페라의 틀을 깨다

바그너는 1848년 이후 자신의 작품을 더 이상 ‘오페라’라 부르기를 거부하며 ‘종합예술’이라는 용어를 주창했다. 이는 음악과 극, 무대 장치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예술적 이상향을 의미했고, 단순한 명칭의 변화를 넘어 예술 철학의 근본적인 전복이었다.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오페라가 화려한 아리아와 단순한 대화가 교차하는 ‘넘버 오페라’ 형식을 취했다면, 바그너는 이를 과감히 탈피했다. 박수와 “브라보!” 소리가 극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이탈리아식 전통은 ‘종합예술’의 맥락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그너는 1850년 프란츠 리스트의 지휘로 초연된 ‘로엔그린’에서 구조적 통일성과 매끄러운 극적·음악적 구상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미 이때 더 몰입감 있는 경험을 위해 전형적인 오페라 구조를 탈피해 있던 그는, ‘니벨룽의 반지’를 통해 그 혁명적 선언을 완성했다. 이른바 ‘음악 드라마’의 탄생이다.

1876년 바이로이트 제작에 참여한 라인메이덴 | 퍼블릭 도메인

‘반지’가 초연된 역사적인 그날

‘반지’는 1848년부터 1874년까지, 약 26년에 걸쳐 완성됐고, 1876년 8월 13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초연됐다. 장르의 경계를 허문 이 초연에는 전 세계의 왕족은 물론 리스트, 차이콥스키, 프리드리히 니체, 레프 톨스토이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의 기대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례가 없었다.

첫째, 그 규모 면에서 ‘반지 연작’은 당대까지 시도된 그 어떤 연극이나 음악적 시도를 훨씬 능가했다. 4부작의 총 러닝타임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도 15시간이 넘었다.

둘째, 바그너가 독일 중동부 바이로이트에 오직 이 초연만을 위해 새로운 극장을 설계하고 건립했다는 점이다. 그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이 관객의 시야에서 완전히 숨기는 파격적인 설계를 도입해 지휘자의 움직임이 아닌 오직 무대 위 드라마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관객을 현실로부터 분리해 신화의 세계로 강제 전이시키는 일종의 ‘세속적 종교 체험’을 의도한 치밀한 안배였다.

최초의 바이로이트 브룬힐데를 연기한 아말리 마테르나 | 퍼블릭 도메인

디지털 혁신과 고증으로 복원된 150년의 시간
이번 150주년 기념 공연들은 극단적인 두 갈래의 접근을 보여준다. 성지 바이로이트가 AI 기술을 활용해 150년의 연극사를 시각적 텍스트로 재구성하는 혁신을 꾀한다면, 드레스덴은 철저한 고증을 통한 원형 복원에 집중한다.

201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지휘자 나가노 켄트 | 프란츠 노이마이어/APA via Getty Images

특히 마에스트로 켄 나가노는 2023년부터 1876년 당시의 연주 관습과 악기 편성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바그너가 직접 고안한 ‘바그너 튜바’와 낮은 음역의 바순, 18개의 모루가 동원되는 이번 드레스덴 공연은 바그너가 의도했던 ‘순수한 소리’를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또한 현대의 비브라토가 섞인 창법 대신, 19세기 식의 절제되고 명료한 ‘스트레이트 톤’ 성악 발성을 복원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바그너의 음악을 경험한다는 것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층위와 조우하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이번 150주년 시즌은 수많은 놀라움을 선사할 것이다. 중간계(Middle Earth)의 서사를 넘어 발할라(Valhalla)의 웅장한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금 바그너가 손을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