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법원장들 “재판소원은 사실상 4심제…헌법 위배 우려 커”

2025년 10월 20일 오후 6:32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맨 우측)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맨 우측)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법부 수장들 일제히 신중론 제기
사법권 독립·권리구제 실효성 측면서 신중한 검토 필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20일 수도권 각급 법원 국정감사에서 주요 법원장들이 여권이 추진 중인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대해 사실상 4심제 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위헌 소지가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사법권의 독립과 권리구제의 실효성 측면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은 이날 국감에서 “어떤 형태의 재판이 되든 4심제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권리구제가 지연되고, 소송비용이 늘어나 경제적 약자가 제대로 권리를 구제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소원 도입이 기본권 보호 취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준현 수원고등법원장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역할은 헌법 제정 당시 충분히 고려돼 정립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판소원 제도는 헌법 체계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적 공감대와 헌법적 논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오민석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헌법은 사법권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재판소원 제도는 이 헌법 조항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법원장은 과거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역임한 인물로, 대법원 전체 사건을 검토한 경험이 있는 법관이다.

현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권은 이를 개정해 대법원 확정판결 등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당 내 사법개혁특위는 지난 17일 발표한 개혁안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별도 법안을 발의해 공론화에 나설 계획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번 제도가 현실화될 경우 사실상 ‘4심제’로 기능하면서 판결의 확정성이 훼손되고, 사법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판단을 다시 심사하게 되면 사법권 독립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 관계자들도 최근 국회 보고에서 “재판소원 제도는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지만, 입법·조직·절차적 정비 없이는 현실적 부담이 크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소원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안됐지만, 사법 절차와 헌법 체계 전반을 바꾸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입법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법원장들의 일제한 신중론은 제도 도입 논의가 단순한 사법개혁의 차원을 넘어 헌법적 재설계 수준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20일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이 현실화하면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인 대법관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