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후진타오 퇴장 사건 때 특정 원로들 노린 ‘함정’ 팠다”

“시진핑, 원로 15인 명단 주고 소란 시 체포 지시”
“회의장 외부에 軍 대기시키도록 장유샤에게 명령”
“장유샤, 원로층에 정보 흘려… ‘돌발 사건에 무반응할 것'”
2022년 중국 공산당(중공)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에서 벌어진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강제 퇴장 사건은 시진핑이 당 원로들을 노리고 파놓은 함정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의 시사평론가 수샤오허(蘇小和)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진핑(習近平)은 원로들이 회의장에서 반발할 것을 예상해 미리 통제 계획을 마련했지만, 장유샤(張又俠)의 기밀 유출로 사건은 미연에 차단됐다”고 말했다.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3연임을 확정 지으며 1인 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이와 함께 중공의 기존 통치방식이었던 집단지도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이익을 유지하던 원로들에게는 매우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수샤오허는 시진핑은 원로들이 당대회 결정에 반발해 소란을 일으키면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원로 15명을 ‘소란죄 혐의’로 체포할 계획이었다면서 원로들의 이름이나 구체적인 신분 등은 밝히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시진핑은 이를 위해 측근 왕샤오훙(王小洪) 공안부 부장(장관)에게 미리 체포 대상자 명단을 알려주고 회의장 내부에 보안요원과 사복경찰을 배치하도록 지시했다. 아울러 군사위 부주석 장유샤 장군에게 회의장 밖에 군을 대기시키도록 했다.
현재 장유샤는 시진핑을 견제하는 대표적 군 인사로 알려졌지만, 20차 당대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가까운 관계였다. 하지만 그는 시진핑 측근인 동시에 원로 그룹에 속한 인물이기도 했다.
수샤오허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장유샤가 회의 전 일부 원로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반응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주장했다.
후진타오의 강제 퇴장, 모른 척한 고위 간부들
실제로 이날 회의에서는 돌발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적으로 논란이 된 후진타오 강제 퇴장이었다.
당시 관영매체 보도 영상을 보면, 후진타오는 자기 앞에 놓인 붉은색 표지의 서류를 집으려 했다. 내용을 확인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옆자리에 있던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에게 제지됐다.
여기에 시진핑이 개입했다. 그가 수행원을 불러 뭔가 지시하자 2명의 보안요원이 다가와 후진타오를 강제로 끌고 나갔다. 이 와중에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책상 앞에 놓인 서류를 낚아채려 했고, 시진핑이 서류의 다른 한쪽을 붙잡고 버티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후진타오는 서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채 퇴장했다.
이 사건은 중공 고위층 분열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올해 초 “중국의 권력 내부 투쟁이 드러난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라며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방송된 내부 투쟁 장면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인이 지켜봤지만 정작 당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사건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영상에 포착된 다른 중공 고위 인사들은 일제히 전방을 응시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후진타오를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수샤오허는 “시진핑의 핵심 측근이었던 천민얼(陳敏爾)이 ‘후진타오 서기는 우리에게 잘해주셨던 분’이라고 말해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렸다”며 “그 바람에 원래 정치국 상무위원에 포함돼 있었으나 막판에 빠지고 리시(李希·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교체됐다”고 말했다.
충칭시 서기였던 천민얼은 ‘시진핑 키드’로 불리며 후계자군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2022년 당대회에서 예상과 달리 상무위원 진입에 실패하며, 두 달 뒤 톈진시 당서기로 옮겨갔다. 사실상 정치적으로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됐다.
끌려나가던 후진타오에게 응답한 고위 인사는 또 있었다. 바로 리커창(李克強) 전 총리였다. 그는 재임 중 경제 정책 분야에서 시진핑과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후진타오는 퇴장하면서 리커창 당시 총리의 어깨를 토닥였고, 리커창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별 인사를 나눈 셈이다. 리커창은 이듬해 퇴임했으나 7개월 만에 상하이의 한 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 후 휴식하던 중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다.
“시진핑, 후진타오가 마이크 잡기 전 퇴장시킨 것”
붉은색 표지 서류 쟁탈전이 기점이 되긴 했지만, 꼭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후진타오가 퇴장당했을 것이라는 게 평론가 수샤오허의 주장이다.
그는 “시진핑은 이미 후진타오를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며 “자리 배치상 후진타오 앞에 마이크가 놓였는데, 그가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다른 인사가 호응하면 회의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어 선제 대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후진타오가 끌려나간 2022년 중공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핵심 목표는 자신의 국가주석 3연임 확정 외에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 축출, 자기 측근 인사들의 최고 지도부(중앙정치국) 진입 등이 있었다.
25명으로 구성된 중앙정치국은 중공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이 중 상무위원 7명은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며, 시진핑 역시 이들 중 서열 1위인 총서기다. 상무위원과 그 후보군인 정치국 위원 명단은 중공 내 모든 정치 세력의 최대 관심사다. 막대한 권력과 이권이 달렸기 때문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후진타오가 입수하려 했던 ‘붉은색 표지 서류’에 정치국 상무위원 명단이 적혀 있었으며, 시진핑은 후진타오가 이를 확인하고 강하게 반발할 것을 우려했다고 관측했다.
런던대 소아스(SOAS) 중국학과 스티브 창 교수와 이 대학 중국연구소 연구원 올리비아 청은 “후진타오가 명단을 봤다면 자신이 후계자로 낙점한 후춘화(胡春華) 정협 부주석의 이름이 빠졌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청단 소속인 후춘화는 후진타오가 키워온 후계자다.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됐다면 시진핑의 뒤를 이을 인물이었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후 후춘화는 권력의 중심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이날 당대회에서는 리커창, 후춘화, 왕양(汪洋) 등 공청단 파벌이 사실상 전멸했다.
수샤오허의 주장을 종합하면 시진핑은 지난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원로 세력의 반발을 예상하고 일부 체포 등 강경책을 세웠으나 장유샤가 이에 관한 정보를 원로 측에 흘리면서 무산시켰고, 시진핑은 일부 소란에 대비하면서도 후진타오의 반응을 보며 사태가 커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등 양측 사이에 험악한 수싸움이 오갔다는 것이다.
해외 중국 인권단체 소속의 중공 당(黨) 역사 전문가 가오원취안(高文謙)은 “일단 20차 당대회는 시진핑이 완승을 거뒀다”고 평가하면서도 “강력한 권력 구조 구축에 실패하면서 작은 실수만으로 불만이 폭발할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대만의 정치 칼럼니스트 두정(杜政)은 원로층 입김이 거세지는 ‘베이다이허’ 회의의 올해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베이다이허는 매년 7월 말~8월 초 현직 당 간부와 퇴임 원로들이 휴양지에 모여 주요 현안을 협의하는 비공식 회의다.
두정은 “베이다이허 회의가 원로들의 시진핑 책임 추궁 자리가 된다면, 올해 열릴 4중전회는 사실상 그의 퇴진 선언 무대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의 현(공산당) 체제가 해체되고 민주 체제로의 전환이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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