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허이허이 소야~”…전통의 숨결 따라 논 위에 울려 퍼진 ‘겨릿소 노래’

국립농업박물관, 홍천 겨리농경문화 시연 및 모내기 체험 행사 열어

2025년 05월 23일 오전 11:39

“허이허이 허이 소야~ 발 맞춰 가세 허이 소야~”

초여름 햇살 아래, 두 마리 소가 나란히 써레를 끌며 물 찬 논을 천천히 나아간다. 한 사람이 박자를 맞춰 구령을 외치면 다른 한 사람은 앞에서 소의 방향을 잡는다. 소리와 발걸음, 흙과 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수원 국립농업박물관에서 열린 ‘겨릿소 써레질 시연 및 손 모내기 체험 행사’는 전통 농경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한 자리였다. 박물관과 홍천겨리농경문화보존회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는 초등학생 120여 명이 참여해 옛 농사법을 직접 체험했다.

‘겨릿소 써레질’은 두 마리의 소가 나란히 멍에를 메고 써레(耙)를 끄는 방식으로, 조선시대부터 강원도 홍천군에서 전승돼 온 전통 농법이다. 논바닥을 고르고 흙덩이를 부수는 데 효과적이며, 산악 지형이 많은 지역의 환경에 잘 맞아 오랜 세월 유지돼 왔다. 이 농법은 2021년 5월 7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됐다.

전통 한복을 입은 오경태 국립농업박물관장이 직접 ‘겨릿소 써레질’ 시범을 보이고 있다. | 한국농업국립박물관

홍천겨리농경문화보존회 조성근 회장은 “농부와 소는 호흡을 맞춰야 한다. 서로의 리듬을 이해하지 않으면 써레질은 불가능하다”며 “이는 단순한 농사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 정신이 담긴 전통”이라고 말했다.

겨릿소 농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소리’다. 농부는 소를 몰며 농요(農謠)를 부르는데, 이는 단순한 노래가 아닌, 소의 보폭과 방향을 조절하고 감정을 나누는 수단이었다.

“허이허이 허이 소야~ 발 맞춰 가세 허이 소야~
돌밭도 논밭도 우리가 간다~ 해가 뜨면 나가고 해 질 때 오자~”

이러한 농요는 세대를 거쳐 구전된 구술문화로, 자연과 노동의 조화를 노래한다. 흙과 땀, 노래가 어우러진 그 순간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시연이 끝난 뒤 학생들은 직접 물 찬 논에 들어가 손으로 모를 심었다. 경기도종자관리소로부터 분양받은 보리벼, 아롱벼 등 13종의 토종벼가 다랑이논에 정성스레 심어졌다. 아이들은 주황색 긴 양말을 신고 진흙 속에 발을 담그며 손수 모를 꽂았다. 새참으로 강원도 장떡과 가래떡을 나눠 먹으며 옛 농촌의 정취를 오롯이 느꼈다.

행사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이 ‘손 모내기’ 체험을 하고 있다. | 한국국립농업박물관

이번에 참여한 학생들은 오는 가을, 자신들이 심은 토종벼와 가루쌀을 수확하고 탈곡하며 ‘쌀 한 톨, 밥 한 그릇’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행사장에는 조선 세종 시대에 편찬된 농서 《농사직설》의 구절,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다(農者爲天下之本)”라는 글귀가 적힌 깃발이 높이 걸려 있었다. 이는 중국 《한서·식화지》에 실린 “민이식위천, 농위정본(民以食爲天, 農爲政本)”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농업이야말로 국가의 뿌리이자 백성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임을 뜻한다. 지금도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이름 아래 이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날 전통 한복을 입고 직접 ‘겨릿소 써레질’ 시범에 나선 오경태 국립농업박물관 관장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목적은 전통 농업 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있다”며 “학생들에게 왜곡되지 않은 진짜 전통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쌀이라는 주식이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밥 한 공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직접 느끼게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국 농업, 나아가 아시아 농업 전반은 세계화·개방화의 흐름 속에서 다소 비관적이고 수세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며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드론과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미래 농업의 가치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농업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