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디지털 위안화’ 설계자, 부패 혐의로 낙마…“시진핑 권력약화 신호”

강우찬
2024년 11월 25일 오후 7:35 업데이트: 2024년 11월 25일 오후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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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디지털 위안화’ 프로젝트의 설계자가 최근 뇌물수수를 이유로 해임되고 당에서 제명됐다.

지난 20일 중국공산당의 당원 감찰 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공직자 사정기구인 국가감찰위원회는 야오첸(姚前) 전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과학기술감독국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쌍개(雙開)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쌍개는 당적과 공직을 모두 박탈하는, 중국 공산당이 당원에게 가하는 최고 수준의 징계다. 당 복귀도 영구히 차단된다. 이 밖에 뇌물수수 혐의 자체는 사건이 검찰에 송치돼 별도 사법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야오첸은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낸 블록체인 기술 전문가다. 이른바 ‘디지털 위안화’로 불리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설계를 주도한 인물이다.

중국 관영언론에서는 야오첸이 직권을 남용해 특정 개인과 업체에 이익을 주거나 채용에 개입하고 그 대가로 값비싼 선물을 받거나, 불법 투자를 했으며 가상화폐로 뇌물을 받았다면서도 구체적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

또한 당국이 야오첸의 재산을 몰수했으며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수사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전 고위 간부의 뇌물수수 사건으로 중국 언론에 보도되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중화권 평론가들의 견해다.

독립 평론가 짜이예슈어(在野說·필명)은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반부패란 명목의 체포는 주지하다시피 권력 혹은 어떤 이권을 둘러싼 암투의 결과물”이라며 “이 사건은 디지털 위안화 프로젝트가 계속되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짜이예슈어는 “인민은행은 지난 2014년 초 디지털화폐연구소를 설립하고 야오첸을 초대 소장으로 임명했다. 야오첸은 직접 디지털화폐 프로젝트를 추진할 팀원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인민은행 총재(행장)는 역대 최장수 행장이었던 저우샤오촨이었다. 그는 2002년 11월 장쩌민 전 총서기(2022년 사망)에 의해 행장에 올랐는데 당시 장쩌민은 퇴임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퇴임 직전 자기 인물을 ‘알박기’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저우 행장은 이후 16년간 재직하다가 지난 2018년 3월 물러났다. 후임에는 시진핑의 측근인 이강(易綱) 부행장이 승진 발탁됐다. 저우 행장 퇴임을 두고 중화권에서는 ‘장쩌민 계파 청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계파 숙청의 물결 속에서도 야오첸은 인민은행에서 1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증권감독관리위로 자리를 옮겨 과학기술감독국 국장이 됐다. 이곳에서 그는 가상화폐를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야오첸이 장쩌민 계파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그가 인적 청산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 소장을 지냈을 만큼 가상화폐, 특히 블록체인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에서는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열풍이 고조됐고 당국의 규제도 급속히 강화됐다.

2017년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거래량 중 중국 위안화로 결제되는 비중은 5%에서 20%로 급등했고, 2019년 9월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능력은 75%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시진핑이 이끄는 공산당 정권은 2017년부터 가상화폐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규제 당국은 중국 내 가상화폐 거래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폐쇄했으며, 거래소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가상화폐를 불법화했다.

공산당은 민간이 주도하는 가상화폐는 억제했으나 블록체인 기술에는 주목했다. 하지만 중앙집중을 벗어나기 위해 개발된 블록체인 기술을 오히려 중앙집중을 강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디지털 위안화 프로젝트 탄생 배경이다.

야오첸 전 중국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 소장 겸 전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과학기술감독국장 | 웨이보

‘디지털 기축통화 구상’ 이면에는 사유재산 통제 의도

인민은행은 2017년 말 디지털 위안화 개발을 본격화해 2019년 말 선전, 쑤저우, 슝안신구, 칭다오에서 시범 도입했으며 2020년 공식 발행했다. 2022년에는 더 많은 지역에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도입했다.

올해 5월부터는 홍콩에서 중국 주요 은행을 통해 디지털 위안화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시범 사업을 개시했다. 디지털 위안화가 발행된 이후 중국 본토 바깥(역외)에서 사용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공산당은 달러화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축통화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글로벌 거래 시장에서 위안화 결제 범위를 늘리고 있으나, 아직은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국의 경제 제재를 두려워하는 국가나 중남미 국가 혹은 신흥국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세계 무역 거래의 75%를 차지하는 달러화의 압도적인 위상 앞에, 중국 공산당이 디지털 위안화 보급을 추진하는 최대 목적은 대외적인 것보다는 대내적 측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게 중화권 전문가들의 견해다.

재미 평론가 탕징위안(唐靖遠)은 중국 매체 ‘펑파이신문(澎湃)’에 지난해 9월 실린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4년이나 추진했는데 사용자는 왜 그리 적을까’라는 기사를 언급하며 “공산당의 강력한 의지에도 다수 중국인이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꺼린다”고 말했다.

탕징위안은 “이 기사에서는 디지털 위안화와 은행 온라인 송금의 차이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요점은 은행 송금은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실명 계좌가 필요하지만, 디지털 위안화는 법적으로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펑파이 신문 기사에서는 전문가를 인용해 ‘통제 가능한 익명성’에 관해 “소액 거래는 익명성, 대량 거래는 추적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면 자신의 개인정보를 지키는 데도 유리하다면서 “디지털 위안화 사용으로 축적된 거래 및 자산 데이터가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의 디지털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탕징위안은 “이 기사는 개인 간 소액 거래는 추적을 안 하고 개인정보도 보호해 주겠다, 국익을 위한 것이니 현금 대신 디지털 위안화 많이 사용하라는 의도”라며 “하지만 역설적으로 중국인들이 왜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꺼리는지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반 중국인들도 디지털 위안화가 개인의 사유 재산 거래를 엄밀히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을 것”이라며 “일단 화폐가 디지털화하면 당국은 손쉽게 거래를 감시할 뿐만 아니라 사용마저 통제할 수 있다. 특정 계층, 지역, 민족, 개인의 사용처와 금액을 제한할 수 있고 아예 거래를 막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탕징위안은 “이는 시진핑이 추진하는 완전하고 철저한 국민 감시 프로젝트의 일부”라고 했다.

그는 또한 민간 기업들이 이룬 경제적 성취를 국유화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봤다. “현재 중국의 전자 결제 시장은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양분하고 있는데, 디지털 위안화가 자리를 잡으면 전자 결제 시장이 완전히 국유기업에 넘어갈 것이다.”

대만 중화경제연구소의 왕궈첸(王國臣) 연구원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의 디지털 위안화 프로젝트는 철저한 사회 통제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왕궈첸 연구원은 “품목별 사용액 상한을 제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이 야채와 돼지고기 등 먹거리 품목을 지정해 1일 소비한도를 50위안(약 9700원)으로 제안한다면, 돈이 있어도 소비할 수 없게 된다. 일종의 배급제와 같은 효과”라고 했다.

중국의 사회신용제도와 결합하면 더욱 무시무시한 통제 장치가 될 수도 있다고 왕 연구원은 경고했다.

사회신용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점수를 주고 ‘선행’을 하면 추가 점수를 주고 ‘사회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감점을 하는 제도다. 선진국에서도 신용점수제도를 운영하지만 금융 분야에만 한정한다.

중국의 사회신용제도는 단순히 세금 체납이나 신용불량이 아니라 전국에 최소 6억 대 이상 설치된 감시카메라(CCTV)와 연계해 소음 발생, 교통 신호 위반, 쓰레기 분리수거 위반 등까지 감시, 채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제도는 중국 내 주요 도시에서는 시행 중이다. 지난 2019년 6월 기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공식 자료에 따르면 낮은 점수로 블랙리스트에 등록돼 항공편 이용이 제한된 국민은 2682만 명, 고속철도 이용권 구매가 제한된 국민은 596만 명에 이른다.

왕궈첸 연구원은 “중국 공산당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는 인권활동가에게 하루 사용액을 10위안(약 1900원)으로 제한해버리면 사실상 경제활동은 물론 생계마저 위기에 빠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당내 반대 세력, 이권 침해 우려에 디지털 위안화 제동”

공산당의 주민 통제 능력을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디지털 위안화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진핑을 반대하는 당내 세력이다.

탕징위안은 “디지털 위안화는 아직 미완성이다. 현직은 아니지만 프로젝트 설계자인 야오첸이 부정부패 혐의로 쌍개 처분을 받은 것은 시진핑으로서는 정치적 타격이다. 자신의 위업으로 삼으려 했던 프로젝트에 흠집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도 야오첸이 결국 낙마한 것은 시진핑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라며 “디지털 위안화 도입은 전자 결재 시장을 장악하고 엄청난 부를 누려온 공산당 유력 가문들의 이익에 직결된다. 즉 시진핑이 이들과의 권력 싸움에서 예전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재미 정치 평론가인 천포쿵(陳破空)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는 “최근 중국 고위층의 연이은 해고와 반부패 사건은 모두 시진핑 진영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는 시진핑의 세력도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으로 그의 권력이 약화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