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17세기 유럽 전역을 열광하게 만든 자연주의 화가다. 그의 작품 ‘성 프란치스코와 성 로렌스가 있는 탄생화’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예술품 도난 사건의 대상이 됐기에 그 성스럽고 장엄한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다.
1969년 10월 17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중심지 팔레르모에 위치한 성 로렌스 예배당에 도둑이 들었다. 그날은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두운 밤이었다. 두 명의 도둑은 천둥소리에 맞춰 창문을 부수고 실내로 침입했다. 그들은 면도칼을 사용해 제단 위 액자에서 이 작품을 도려내 훔쳐 갔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5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FBI가 선정한 10대 미술품 범죄 목록에 등재돼 있다.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바로크 운동뿐만 아니라 미술사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예술가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 회화 기법을 변형해 새로운 것을 도입했다. 그는 평범한 이들을 모델 삼아 극적인 조명을 활용했다. 또한 관객과 작품 간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구도를 사용했다.
카라바조는 스페인 태생이지만, 생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밀라노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후 로마로 이주해 명성을 쌓았다. 이후 그는 시칠리아의 작은 섬나라 몰타로 망명해 작품 활동에 몰두했고, 수많은 걸작을 완성했다.
카라바조의 걸작 ‘성 프란치스코와 성 로렌스가 있는 탄생화’는 1609년 그가 나폴리로 돌아와 완성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로마로 돌아가던 중 병에 걸려 3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5년 남짓한 기간, 짧지만 화려한 경력을 쌓은 그는 이 걸작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 로렌스가 있는 탄생화’
이 작품은 카라바조가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위해 그린 것이다. 화면의 중심에는 성모와 어린 예수가 있다. 성모는 아들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 주변을 성 프란치스코, 성 로렌스, 그리고 성 요셉이 둘러싸고 있다. 공중에는 ‘가장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문구가 쓰인 깃발을 든 천사가 떠 있다. 이 작품에서 신성을 상징하는 것은 천사뿐이고, 그 외의 요소는 일상적인 것들이 사용됐다. 작품의 배경은 카라바조 작품의 특징대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화면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이 인물들을 밝힌다.
영국의 저명 미술사학자 앤드류 그레이엄-딕슨은 저서 ‘카라바조: 신성하고 세속적인 삶’에서 이 작품을 카라바조의 또 다른 작품 ‘목자들의 경배’와 비교했다. 같은 소재를 다룬 ‘목자들의 경배’는 차갑고 황량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이 작품은 부드럽고 온화하다고 그는 평가했다. 아울러 두 작품 모두에서 성모는 지친 듯한 모습으로 바닥에 앉아 있지만, ‘성 프란치스코와 성 로렌스가 있는 탄생화’ 속 성모는 황량한 고립감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작품이 사라진 자리
이 작품은 17세기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성 로렌스 예배당을 더욱 신성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여론은 마피아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추측한다. 도난 사건 발생 후 수백 년이 지나도록 범인의 신원과 범행 동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수사관들은 여전히 추적을 멈추지 않고 있다.
1969년 도난 사건 이후, 그림이 있던 자리는 한동안 비어 있었다. 현재는 2015년 디지털 복원 연구소에서 제작한 대형 복제본 사진이 그 자리에 걸린 채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높은 예술적 가치로 평가받는 이 작품을 두고 각종 소문이 무성하다. 화재로 소실됐다거나, 여러 조각으로 잘렸다거나, 도난 당시 도둑들이 캔버스를 말아서 옮기려다가 도료가 손상돼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그림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지만, 일각에선 그림이 세상 어딘가에 온전하게 보존돼 있을 거라 믿으며 카라바조 예술의 정수를 담은 이 작품의 원본을 감상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