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의 기원

아일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신 다그다(Dagda)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하프를 지니고 있었다. 이 하프의 이름은 ‘우아흐네(Uaithne)’로, ‘네모난 음악’이란 뜻을 지닌다. 참나무로 만들어진 이 현악기는 정교하게 장식됐을 뿐 아니라 마법적인 힘까지 담고 있었다. 다그다는 이 하프의 줄을 튕김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조종하고 날씨를 다스릴 수 있었다.
다그다의 마법 하프에 대한 신화는 전해지는 버전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전승에 따르면 ‘투어허 데 다넌(Tuatha Dé Danann)’이란 신적인 존재들이 다그다에게 지혜와 보호를 의지하고 있을 때 그들의 적(敵)인 초자연적 종족 포모리아족(Fomorians)이 전투를 준비하며 다그다의 하프를 훔치기로 결심한다. 하프를 훔치는 데 성공한 포모리아 전사들은 다그다를 그의 위대한 힘의 원천으로부터 떼어놓으면 전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아일랜드 신화 속 초자연적 종족으로 요정이나 엘프와 유사한 존재인 ‘투어허 데 다넌(Tuatha Dé Danann)’. 스코틀랜드의 화가 존 던컨이 1911년 아일랜드의 전통신화를 주제로 그린 ‘시드의 기사들(The Riders of the Sidhe)’에 묘사된 모습.⎟ Dundee Art Galleries and Museums, Scotland. Public Domain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포모리아족은 여전히 자신들이 열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법의 하프를 손에 넣은 덕분에 여전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투어허 데 다넌과 다그다는 하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즉시 하프를 되찾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깊이 잠든 포모리아족의 대규모 군대를 발견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다그다의 정당한 소유물인 하프를 되찾을 수 있을지 고심했다.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다그다는 누군가를 껴안으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하프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두 팔을 벌린 채 기다리는 동안 벽에 걸려 있던 하프는 스스로 풀려나 그의 곁으로 날아왔다. 포모리아족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다시 싸움을 걸려고 했다. 그러나 다그다가 연주를 시작했다.
먼저 그는 웃음을 유도하는 곡을 연주했다. 그러자 적군은 무기를 떨어뜨릴 정도로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어 슬픔을 부르는 곡을 연주하자 포모리아족은 자신들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잠의 곡을 연주했고 포모리아 전사들은 조용히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그 틈을 타 다그다와 투어허 데 다넌은 자리를 떠났고 이후로는 아무도 다그다의 마법 하프를 훔치려 하지 않았다.
더 큰 음악적 그림
다그다의 마법 하프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더 큰 음악적 전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에메랄드섬’이라 불리는 아일랜드에서 발견된 기독교 유물과 필사본들에는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기부터 하프가 묘사돼 있다.
1185년 잉글랜드의 존 왕자(훗날 존 왕)가 아일랜드 남동부 먼스터 지역의 도시 워터퍼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더블린에 위치한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EPIC)’에 따르면 그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하프를 얼마나 능숙하게 연주하는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화가이자 시인인 토머스 뷰캐넌 리드의 1867년작 ‘에린의 하프(The Harp of Erin)’. 이 우의적(寓意的) 회화는 하프 연주자를 아일랜드의 의인화된 존재로 묘사하고 있으며 연주자는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바위에 사슬로 묶여 있다.⎜ Cincinnati Art Museum. Public Domain
그는 아일랜드인들의 하프 연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나라 사람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연주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보기에 ‘브리튼인들’의 하프 연주는 “느리고 거칠었던” 반면 아일랜드에서는 아마추어 하프 연주자들조차 “경쾌하고 빠른” 음을 연주했으며 그 속에서 음악적 조화로움과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하프는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아일랜드의 국가 상징으로 선포된 바 있다. 아일랜드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인 1541년 헨리 8세는 하프를 아일랜드 왕국의 상징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1922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하프는 다시 한번 국가의 공식 문장으로 인정받았다.

하프를 든 영국의 헨리 8세. ‘헨리 8세의 시편집’ 중에서. 1530~1547년경 작. ⎢ Public Domain
하프는 오늘날에도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문화권에서 여전히 굳건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첫 울림
미국 뉴욕시의 대표적인 예술기관 ‘카우프만 음악 센터’에 따르면 기록된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로 여겨지는 하프의 기원은 기원전 1만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중동의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에서부터 동아시아의 중국과 인도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가 확인된다.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럽 전역에서 하프가 연주됐고 이후 초기 미국의 민속 음악이 태동하던 시기에도 하프는 중요한 악기로 자리 잡게 된다.

기원전 약 2030~1640년경 이집트에서 제작된 ‘활 하프(Bow harp)’. 파라오 시대에 제작된 이 하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하프 중 하나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Public Domain
고대 이집트의 ‘활 하프(Bow harp)’를 포함해 역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하프가 존재해 왔다. 활 하프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악기 중 하나로 다섯 개의 줄만 있어 손으로 퉁기는 방식으로 연주됐다. 이 고대 하프는 살짝 구부러진 목을 가진, 커다란 국자처럼 생긴 모습이다. 오늘날의 현대 콘서트용 하프는 이 하프와 매우 다르다. 나무로 된 삼각형 프레임에 47개의 줄, 그리고 음정을 조절하고 다양한 조음을 커버할 수 있는 7개의 페달이 달려 있다.
하프라는 이름은 연주 방식에서 유래됐는데 ‘하프(harp)’란 단어는 ‘퉁기다’는 뜻을 지니며 앵글로색슨족과 독일인 등 여러 고대 문화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다.
하프는 음악에서 가장 독특한 소리 중 하나를 만들어낸다. 강력한 공명판 덕분에 소리가 크고 웅장할 수 있으며 연주자의 섬세한 손놀림에 따라 부드럽고 천사 같은 음색을 내기도 한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하프가 음악 외 다른 분야에서도 유용한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유로서의 하프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몇몇 철학자들은 하프를 그들의 글 속에서 비유로 활용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목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기르며 형성되는 성품이라고 설명하면서 하프 연주자가 연습을 통해 기술을 익히는 모습을 예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설명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덕(德)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그것들을 행함으로써 습득된다. 우리는 어떤 기술을 익히고자 할 때 그 기술을 배운 후에 해야 할 일을 먼저 실제로 해봄으로써 배우게 된다. 예를 들어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가 되고 하프를 연주하면서 하프 연주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된 행동을 함으로써 절제력 있는 사람이 되며,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
또 다른 선구적 사상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신체적 건강을 조율이 잘된 하프에 비유했다. 영국 런던 출신인 그는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유럽 계몽주의 시대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학문의 진보’에서 이렇게 밝혔다. “의학의 역할은 정교한 하프와도 같이 인간의 몸을 조율해 조화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마법 같은 하프는 고대부터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음표들 속에서 우리는 많은 지혜를 얻어왔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