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 포인트] 올여름엔 ‘북캉스’ 어때요?…전국 최초 공립 책 박물관 ‘송파책박물관’

황효정
2024년 06월 17일 오후 9:17 업데이트: 2024년 06월 17일 오후 10:10

館. ‘집 관’ 자입니다. 우리들 개개인에게 보금자리가 소중하듯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집들이 있습니다. 도서관, 미술관, 체육관, 과학관, 기념관, 박물관…
우리 주변 곳곳에 구석구석 숨은 보석 같은 집(館)들을 소개하는 ‘관전 포인트’입니다.

TMI(너무 과한 정보·Too Much Information를 뜻하는 축약어)이긴 하지만, 본 기자의 휴대전화 메모 앱에는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있다. 리스트는 한 번도 비워진 적이 없다. 지금도 여섯 권 정도가 밀린 상태다.

기자를 비롯, 많은 현대인에게 책이란 사실 이런 존재가 아닐까. 읽고도 싶고,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끼지만 어쩐지 자꾸만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독서실태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다.

‘책’의 사전적 뜻을 검색하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책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지식과 정신을 전하고 향유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은 무엇일까. 여기, 잊고 있던 책의 의미를 일깨우는 공간이 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송파책박물관. 에포크타임스는 지난 13일 이곳을 찾았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지난 2019년 개관해 어느덧 개관 5주년을 맞이한 서울 송파책박물관은 전국 최초 공립 ‘책 박물관’이다.

책을 주제로 한 공간이지만 서점도, 도서관도 아닌 어엿한 박물관이다. 전시, 교육, 문화재 보존, 학술연구 등 책 전문 박물관으로서 다양한 분야의 역할을 수행한다. 박물관 방문객들에게는 책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체험 및 전시 공간, 박물관 내부 어디서든 책을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독서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책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곳. 그리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곳, 쉼을 안겨 주는 곳. 송파책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봤다.

지난 13일 에포크타임스가 방문한 송파책박물관의 첫인상은 ‘책장 같다’였다. 약 1815평 규모에 지하 1층과 지상 2층을 이루는 건물 외관은 책장을 열고 마치 책 속으로 들어서는 듯한 모양새였다.

1층 로비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시 ‘노래책, 시대를 노래하다’. 노래책과 함께 실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1층 로비로 걸음을 옮겼다. 로비에서부터 기획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로비 공간을 알차게 활용한 기획전 ‘노래책, 시대를 노래하다’는 ‘다시 보는 전시’라는 콘셉트다. 송파책박물관 김예주 학예연구사는 “2019년 개관하고 박물관의 첫 기획전으로 했던 전시인데, 당시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전시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올해 개관 5주년을 기념해 테마전시로 다시 재구성했다”고 밝혔다.

해당 전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노래책으로 소개한다. 노래책은 노래뿐만 아니라 가수의 화보와 애독자 참여 마당 등 다채롭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노래책을 다룬 전시로는 이 전시가 국내에서 최초다. 김 학예사는 “책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해당 전시가)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어린이 전용 책 체험공간 ‘북키움’에서 한 아이가 웃으며 뛰어놀고 있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어울림홀|한기민/에포크타임스
지난 13일 ‘미디어 라이브러리’ 공간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오디오북을 듣거나, 이북을 읽는 등 독서 활동을 즐기는 모습|한기민/에포크타임스

1층 로비를 지나니 어린이 책 체험전시 공간인 ‘북키움’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세계명작동화를 다양한 감각으로 느끼며 책을 즐겁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 공간이다. 그 옆에는 건물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어울림홀’이 위치한다.

어울림홀은 박물관 중앙계단에 구성된 넓은 홀이다. 책 1만 권이 계단식 서가에 비치돼 있으며 200명가량 수용 가능하다. 평소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종종 각종 행사와 다양한 강연 등도 이뤄진다. 특별한 행사가 없던 이날은 사람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었다.

어울림홀의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바로 옆에 위치한 ‘미디어 라이브러리’가 취재진을 먼저 맞이했다. 창가에서는 이북이나 오디오북을 읽고 들을 수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책과 관련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청각 공간이 마련된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어울림홀과 미디어 라이브러리 외에도 송파책박물관은 건물 곳곳, 이를테면 전시장 내부와 화장실 가는 길목에도 자유롭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좌석들이 조성돼 있다. 김 학예사는 “책 박물관이다 보니 전시 말고도 직접 책을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면서 “소수 출판되는 예술 서적과 해외 서적들도 자유롭게 볼 수 있게끔 비치했다”고 덧붙였다.

상설전시 2부 ‘소통’에서 관람할 수 있는 베이비부머·산업화 세대의 방. 그 시대 물건들과 당시 베스트셀러 책들로 꾸며져 있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상설전시 3부 ‘창조’에서 볼 수 있는 김훈 작가의 실제 자필원고와 직접 사용한 낡은 소품들. ‘남한산성’, ‘칼의 노래’ 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연필이 닳아 몽당연필이 될 때마다 저울에 연필을 쌓아 자신이 쓴 몽당연필의 무게를 잰다고 알려졌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2층 상설전시실은 유물 2만여 점을 통해 관람객들이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책에 관한 경험을 나누고 공감하도록 꾸며졌다. 상설전시는 1부 ‘향유’, 2부 ‘소통’, 3부 ‘창조’로 나뉘어 있다.

1부 ‘향유’는 조선시대의 책 문화를 보여준다. 생활 속 조선의 독서, 독서광과 독서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책을 필사해서 대여해 주는 세책점, 책을 직접 읽어주는 이야기꾼인 전기수 등 조선시대 서민들의 독서 문화가 특히 인상적이다.

2부 ‘소통’은 일제강점기 이후 근현대 독서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부모-부모-나’라는 가상의 3대 가족이 사는 집안을 보여줌으로써 식민지·전쟁경험세대, 베이비부머·산업화세대, 디지털·영상세대의 책 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3부 ‘창조’는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본다. 1~2부가 책 읽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면 3부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책을 집필하는 작가의 방,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출판 기획자의 방, 출판 편집자의 방, 책을 디자인하는 북 디자이너의 방으로 구성됐다.

상설전시를 다 보고 앞으로 쭉 이동하면 기획전시실이 나온다.

18세기 중반부터는 일반 백성 사이에서도 책을 향한 열망이 컸다. 이 시기에는 의학서적이나 밭의 크기를 구하는 방법이 담긴 수학서적 등 실용서가 많이 나왔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전 시대를 통틀어 동양의 베스트셀러인 삼국지. 인쇄술이 없던 고대 사람이 직접 쓴 필사본부터 목판 인쇄본, 금속활자 인쇄본, 납 활자 인쇄본 등 시대순으로 삼국지 책이 진열돼 있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책은 인쇄로 만든다. 송파책박물관은 2024 기획특별전으로 고려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 책 인쇄의 700년 역사를 살펴보는 ‘인쇄, 시대의 기억을 품다’를 진행 중이다. 고려, 조선, 근대, 한국전쟁기, 현대까지 총 5부에 걸쳐 시대순으로 구성됐으며 고(古) 인쇄물 등 귀중한 자료 140여 점을 공개한다. 자료 유물 대부분이 박물관 소장품이다.

기획전시 1부 ‘세상을 뒤흔든 인쇄’에서는 1377년 제작돼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등 지금 같은 인쇄 기계가 없던 시절의 인쇄술인 목판과 금속활자 인쇄를 소개한다.

2부 ‘인쇄, 지식의 보급’에서는 금속활자로 인쇄한 의례서 등 조선의 인쇄를 선보인다. 또 조선 후기에 이르러 책 소장에 대한 개인의 열망이 커지면서 발간된 다양한 민간서적들은 변화된 사회상을 짐작하게 해 흥미롭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의 인쇄사가 담긴 3부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목소리’에서는 ‘납 활자’와 ‘기계 인쇄’라는 신기술 도입으로 생긴 변화를 살펴본다. 과거에는 지식과 정보를 얻는 유일한 수단이 책과 인쇄물이었다. 1883년 대한민국 최초 근대 신문 ‘한성순보’의 발간부터 애국 계몽을 위해 간행했던 책 등 일제 치하 사람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3일 송파책박물관 관람객들이 조선시대 책 표지에 무늬를 내기 위해 목판에 문양을 조각해 은은하게 찍어냈던 ‘능화판’ 인쇄 체험을 직접 경험해보고 있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박물관 지하 1층의 보이는 수장고|한기민/에포크타임스

4부 ‘위기를 딛고 나아가다’에서는 한국전쟁기를 다룬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인쇄를 재개해 교과서 출판에 힘쓰던 우리 민족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 5부 ‘인쇄 문화를 꽃피우다!’에서는 현대 컬러 인쇄를 소개한다.

전시에 이어 직접 인쇄를 해볼 수 있는 체험 코너도 있다. 조선시대 책 표지에 무늬를 내기 위해 목판에 문양을 조각해 은은하게 찍어냈던 ‘능화판’ 인쇄 체험과 편지나 시를 적는 종이에 그림을 인쇄해 오늘날 편지지 꾸미듯 종이를 꾸몄던 ‘시전지’ 만들기, 책 컬러링 체험까지 다채롭다. 김 학예사는 “목판과 종이에 밀랍을 묻힌 뒤 밀돌로 밀어 책 표지를 찍어보는 능화판 체험의 경우 관리가 어려워 다른 데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끝으로 지하 1층에는 ‘보이는 수장고’까지 관람하면 박물관 투어가 완성된다. 이곳은 말 그대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다. 각종 고서 등 잠자는 유물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관리 및 보존되고 있는지를 구경할 수 있다. ‘수장고 VR 체험’ 키오스크를 통해 수장고 내부를 3D 영상으로 걸어볼 수도 있다. 마침 에포크타임스가 송파책박물관을 찾은 이날(13일)부터 VR 체험이 가능했다.

지난 13일 송파책박물관 보이는 수장고에서 관계자가 ‘수장고 VR 체험’을 선보이고 있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김 학예사는 “(송파책박물관은) 일평균 이용객 1000명이 넘는 박물관이다”라며 “가족 단위 관람객, 어린이, 커플, 노년층까지 전 세대가 많이 찾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에포크타임스가 직접 방문했을 때 어린이 자녀가 있는 가족 관람객부터 친구들끼리 온 학생 관람객, 조용히 혼자 독서를 즐기러 온 흰머리의 관람객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김 학예사에 따르면 빅데이터 기반 트렌드 분석 기관 랭키파이가 국내 문화공간 순위를 매긴 결과 기념관과 미술관, 과학관 등을 모두 통틀어 매긴 순위에서 송파책박물관이 15위를 차지했다고. 실제 매주 월요일 집계되는 전시 관람 만족도 통계를 살펴보면 송파책박물관의 경우 평균 96%를 넘길 정도로 높다.

누구나 와서 오감으로 책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송파책박물관.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관람객 입장은 폐관 30분 전에 마감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오후 2시에는 도슨트의 해설이 진행되며, 신분증 지참 시 휴대용 오디오가이드 대여도 가능하다. 그밖에 더 자세한 이용 사항은 송파책박물관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입장료도, 책 열람도 무료다. 그러니 한번 전시도 관람하고, 체험 활동도 직접 해 보고, 독서에도 흠뻑 취하며 문화생활을 만끽하러 오는 것은 어떨까. 여름 바캉스 대신 ‘북캉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