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다…우리에게 詩가 필요한 이유

워커 라슨(Walker Larson)
2024년 05월 12일 오후 10:57 업데이트: 2024년 05월 13일 오전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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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시(詩)를 접근하기 어렵고 학문적이며 난해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시는 학자가 아닌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시는 발아래 풀과 꽃, 머리 위의 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매개체다. 시를 통해 우리는 선명한 시야를 가질 수 있고, 평소 보지 못했던 사물의 실재(實在) 속 경이로움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새로운 시각을 일깨우다

미국의 문학 교수이자 작가인 존 시니어(1923~1999)는 시인에 대해 “그들은 ‘이걸 보세요, 전에는 본 적 없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다”라며 “시인을 통해 우리는 혼자 세상을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능력이 향상되고 삶을 제대로 살아가게 된다”라고 말했다.

‘서사시의 뮤즈’(1798), 찰스 메이니어 | 퍼블릭 도메인

이를 통해 우리는 시인의 소명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속에 있는 참된 모습을 보고 그것을 다른 이들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삶을 현명하게 누리도록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양에는 ‘익숙함은 경멸을 낳는다’라는 격언이 있다. 일상적인 현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감각이 둔해지고 아무리 놀라운 대상과 마주쳐도 그 소중함과 참모습을 알아채기 어렵다. 우리는 시인의 눈을 통해 익숙함을 깨뜨리고 대상의 가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시를 통해 깨닫는 기적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이었던 존 돈(1571~1631)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관련해 우리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627년 부활절 설교에서 “신은 자연을 통해 매일 모습을 보인다. 만약 그가 단 한 번만 모습을 보였다면 우리는 그를 기적처럼 여기고 감탄을 자아냈을 것이다”라며 “만약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린다면, 수많은 군중은 거리로 나가 황홀경에 빠져 비를 만끽하며 환호를 질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첫 접촉’의 세부(1866),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 | 퍼블릭 도메인

이처럼 자연은 매일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대부분은 이미 익숙하기에 그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아이를 낳는 것은 대단한 기적이다. 새로운 생명을 품에 안았을 때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서 새로운 신경이 살아나고, 자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아이가 성장할수록 처음 느꼈던 감동은 점차 희미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아이의 모습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의 감정이 떠오르면, 이전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 감동이 배가하기도 한다. 기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잊었을 뿐이다.

‘그 겨울의 일요일’

‘젊은 사랑의 떨리는 사지, 따뜻한 불씨’(1899), 쟌 레온 제롬 | 퍼블릭 도메인

시는 우리가 자연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을 더 자주 만들어준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헤이든(1913~1980)의 시 ‘그 겨울 일요일’은 부성애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해준다.

그 겨울의 일요일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서 옷을 입고
한 주 내내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쑤시고 갈라진 손으로 불을 피웠다.
아무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잠이 깬 나는 몸속까지 느꼈던 추위가
타닥타닥 쪼개지며 녹는 소리를 듣곤 했다.
방들이 따뜻해지면 아버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집에 잠복한 분노를 경계하며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냉담한 말을 던지곤 했다.
추위를 몰아내고
내 구두까지 윤나게 닦아 놓은 아버지한테.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직무에 대해.

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준다. 유년기의 기억을 회상하게 하고, 무심코 받기만 했던 사랑의 단편을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갈라진 손, 불, 신발과 같은 사소하고 평범한 것에도 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다

혹자는 시를 특별한 카메라나 거울에 비유한다. 익숙한 사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해 새롭고 낯설게 다시 보게 하는 것이다. 영국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1792~1822)는 그의 저서 ‘시의 변호’에서 “시는 세상의 숨겨진 아름다움에서 베일을 벗기고 익숙한 대상을 낯선 것처럼 보이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바꿔 그 본질을 드러내도록 한다. 우리는 시를 접한 후 세상을 달리 보게 되는데, 이는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우리의 시각과 이해의 깊이가 변했기 때문이다.

시가 필요한 이유

‘호머의 독서’(1881), 로렌스 알마 타데마 | 퍼블릭 도메인

시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는 자신이 사물이나 대상에서 발견한 본질을 타인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은 시, 유화, 조각, 음악을 창작해 우리에게 전환점을 제공한다. 우리는 예술을 향유하고 이해하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시가 필요한 이유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제라드 홉킨스(1844~1889)가 1877년에 발표한 시 ‘하나님의 장엄함’에는 신과 자연,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여러 세대는 짓밟고, 짓밟고 또 짓밟아 왔다.
욕심에 찬 거래들로 만물은 시들어가고 분쟁으로 흐려지고 더럽혀졌다.
인간이 각처에 남긴 얼룩과 악취가 넘쳐난다.
대지는 황폐해졌고 그들의 발은 그걸 느끼지 못한다.’

이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이기와 변질된 문화, 사상으로 인해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은 빛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홉킨스는 그럼에도 자연과 일상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오만함에도 대자연은 절대 소진되지 않는다.
만물 깊은 곳에는 가장 소중한 신선함이 살아 꿈틀거린다.
어두움 가득한 서쪽에서 마지막 빛이 사라져도
오, 희미한 갈색의 동녘 가장자리에서부터 새 아침이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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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는 어둡고 피곤한 삶에 찌들어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잊고 지내던 삶의 반짝임과 그것을 상기하게 하는 시인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워커 라슨은 위스콘신에 있는 사립 아카데미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아내와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영문학 및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헤밍웨이 리뷰, 인텔리전트 테이크아웃, 뉴스레터 ‘헤이즐넛’에 글을 기고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