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개인투자자들, 美 대사관 SNS 찾아 하소연
“진실 말해도 삭제 안되는 유일한 소통창구”
중국인들이 경기 침체와 증시 약세에 대한 불만을 색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다.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 소셜미디어(SNS) 게시물 댓글 창을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공유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증시 폭락으로 인해 미국 대사관 SNS가 중국 개미 주주의 ‘통곡의 벽’이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2일 주중 미국 대사관 공식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에 리차일 첸 대변인의 새해 인사 영상이 게시됐다. 첸 대변인은 영상에서 작년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다섯 가지 일을 공유하면서 중국 네티즌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다섯 가지 사건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
영상이 공개되자 중국 네티즌의 댓글이 쏟아졌다. 5일 오전 기준 해당 게시물의 ‘좋아요’ 수는 23만4000회로 집계됐으며 댓글은 3만9000개가 달렸다.
이날 미국 대사관 공식 웨이보에는 기린 이미지와 함께 “과학자들은 인공위성 데이터를 통해 기린 개체와 서식지를 식별하게 됐다”는 내용의 글이 공개됐다. 기린 보호재단과 생물학자들이 희귀종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한 글이다. 해당 게시물도 중국 네티즌의 뜻밖의 호응을 받았다. 5일 오전까지 ‘좋아요’ 67만5000개, 댓글 14만9000개를 기록했다.
다수 네티즌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댓글을 남겼다.
“1년 전 미국 달러 대신 중국 A주(상하이/선전 증시에 상장된 내국인 전용 주식)를 산 것을 후회한다.” “미국 증시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중국 증시는 악화일로다. 중국 증시를 구해달라” “미국이 사람 몇 명 보내 중국 증시를 인수할 수 없겠느냐? 중국은 이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 “곳곳에 거짓 정보가 난무해서 답답하다. 증시는 특히 그렇다” “개미 주주 수억 명이 설 연휴 음식을 구매할 돈조차 없다.”
중국 네티즌이 미국 대사관 SNS 게시물에 게시물 내용과 무관한 댓글을 대량으로 남기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자신의 계정에 게시물을 올리거나 언론사, 당국 공식 계정에 댓글을 남길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게시물이 인기를 얻게 되면 당국에 의해 댓글이 잠기거나 부정적인 내용이 삭제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수 네티즌은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의 대사관 공식 계정이라면 당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증시는 이날 3대 지수가 일제히 급락했다. 상하이종합지수(SSE)는 3.77% 하락해 2700선이 붕괴해 4년 만에 최저치인 2666.33으로 하락했다. 선전성분지수(SZSE)와 창업판지수(GEM)는 각각 4.85%, 4.84% 하락했다.
1월 말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국무원 회의에서 더 강력한 금융 부양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당국은 이후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증시 만회 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올해 1월 중국의 우량주인 상하이·선전 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 300 지수가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다년간의 부동산 침체, 미지근한 내수 소비, 디플레이션 압력 등 다양한 경제 역풍으로 약화한 투자자의 신뢰를 끌어올리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다수 중국 개미 주주는 연초부터 중국 증시 폭락으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증시에서 손해를 입은 중국 네티즌은 분통을 터뜨릴 공간이 필요했다.
이 속에서 중국 관영 매체 인민일보는 2월 2일 ‘전국 곳곳에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중국 SNS에서 조롱의 대상이 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한 중국 이용자는 미국 대사관의 기린 보호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기린 개체군 전체에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고 풍자했다.
다른 이용자들도 “이곳에서는 진실을 말해도 차단하지 않는다더라” “우리나라(중국) 정부 공식 계정 게시물에는 자유롭게 댓글을 남길 수 없는데 미국 대사관 게시물에는 가능하다”며 공산당 정권 치하의 억압된 생활을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