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그들은 죽음을 향해 운전했다”…하와이 산불 생존자들 증언

알랜 스테인(Allan Stein)
2023년 09월 05일 오후 3:52 업데이트: 2023년 09월 05일 오후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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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와이 산불이 발생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지만, 하와이 주민 크리스티 앨빈슨(47) 씨는 여전히 밤마다 악몽을 꾼다.

“모래에 파묻힌 아이들의 끔찍한 모습이 꿈에 나온다. 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악몽뿐만이 아니다. 공황발작이 예고 없이 찾아오면 앨빈슨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발작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다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앨빈슨 씨는 간신히 목숨을 구한 생존자다.

크리스티 앨빈슨(왼쪽) 씨와 딸 셸비 톰슨 씨는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라하이나 산불에서 간신히 탈출했다.|사진=셸비 톰슨 씨 제공

앨빈슨 씨는 산불 당시 교통 체증 속에서 차 안에 탄 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연기와 화염 속에서 사망했다고 에포크타임스에 증언했다. 그는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운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저 가족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일념뿐이던 앨빈슨 씨는 교통 체증을 피해 다른 길로 향했고, 그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산불이 발생한 당일 라하이나에 있었던 또 다른 현지 주민 그레일 씨 역시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로에 있는 차가 몇 대나 불에 탔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미 당국 관계자들은 불씨와 연기가 대기를 뒤덮으면서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보고했다.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많은 주민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지난달 16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라하이나에서 발생한 산불로 소실된 주택과 차량의 모습|Justin Sullivan/Getty Images/연합뉴스

섬뜩한 예감

지난 8월 8일(현지 시간) 아침, 잠에서 깬 앨빈슨 씨는 눈을 뜨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현지 콘도와 민박집의 청소 및 관리 업무를 하던 앨빈슨 씨는 이날 오전 7시 30분께 자신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까지 앨빈슨 씨의 상사는 작은 화재가 발생해 라하이나 마을을 지나는 주요 도로인 ‘프론트 스트리트’가 교통 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출근 시간이 평소보다 오래 걸릴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앨빈슨 씨는 출근 전 차에 기름을 채우고 여분의 음식도 챙겼다. 그야말로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앨빈슨 씨는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출근하기 전에 뭔가 잘못됐다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차를 몰고 거리로 나오니 미친 듯이 차들이 밀려 있었다. 앨빈슨 씨는 한 시간 반을 도로 위에서 보낸 끝에야 회사에 도착했다.

평소와 달랐던 점은 또 있었다. 출근길, 앨빈슨 씨는 북쪽 산비탈에서 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앨빈슨 씨는 “마치 소용돌이 같았다”면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바람이었다. 차에서 내릴 때는 머리를 보호해야 했고, 눈앞에서는 물건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오후 3시가 넘어가고 퇴근할 때가 되자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도로는 여전히 꽉 막혀 있었고, 강풍을 타고 날아든 온갖 파편들이 앨빈슨 씨의 차를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나뭇가지가 차량 유리에 부딪히기도 했다.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라하이나 산불 발생 지역을 수색대가 수색하고 있다.|Yuki Iwamura/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강풍이 차를 덮친 순간, 앨빈슨 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라하이나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앨빈슨 씨의 상사는 앨빈슨 씨가 “마을은 안전하지 않다”며 만류하는데도 “나는 집으로 갈 것”이라며 차를 몰고 떠났다. 앨빈슨 씨의 상사는 이후 불길을 피해 바다에 뛰어들어 밤을 지새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앨빈슨 씨는 자신의 딸 셸비 톰슨(27) 씨에게 “수천 명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마을에 갇혀 있는 주민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미 당국은 이번 산불로 최소 115명이 숨지고 385명이 실종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앨빈슨 씨의 딸 톰슨 씨는 “엄마가 살아서 나올 수 없는 확률이 커지고 있었다. 30분만 더 지체했으면 엄마는 꼼짝도 못 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라하이나의 와이올라 교회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Matthew Thayer/The Maui News via A

엄청난 혼란

에드, 미셸 씨 부부는 산불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고 되뇌었다.

남편 에드 씨는 산불 당시 공황 상태에 빠진 운전자들이 도로를 막아서면서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설명했다.

에드 씨는 에포크타임스에 “갑자기 큰 불씨와 화염이 도로 바로 옆 건물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에드 씨에 따르면, 불씨는 함박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잔디밭으로 떨어진 불씨는 또 다른 작은 화재를 일으켰다.

도로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에드 씨 또한 당시 차에 타고 있었는데, 에드 씨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차에서 내릴 수도 없었다. 차 문을 열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에드 씨의 차 뒤에 서 있던 차에도 에드 씨의 친구들이 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이들은 이후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드 씨와 통화 중이었던 아내 미셸 씨는 “차를 버리고서라도 거기서 나와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에드 씨는 도로 오른쪽에 있던 인도와 잔디밭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로를 벗어난 끝에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지난달 11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라하이나 한 도로에 산불로 망가진 차량들이 남아 있다.|Justin Sullivan/Getty Images/연합뉴스

생존 모드

8월 8일 오전, 그레일 씨 또한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눈을 떴다. 앨빈슨 씨와 마찬가지로 강풍과 쓰러진 나무 등으로 출근길이 막혀 힘들긴 했지만 간신히 출근에 성공,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다 오후 3시 30분께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그레일 씨는 동료와 함께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상사의 콘도에 머무를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천만다행이었다. 그곳 또한 불에 타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탈출하느냐가 문제였다. 연기가 짙은 도로 위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고, 전선이 끊긴 거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레일 씨는 에포크타임스에 “동료와 나는 차가 너무 많은데 왜 아무도 차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곧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전당할 위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레일 씨의 차 앞에 있던 트럭이 원뿔형 교통 표지를 쓰러뜨리고 길을 만들었다. 그레일 씨는 트럭의 뒤를 따라가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야말로 ‘생존 모드’였다.”

지난달 10일(현지 시간) 산불로 폐허가 된 미국 하와이 라하이나 거리를 행인이 걸어가고 있다.|Patrick T. Fallon/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마음의 평화를 잃다

아무도 자신이 근무하는 동안, 그런 평범한 날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주민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앨빈슨 씨는 산불로 희생된 아이들이 나오는 악몽에 계속해서 시달리고 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믿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앨빈슨 씨는 수많은 죽음과 파괴를 겪은 라하이나에서 다시 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젯밤 기도 모임에 갔다. 사람들이 물었다. ‘잃어버린 게 있나요? 친구를 잃었나요? 직장을 잃었나요?’…”

나는 그 모든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큰 행운을 누린 사람이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