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콘 창업자 뛰어든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 ‘혼전 양상’

강우찬
2023년 09월 02일 오전 11:36 업데이트: 2023년 09월 02일 오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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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거물 폭스콘 창업자 무소속 출마 공식 선언
집권 민진당 우세 판도에 야권 ‘후보 단일화’ 촉매 가능성

여당인 민진당의 우세가 유력했던 내년 1월 중화민국(대만) 총선이 애플 위탁생산업체로 유명한 대만 폭스콘 궈타이밍(郭台銘·72) 전 회장의 무소속 출마 선언에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궈타이밍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총통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제1야당인 국민당 경선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시게 되자, 이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힌 궈타이밍의 공약은 ‘평화’와 ‘경제’로 요약된다. 그는 현 차이잉원 총통과 민진당 정부가 계속 집권하도록 놔두면 “중국과의 전쟁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며 “내게 4년만 달라. 대만해협에 50년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또한 싱가포르를 제치고 대만을 아시아 국내총생산(GDP) 1위로 만들겠다면서 기업가 출신인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대만은 명목 GDP에서는 싱가포르를 앞지르고 있으나 2022년 기준 1인당 GDP는 싱가포르 7만9천달러, 대만 3만2천달러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며 친중 성향을 보여온 궈타이밍의 총통 선거 출마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9년 국민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후보로 낙점받는 데 실패했다.두 번째 도전에도 실패했다. 지난 1월, 궈타이밍은 국민당 후보 경선에 다시 뛰어들었으나 신베이시 시장인 허우유이(侯友宜·66)에게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이후 궈타이밍은 허우유이를 지지하겠다고 밝히고서도 대만 전역에 유세를 다니는 모순적 행보를 보이며 독자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다가 결국 지지를 철회하고 무소속으로 선거판에 복귀했다.

이로써 넉 달 앞으로 다가온 대만 총통선거는 현 부통총인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59), 제2야당인 민중당 대표 커원저(柯文哲·64), 국민당 허우유이, 무소속 궈타이밍의 4파전으로 재편됐다.

가장 최근 발표된 지난달 31일 메이리다오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라이칭더가 36.6%로 1위를 차지했고 커원저(19.1%), 허우유이(18.3%)가 뒤를 따랐으며, 궈타이밍은 9.7%로 4위에 그쳤다.

가능성 낮은 궈타이밍, 왜 출마 선언했나

로이터통신은 궈타이밍에 관해 “퇴임 후에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만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지만, 궈타이밍의 당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출마 선언 후 오히려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절차상 넘어야 할 관문도 있다. 대만 공직자선거법상 정당 추천 후보가 아니라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는 후보 등록을 위해서는 직전 선거인 2020년 총선 때의 총유권자 수(1931만1105명)의 1.5%에 달하는 유효 지지서명을 받아 후보자 등록 마감일인 11월 2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민당은 궈타이밍에게 약속을 지키라며 맹비난에 나섰다.

국민당은 논평을 내고 “관공(貫公·관우를 높여 부르는 말)은 충의정신을 몸소 실천했다”며 “평소 관공의 제자를 자처하던 궈타이밍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당과 허우유이 후보와 힘을 합쳐 차이잉원과 민진당을 몰아내자”고 다그쳤다.

민중당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민중당 대변인은 궈타이밍의 출마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커원저 후보는 가장 강력한 야당 후보”라는 점을 강조한 후 “우리는 계속 노력하고 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선거 전문가들은 궈타이밍이 출마하면 국민당보다는 민중당에 더 타격이 클 것이라며 국민당과 연합보다는 커원저-궈타이밍 간 후보 단일화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대만 둥하이대학교의 장쥔하오(張峻豪) 교수는 영국 BBC 중문판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라이칭더 지지율은 40%가 넘었다”며 “나머지 60% 표를 (야권의) 세 후보가 나눠 가진다면 어떻게 해도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국민당보다 민중당 쪽이 궈타이밍에 손을 내밀 확률이 높다며 “궈타이밍의 출마로 커원저는 지지율이 7~8%포인트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커원저 지지율이 10%까지 추락할 수 있다. 따라서 커원저 쪽이 궈타이밍과 후보 단일화를 할 동기가 크다”고 밝혔다.

또한 장 교수는 국민당이 궈타이밍과 손잡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는 “현재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대표의 관심은 총통선거보다는 같은 기간 치러지는 입법원 선거(총선)에 있다”며 이번 선거에서 다수당 탈환에 힘을 쏟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전망했다.

호주 국립대학 아시아태평양 대학원의 쑹원디 연구원도 “커원저와 궈타이밍의 지지층이 많이 겹친다”며 “국민당이 이를 잘 이용하면 이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 연구원은 아울러 선거가 종반으로 갈수록 커원저의 지지율을 궈타이밍이 가져가면서 국민당 쪽으로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대만 현지 언론들도 궈타이밍이 차이잉원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야권 후보 단일화의 총대를 멨다는 분석을 다수 내놓고 있다. 현실적으로 당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야권의 표를 더욱 갈라놓음으로써 위기감을 높여 결속 동기를 끌어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2023년 8월 28일 폭스콘 창업자 궈타이밍 전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2024년 중화민국 총통 선거에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 중앙사

“내가 당선되면 중국은 대만 공격 안 해”…궈타이밍의 장담

에포크타임스의 중국 전문 선임기자 탕하오는 궈타이밍의 거침 없는 발언 뒤에는 되새겨 볼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탕하오는 “궈타이밍은 중국 지도부에 ‘중화민국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민진당이 아닌 다른 당 소속 정치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발언”이라며 공산당과의 거리감을 부각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궈타이밍은 공산당이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폭스콘을 몰수하겠다’고 나설 경우, ‘그렇게 하라고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며 “그는 ‘내 재산을 내주는 대가로 공산당이 대만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평범한 노동자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고 되짚었다.

탕하오는 “하지만 그가 폭스콘을 내준다고 공산당이 침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의 자산은 공산당의 팽창주의를 뒷받침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며 “기업가로서 궈타이밍 전 회장은 매우 뛰어날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감각에서는 순진한 발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궈타이밍은 ‘진먼 평화 이니셔티브(金門和平倡議)’로 불리는 중국-대만 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대만해협에 전쟁을 불러오는 것이라며 현 차이잉원 정권의 친미 행보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탕하오는 “중국 공산당과 평화 협정만으로 대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을 가장 반기는 것은 중국 공산당일 것”이라며 “미국과 가까이 지낸다며 대만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다. 전쟁 위협으로 대만을 협상테이블에 앉히려는 게 누군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평화 협정을 체결한 지역이나 국가, 정부는 모두 좋지 않은 결과를 맞았다. 네이멍구, 티베트, 신장은 모두 공산당과 평화 협정을 맺었지만 유혈 사태를 겪고 인종 청소를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영국 역시 중국 공산당과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했지만, 일방적으로 파기당했다. 중국 공산당에 평화협정은 일시적인 지연작전에 불과하며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종잇장이 지나지 않는다. 공산주의 정권의 약속을 믿었다가는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는 역사가 말해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