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27일부터 30일까지 사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경제 위기에 빠진 중국은 러몬도 장관의 방중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중국 공산당 고위 관리들과 미국상공회의소 회원들을 만날 예정이다. 미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중 경제·무역 관계, 미국 기업이 직면한 과제, 잠재적 협력 분야 등에 관해 건설적으로 논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화권 전문가들은 러몬도 장관이 미국의 주요 관심 사항을 언급하겠지만, 중국의 정치적 경직성 때문에 미중 갈등에 돌파구가 마련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중국의 경제 데이터 투명성 유지’에 관심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22일 “중국이 데이터 공개에 있어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론에 밝혔다. 데이터 투명성 문제는 러몬도 장관 방중 의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베이징이 중국 경제의 기본 정보를 전 세계에 제공하는 회사를 단속했다며 “우리가 보기에 이는 책임 있는 조치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세계적인 신뢰와 예측 가능성, 그리고 세계가 (중국과 관련해) 합리적인 경제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데이터 공개에 있어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국제관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인 쑹궈청(宋國誠) 교수는 26일 에포크타임스에 “이번 방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이 많은 경제 분야에서 중국 공산당이 투명성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라며 “데이터 투명화, 경제 전망 투명화, 통계 투명화, 위기 리스크 투명화 등이다”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이 4가지 투명화는 한 국가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쑹 교수는 “정보가 투명하지 않는 블랙홀 같은 나라에서 기업은 리스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스크에는 자본수익률과 시장수익률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리스크와 수익률 사이에 합리적인 평가가 있어야 투자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 객관적이고 효과적인 자본수익률과 시장수익률을 확인하기 위해 베이징 당국이 통계를 투명하게 하고 과학적으로 하고 진실하게 하기를 바란다며 “이것이 이번 방중에서 논의할 중점 의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설리번 보좌관 “탄력 있는 공급망 확보 초점”
설리번 보좌관은 또 “미국은 우리의 국가안보를 보호하고 공급망을 보호하며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지속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쑹 교수는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중국 경제가 악화함에 따라 앞당져질 수 있는 전 세계 경기 침체기에 미국이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여전히 주요 공급원인 중국의 경제 위기 실상을 정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쑹 교수는 “특히 미국의 국가안보 분야에서는 사전에 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선 중국 경제 현황과 향후 발전 추세를 예측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미·중 간에는 협력해야 하는 분야가 있고, 이를 둘러싸고 나오는 이견을 조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 시작된 미국의 무역 제재로 쌍방의 경제·무역 관계가 한동안 긴장됐다.
이에 대해 쑹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특히 미국은 안보와 전략 물자 분야를 제외한 일반 민간 무역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쑹 교수는 러몬도 장관의 방문 목적은 미래의 미중 관계, 특히 경제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탐색하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디리스킹…디커플링과 연계
설리번 보좌관은 앞서 “러몬도 장관은 이번 방문에서 중국과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닌 ‘디리스킹(위험완화)’을 추구한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미중 ‘디커플링’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추진해왔다. 최근에 와서는 유럽 및 미국 지도자들이 대부분 ‘디리스킹’을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5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디리스킹’이란 표현이 G7 공동성명에 공식 등장했다.
미국과 유럽이 추구하는 디리스킹 전략은 어떤 것일까? 쑤쯔윈(蘇紫雲) 대만 국방안전연구원(INDSR) 국방전략및자원연구소 소장은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막는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의존도가 높은 독일도 국가 안보에 민감한 기술 분야의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중국 경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즉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선에서 중국과 거래하는 것이다.
쑹 교수는 디리스킹은 디커플링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리스킹을 추진하는 이유는 중국 공산당이 여러 분야에서 미국의 안보를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협상이나 외교적 담판을 통해 이 위험을 제거하려 한다.
쑹 교수는 “하지만 상대방이 협상에 나서지 않거나 이런 위기 요인이 군사·전략·안보와 관련된다면 디리스킹이 아닌 디커플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사모펀드, 벤처캐피탈(VC) 등 미국 자본이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컴퓨팅 등 3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쑹 교수는 “미국은 디리스킹과 디커플링을 결부해 사용하거나 디리스킹을 디커플링을 위한 점진적인 준비 단계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위험 분리’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에 대해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쑤쯔윈(蘇紫雲) 군사전략소장은 “워싱턴이 위험 분리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전에는 위험 관리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위험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쑤 소장은 ‘위험 분리’ 개념에 대해 “군사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대한 방비를 강화하고, 안보에서는 울타리를 쳐서 첨단기술이 중국 공산당에 유입돼 군사 발전이나 국민을 위협하는 데 오용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경제적으로 작은 창구를 열어 제한된 협력을 하면 이 시장에서 중국 공산당과 어느 정도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러몬도 장관의 방중을 발표한 당일(21일) 중국 기업 및 단체 27곳을 비롯한 총 33곳을 수출 통제 전 단계인 이른바 ‘미검증 리스트(Unverified List)’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쑤 소장은 “이는 베이징이 국제질서를 준수할 의지만 있다면 국제사회에서 일정한 시장 공간을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베이징 당국에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국제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이지만 중국 본토 국민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경제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첨단 기술이 중국 공산당에 의해 오용되지 않는다면, 민감하지 않은 기술을 사용하고 경제적 왕래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양측 모두에 이롭다.”
베이징이 러몬도 장관 반기는 것은 경제난 때문
중국 당국도 미국 상무부가 러몬도 장관의 방중에 앞서 중국 기업 27곳을 제재 대상에서 뺀 데 대해 미국이 보낸 일종의 화해 제스처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쑤 소장은 베이징 당국이 오스틴 국방장관과 토니 블링컨 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러몬도 장관을 환대하는 것은 중국이 직면한 경제난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중국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이 지난 17일 뉴욕에서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모범 기업으로 꼽혔던 비구이위안(碧桂園)이 지난 7일 달러화 채권 10억 달러의 이자 2250만 달러를 내지 못했고, 중국 최대 자산관리회사 중즈(中植)그룹 산하 부동산신탁회사인 중룽(中融)국제신탁도 부도 위기에 처했다.
부동산 위기 외에도 최근 일련의 경제 데이터는 모두 적신호를 내보내고 있다. 소비가 줄고, 수출이 감소하고, 외국인 투자가 급감하고, 주식 시장이 급락하고, 청년 실업률은 21.3%를 기록한 후 7월부터 발표를 중단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중국의 경제 상황을 언급하며 “중국 경제는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했다.
쑤 소장은 “중국 경제는 구조적인 장애물, 즉 비시장적 장애물에 부딪혔다”며 이 장애물은 중국 공산당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시장적 장애물로 방첩법과, 정치적 안정 유지를 위해 조성한 문화대혁명 시기의 공포 분위기를 꼽았다.
쑤 소장은 시진핑이 측근만 임용하는 인사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시진핑은 정치국위원, 국무총리 등의 고위직에 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 출신이 아닌 자신의 측근들만 등용했다”며 “충성도를 최고의 등용 원칙으로 삼고 있어 중국 경제 발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중국 본토의 민중들은 진정한 위협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역외 세력이 아닌 역내의 중국 공산당이다”라고 했다.
“미중 경제·무역 관계 바꾸기 어렵다”
미중 경제·무역 관계의 미래에 대해 쑹 소장은 “중국 공산당이 미중 간의 무역 관계를 비롯한 경제·외교 분야의 긴장을 완화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중국 공산당이 지혜로운 타협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외교적으로 미·중 관계 악화의 책임이 미국에 있고, 미국 때문에 양국이 서로 상대방을 향해 접근하지 못한다고 했다.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국이 다가와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쑹 소장은 “중국 공산당은 이데올로기 외교와 국가 체면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어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 것이다. 현재로서는 베이징이 경직된 미중 경제·무역 관계를 개선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