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만 문제서 밀려나면 글로벌 주도권 중국에 넘어가
시진핑·공산당, 대만 통일에 전방위 노력…실패하면 ‘끝장’
블링컨-친강, 소통 강조했지만 좁혀질 수 없는 입장차 확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5년 만에 이뤄진 미중 양국 외교 수장의 만남이 주목을 받는다.
양측은 소통을 강조하며 현재의 갈등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미중관계 전문가는 “실질적인 합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양측이 이미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도달해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18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외교통상부 장관격)이 베이징을 전격 방문, 댜오위차이 국빈관에서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을 만나 회담을 가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양측은 만찬 마라톤 회의, 업무 만찬까지 포함하면 총 8시간에 가깝게 논의를 진행했다.
회담 후 미 국무부 매뉴 밀러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이 회담에서 미국민의 이익과 가치를 옹호했다”며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규범에 기반한 질서를 유지하는 세상’을 위한 비전을 진전시키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와 협력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언론은 친강 부장이 “대만 이슈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자 양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이며 가장 두드러진 리스크”라는 점을 강조했고, “미국 측에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며 중국의 입장을 엄중하게 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제질서를 약화시키려는 추가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또한 중국의 도전에 대해 불공정한 관행을 이용한 경제적 경쟁 외에도 미국의 가치를 흔들려는 심각한 사안으로 분류해왔다.
밀러 대변인의 발언은 지난 수년간 중국이 이러한 미국의 ‘레드라인’을 건드리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제질서’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대표하지만, 범위를 넓히면 대만해협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거부 메시지도 포함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그동안 대만 문제와 관련해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며 미국의 개입에 반발해왔다. 대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 지원이나 미국 의원들의 대만 격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격렬하게 대응해왔다.
다만, 중국 외교부는 이번 회담 후 “미중 양측은 전반적인 관계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장시간 솔직하고 심층적이며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했다”며 “대화와 교류 및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밀러 대변인도 성명에서 “블링컨 장관은 오해와 계산 착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모든 범위의 문제에 걸쳐 외교 및 개방적인 소통 채널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추가 논의를 위해 친강 부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양측은 적절한 시기에 일정을 잡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회담 후 양측이 발표한 성명을 종합하면, 5년 만에 이뤄진 외교 수장 간 회담에서 미중은 서로의 ‘레드라인’을 분명히 하면서도 좁힐 수 없는 입장 차이를 확인했으며, 향후 소통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의제 실종? “미중 이해 일치”
이번 미중 회담에는 블링컨 장관과 친강 부장을 비롯해 양측 각각 4명씩 총 8명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서 대니얼 크리튼 크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세라 베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대만 담당 선임국장,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가 배석했고, 중국 측에서는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차관), 화춘잉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 양타오 외교부 북미대양주국 국장이 배석했다.
양측은 이번 방문에 앞서 논의할 안건을 공개했다. 주요 안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 문제였다. 전자는 미국이 중시하는 안건이고, 후자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다.
스산은 “양측은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 어떤 결과도 도출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양상은 각각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 양측의 이견이 없을 것으로 봤다.
미국은 중국에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했다가 유럽과 관계가 급속도록 악화됐는데, 이는 중국이 원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산은 “현재 중국 당국에 더 중요한 것은 유럽과의 관계다. 중국은 미국과 경쟁에서 유럽을 포섭해 미국에 맞선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매우 긴장하고 있으며, 중국은 러시아를 지지하면 유럽과의 관계가 틀어질 것을 알고 있으므로 러시아를 지지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스산은 “시진핑은 승산이 없어 보이는 러시아를 위해 어떤 결과도 떠맡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내버릴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시진핑은 푸틴에게 중러 관계를 ‘제한 없는 동반자’라고 말했지만, 이는 일종의 수사적 표현일 뿐 실질적 의미가 없으며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오랜 습성”이라고 말했다.
대만문제로 교착상태 빠진 미중, 물러나면 진다
스산은 이번 미중 회담에서 핵심 의제가 대만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회담 후 외신을 통해 쏟아지는 보도는 모두 양측이 대만 문제를 놓고 대치 중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양국 관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을 서로 건드렸다”고 진단한 스산은 “대만해협은 이제 글로벌 패권 다툼의 핵심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 랜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공산당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며 “각종 근거를 기반으로,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해온 ‘미국의 시대’가 종식을 고하게 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했다.
즉, 미국 내에서는 ‘대만 방어=미국의 핵심 이익’ 등호가 성립된 셈이다.
스산은 “반면 중국 공산당, 특히 시진핑 입장에서 대만은 중국 글로벌 전략의 핵심이다. 시진핑은 대만 통일을 ‘중국몽’과 ‘중국 굴기’의 상징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시진핑은 당장(당헌)과 헌법까지 개정해 3연임에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이 ‘대만 통일’에 승부수를 띄우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분석했다.
스산에 따르면 현재 미중 양국은 각자의 핵심이익이 얽혀 있어 서로의 레드라인을 건드리고도 물러설 수 없는 상태다. 그로 인해 대만해협은 전 세계 분쟁의 핵심이 됐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정학적 고위험 지역”이 됐다.
“그 위험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보다 훨씬 크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개입을 약속한 적이 없어 양보할 공간이 있지만, 대만 문제에서는 양보할 여지가 전혀 없다.”
스산은 “미국과 중국은 지금 교착 상태에 빠져, 서로 물러설 수도 없고 선제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없다”면서도 “그러나 상황 타개가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각자 양국 관계 외에 다른 요인들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산은 “미국은 미-유럽 관계, 한일 관계, 미국 경제, 자국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를 다른 양상으로 전개할 수 있다. 중국 역시 중국 공산당 내부 권력투쟁이라는 변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스산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 내부 권력 투쟁이다. 교착 상태에서는 기싸움이든 힘싸움이든 밀리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지며 상황이 급속히 진행된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현재 대만 침공을 위해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등 전방위적으로 전쟁 준비 중이다. 하지만 전쟁 준비는 사회적 비용이 크다. 현재 중국의 경제 체질은 예전만 못하다. 공산당의 통치 시스템도 크게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자불립(企者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뒤꿈치를 든 채로 오래 서 있지 못한다는 뜻이다. 대만 문제는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중국이 미국보다 더 오래 버티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사기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수익을 보장하며 자신에게 베팅할 것을 촉구하기 마련이다. 중국이 경기침체 타개를 위해 1조 위안의 특별국채를 발행했다는 소식도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