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한국전쟁(6·25전쟁)에 대한 역사관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미국 카멜라 해리스 부통령 겸 상원의장(민주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공화당)을 비롯해 상하의원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한 연설에서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남쪽으로의 침공)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1950년 한반도는 자유주의와 공산 전체주의가 충돌하는 최전선”이라고 운을 뗀 윤 대통령은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기습침략으로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가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은 주적’이라는 개념을 복원한 윤석열 정부의 국방정책 기조와도 일관된 부분이다. 지난 2월 발간된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백서에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실렸다. 이전 정부인 2018년 때 삭제된 지 6년 만이다.
국방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대한민국의 적국으로 명시한 이유에 대해 “북한은 2021년 개정된 노동당 규약 전문에 한반도 전역의 공산주의화를 명시하고, 2022년 1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우리를 ‘명백한 적’으로 규정했으며 핵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군사적 위협을 가해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은 소련과 함께 중국 공산당이 배후 조종한 한반도 공산화 전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한때 한국에서도 한국전쟁을 남한이 북한을 침공한 ‘북침’이라는 주장이 퍼졌다. 1980년대 군사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친북·반미 정서가 고조됐을 때 대학생, 운동권이 중심이 됐다.
하지만 구소련의 외교기밀문서가 해제되고 자세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북침설은 몰락했다.
이 문서는 구소련이 붕괴하고 들어선 러시아 정부가 1993년 한국정부에 전달한 ‘한국전쟁 관련 러시아 극비 군사외교문서 자료’다(링크).
이 문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소련 공산당의 스탈린과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의 승인하에 김일성이 벌인 전쟁인 것으로 확인됐다(기사 링크).
1950년 4월 스탈린은 김일성과의 회담에서 “북한이 통일과업을 개시하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고, 같은 해 5월 마오쩌둥은 김일성과 만나 “북한 측이 이 시점에 작전을 개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 작전이 양국 간의 공동과제가 됐으므로 필요한 협력을 제공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 “북한의 기습침략” 발언은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 인식과는 뚜렷한 대조를 나타냈다.
그해 6월 스웨덴을 국빈 방문한 문 전 대통령은 하원 의사당 연설에서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전쟁을 “내전이면서 국제전이기도 했던 그 전쟁”이라고 했던 문 전 대통령의 2017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도 반영된 역사관이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일방적인 남한 침공이 아니라 “서로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라는 시각이다.
한국전쟁 당시 스웨덴은 유엔안보리의 한국 원조결의안에 따라 의료지원단(야전병원단 1개, 380명)을 보내 1957년 4월 철수할 때까지 6년 6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많은 환자를 치료했다.
그러나 전투에 투입되지 않아 사상자가 1명도 없었던 스웨덴과 달리 병력 160만 명을 파병한 미군은 3만7천 명이 전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바다 건너 이국땅에서 피 흘린 한국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사라질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 미국은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은 용감히 싸웠고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영웅들의 이야기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맥아더 장군의 허를 찌르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불리한 전황을 일거에 뒤집었다. 인천상륙작전은 세계 전사에 기록할만한 명장의 결정이었다”고 전했다.
맥아더는 일제와의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총사령관이자 공산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지켜낸 영웅으로 추앙받아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맥아더에 대한 재평가 시도가 빈번해졌다. 전략전술가로서의 능력은 선전에 능하다는 평가로 대체됐고, 지휘관으로서의 카리스마는 독단과 과시욕으로 재해석됐다. 용맹함은 무모함으로 폄훼됐다. 전쟁광이라는 비판도 더해졌다.
일부 국내 학자들은 맥아더가 한 달이면 끝날 남의 집안싸움(내전)에 미국을 개입시켜 3년이나 끌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대로 나뒀으면 엄청난 참상 없이 끝날 내전이었다는 것이다. 북측의 ‘우리민족끼리’와 일맥상통하는 이런 주장에는 ‘자유’가 빠져 있었다.
윤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에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개입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감사한 뒤 “전쟁의 참혹한 상처와 폐허를 극복하고 번영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미국은 우리와 줄곧 함께했다”며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번영을 일구어 온 중심축이었다”고 강조했다.
맥아더 장군에 대한 평가를 복원하고 한국전쟁은 북한의 기습침략이었음을 분명히 한 윤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70여 년 전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산 전체주의의 침공을 막아낸 한미동맹의 가치와 결의를 재확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