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쟁, 재난 속에서 인간의 생존과 회복, 삶의 재건을 지원하는 인도주의 기구 ‘국제구조위원회(IRC)’ 초기 역사를 담은 드라마가 전 세계에 공개됐다.
4월 7일, 글로벌 OTT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Transatlantic)’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0년대 나치 점령하 ‘비시 프랑스’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시작된다. 독일의 전격 작전에 패한 프랑스는 항복했고, 파리를 중심으로 중북부 지역은 나치 독일의 직접 점령하에 들어갔다. 나머지 지역은 중부 소도시 비시(Vichy)를 수도로 해서 수립된 괴뢰 정부가 점령됐다.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은 미국 저널리스트 배리언 프라이(Varian Fry)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 소설 오링거(Julie Orringer)의 소설 ‘비행 포트폴리오(The Flight Portfolio)’를 원작으로 한 독일 작품이다. 작품에는 국제구조위원회(IRC) 독일 홍보대사인 배우 루카스 엥글란더(Lucas Englander)가 참여했다.
배리언 프라이는 1907년 미국 뉴욕 태생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잡지 ‘리빙 에이지’ 주독일 특파원으로 나치 독일하의 유대인 탄압을 목격했다. 이후 반(反)나치주의자가 된 그는 1935년 ‘뉴욕타임스(NYT)’에 히틀러 정권하의 유대인 탄압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이후 배리언 프라이는 유럽의 반나치 운동 기금 모금에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인 1940년 6월, 프랑스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유대인 등 나치에게 탄압받는 인사를 구조하기 위한 단체 긴급구조위원회(ERC)를 결성했다. 위원회에는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등이 후원했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나치에 의해 위험에 처한 몇몇 예술가들과 학자들에게 긴급 비자를 마련해 주었고, 프라이가 마르세유에서 구조 작전을 펼치는 것을 돕는 서한을 써주었다.
프라이는 1940년 8월 4일, 3,000달러를 다리에 묶고 위기에 처한 예술가와 지식인 200명의 목록 그리고 그들의 대피를 돕는 방법이 적힌 종이를 가지고 프랑스 마르세유로 떠났다.
나치의 괴뢰정부인 비시정부하의 마르세유에서 배리언 프라이와 긴급구조위원회 활동가들은 유럽 탈출을 원하는 이들의 탈출을 돕는 데 헌신했다. 이를 통해 나치의 박해를 피해 약 4000명이 마르세유에서 여객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거나 중립국인 스페인을 경유하여 포르투갈 리스본항을 통해 미국 땅을 밟았다.
난민 구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배리언 프라이는 다양한 배경과 국적을 가진 인도주의자들로 구성된 팀을 구성했다.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때부터 배리언 프라이는 경찰의 감시를 받았고, 팀은 비시 당국으로부터 지속적인 추적, 체포를 당했다. 고난 속에서도 프라이와 동료들은 난민들이 프랑스를 떠날 수 있는 합법적인 허가증을 확보하기 위해 불철주야 일했다. 때로는 불법으로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월경하는 루트로 난민을 탈출시키기도 했다.
긴급구조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저명 예술가, 작가 등이 포함됐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레오노라 카링턴(Leonora Carrington) 등이다. 특히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훗날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 등의 저서로 나치 독일의 탄압 실상을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국무부 관리들은 배리언 프라이의 활동이 미국과 프랑스의 외교 관계에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마르세유 주재 미국 영사는 프라이의 미국 귀국을 압박했다. 그러다 1941년 8월, 배리언 프라이는 비시 경찰에 체포되어 다음 날 추방됐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당시를 프라이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열심히 일한 적이 없었고, 그렇게 긴 시간을 일한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비록 매일 수많은 참혹한 일이 있었지만, 나는 그 일을 사랑했다. 몇 명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고통을 보상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배리언 프라이가 미국으로 돌아온 후 긴급구조위원회(ERC)는 1942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33년 창립한 국제구호협회(IRA)와 합병하여 오늘날 국제구조위원회(IRC)로 거듭났다.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 공개를 두고 데이비드 밀리밴드 국제구조위원회 총재는 “프라이와 그의 동료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4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도왔다. 이 정신은 90년 동안 전 세계 40개국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지켜져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 대표는 “90년 역사를 가진 국제구조위원회의 풍부한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기쁘다. 많은 사람이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을 통해 국제구조위원회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