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핏빛으로 물든 전선을 바라보던 한 시사만평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유머는 상처와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극복하게 해준다.”
20세기 최고의 시사만평 작가로 알려진 빌 몰딘(Bill Mauldin)이 남긴 말이다.
뉴멕시코 출신인 빌 몰딘은 19살이었던 1940년, 미군 제180보병연대의 소총수로 입대했다.
당시는 그가 시카고 미술 아카데미에서 정치 만화를 전공한 뒤 작가의 길을 걷고 있을 무렵이었다. 군 입대 후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미 육군 주간신문 ‘Stars and Stripes’ 소속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군복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빌 몰딘은 만화 캐릭터인 ‘윌리와 조'(Willie and Joe)를 제작했다.
빌 몰딘은 ‘윌리와 조’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상을 풍자하면서, 고국 신문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윌리와 조’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위치한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은 “‘윌리와 조’는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을 웃음으로 극복하던 미군 병사들의 불멸의 의지를 반영했다”며 빌 몰딘의 작품 세계를 평가하고 있다.
1943년, 빌 몰딘이 이탈리아 전선에 파견된 이후 그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지칠 대로 지친 미군 병사들에게는 빌 몰딘의 신랄한 전쟁 풍자 작품이 활력소나 마찬가지였다.
빌 몰딘은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하면서도, 전쟁터에 내던져진 일반 병사들의 참상을 다루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물론, 펜을 들고 전장을 누비는 일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1943년 크리스마스 무렵, 전선에서 스케치를 하던 빌 몰딘은 독일군의 포탄 파편에 맞아 어깨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부상을 당한 뒤 퍼플 하트(Purple Heart) 훈장을 받은 빌 몰딘은 “뉴멕시코의 철조망 울타리를 몰래 넘어가려고 했을 때 더 크게 다쳤었다”고 말하며 다시 한번 상처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1945년, 빌 몰딘은 시사만평 작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훈장과 퓰리처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타임지는 1945년 6월 18일 자 표지를 빌 몰딘의 캐릭터인 ‘윌리’로 장식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전후에도 빌 몰딘의 작품 활동은 계속되었다.
1959년 그는 생애 두 번째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는데, 소련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강제수용소에서 다른 수감자에게 “나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당신의 죄목은 무엇이오”라고 묻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었다.
이후 광범위한 정치, 사회 문제를 작품에 녹여내면서 1991년 은퇴할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3년, 빌 몰딘은 알츠하이머 합병증으로 인해 향년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참전용사들은 여전히 빌 몰딘의 작품과 그 속에 담긴 ‘유머’를 잊지 않고 있다.
빌 몰딘이 ’20세기 최고의 시사만평 작가’로 기억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