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동물 보호 문제나 약재로서 가치에 대한 논란으로 인식이 크게 달라졌지만, 고대 중국에서 코뿔소 뿔은 황궁의 보물이자 귀한 약재 취급을 받았다.
11세기 중반, 수년에 걸쳐 나라 곳곳에 전염병이 퍼지자, 송나라 황제 인종(仁宗)은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코뿔소 뿔을 부숴 약재로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인종 황제 “보물보다 백성이 더 중요하다”
1054년, 무서운 역병과 혹한이 송나라 수도 개봉을 덮쳤다. 많은 사람이 전염병과 추위로 죽어갔다.
인종은 황실 의사들에게 “역병에 대항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위해 황실 창고에서 어떠한 약재라도 아낌없이 가져다 쓰도록 허락했다.
의사들이 창고에서 꺼내온 ‘약재’ 중에는 이국적인 코뿔소 뿔 두 개가 있었다. 황궁의 한 관리는 그중 하나가 외국 사신이 조공한 선물로서 송 황실의 보물임을 알아봤다.
신하들은 이 사실을 인종에게 고하고 다시 창고에 보관할 것을 간언했다.
그러나 인종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희귀한 물건이라도 내 백성보다 더 소중할 수 있겠는가?”라며 주저 없이 코뿔소 뿔을 갈아 약재로 쓰라고 지시했다.
또한 황실에서 의술에 능한 사람들을 선발해, 지방 관아에 설치된 의원에 보내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무료 진단하고 약도 지어주도록 했다.
황제의 지위는 하늘이 준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백성을 무시하고 잔혹한 황제, 군주들의 모습이 자주 그려지지만, 중국 고대에는 현명한 군주들의 이야기를 배우고 따르도록 하는 교육이 주로 이뤄졌다.
황궁의 보물 대신 백성을 먼저 돌본 인종의 결정은 개인적인 성품도 작용했겠지만, 앞선 황제들의 역사를 배우고 익힌 까닭도 크다.
군주들은 무력으로 백성을 다스리기도 했지만, 유가의 가르침에 따라 하늘을 공경하고 덕(德)으로 다스리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드러운 리더십이다.
황제와 신하들, 백성들도 황제의 권리는 하늘이 부여한 신성한 것이며, 따라서 백성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할 책임 역시 신성한 의무라고 믿었다.
비록 ‘천자(天子)’로 불리며 지극한 추앙을 받은 황제라 하더라도, 백성을 함부로 괴롭히면 천도(天道)를 벗어난 것으로 지탄을 받았다.
황제뿐만 아니라 관리나 백성들도 사람을 함부로 상하게 하거나 죽이면 상응하는 대가나 목숨으로 갚아야 했다.
인종 황제는 자연재해가 닥칠 때마다 이를 위(하늘)로부터의 경고로 여겼다. 즉 황제인 자신이 천도를 벗어나 엄숙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라에 어지러우면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실수에서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다.
자연재해는 국정이나 정치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말 그대로 ‘우연한 일’이라는 생각은 당시에는 매우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인종 황제는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황제의 옷을 입지 않거나 관리들의 인사를 받지 않기도 했다. 자신이 황제답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종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기 위해 애썼다.
빈곤층에게 의약품을 제공하고, 죽은 자를 위해 유족들에게 관 구매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가뭄 등 곤란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줬다.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에서 나라를 위해 일하다 숨진 병사들의 가족도 돌봤고, 죄수들은 징역형을 면제해줘 가족의 생계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재난으로부터의 구제를 기도하기도 했다. 기도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해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기를 간청하는 숭고한 의식이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현명한 황제들은 역병 같은 재난을 하늘의 경고로 여기고 신중하게 대처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재난이 뒤따를 것이고 하늘이 준 권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지도자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선한 마음을 내면, 상황은 악화를 멈추고 서서히 개선됐다. 이는 수천년 간 인류문명이 이어져 올 수 있는 비결이었다.
중국 4대 기서에 그려진 인종 시대의 이야기
인종 황제의 삶은 송나라 역사책 ‘송사(宋史)’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명나라(1368~1644년)까지를 다루고 있는 중국의 역사 문헌 모음집 ‘24사(二十四史)’의 하나다.
인종 황제 재위 기간, 역병을 진압하는 이야기는 문예 작품에도 등장한다. 양산박에 모인 108 영웅들의 활약을 그린 명나라 때 걸작 ‘수호전(水滸傳)’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