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강한 자부심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짜 가치는 잘 모른 채, 강한 자부심이 애국주의 선동에 이용되는 현실을 걱정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 칼럼은 전통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중국과 수천 년간 문화의 상당 부분을 공유해 온 한국의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소개한다. 이 글은 에포크타임스 중문판에서 진행한 ‘전통문화 부흥대회 출품작’이다.
중국과 대만에서 인문학 강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증사강(曾仕強·쩡스창) 대만 국립사범대 교수가 하루는 중국에서 강연 도중 눈물을 흘렸다.
증 교수는 이유를 묻는 학생의 질문에 “우리에게 이렇게 훌륭한 문화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이걸 의심하고 저걸 의심한다. 만약 우리에게 훌륭한 문화가 없다면 조상이 변변치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이처럼 위대한 조상이 있잖은가!”라고 답했다.
“나는 외국에서 공부했기에 서방의 것들(문화)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 속에 살면서도 행복을 모른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슬프다.”
공산주의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자국 문명을 파괴했고 전통을 ‘타파해야 할 구습’으로 가르쳐왔다. 현재 중국의 역사 교육은 ‘중국 공산당의 영도에 따라 우수한 민족문화를 널리 알린다’는 방침에 따른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들은 전통 문화의 참된 가치를 들려주면 의심부터 한다.
이는 필자가 증 교수의 말에 깊이 동감하는 이유다. 어느 나라인들 전통문화가 소중하지 않겠느냐마는 중국은 수천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헌신적 노력으로 가꾸고 번영시켜 온 인류 문명의 보고다. 아무리 퍼올려도 줄어들지 않는 생명의 원천이다. 그 핵심 중 하나가 경외심(敬畏心)이다.
◇ 신(神)과 부처에 대한 경외심
반고가 천지를 개벽하고 삼황오제가 중국 문명의 시초를 연 이래로 중화민족의 선조들은 모두 신을 믿고 공경했다. 신을 믿고 공경하는 사람들은 ‘사람은 신이 창조했으며 천지만물과 우주 천체 역시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다. 사람의 생로병사와 우주의 성주괴멸(成住壞滅·이루어지고 머물고 허물어지고 사라짐) 역시 신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중국의 옛사람들은 늘 “신의 능력은 광대하다(神通廣大)”, “불법은 끝이 없다(佛法無邊)”고 했다. 이는 신불(神佛·신과 부처)이 큰 지혜와 큰 자비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옛사람들은 또 “사람이 가만가만 말해도 하늘은 우렛소리처럼 크게 듣는다(人間私語 天聞若雷)”거나 “깜깜한 곳에서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신은 훤히 다 본다(暗室虧心 神目如電)”고 했다.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을 창조한 신불 앞에서 사람은 보잘것없다. 고대 성현들은 모두 ‘신을 믿고 공경해야만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주(周)나라 문왕은 신명을 공경하고, ‘주역(周易)’으로 치도의 근본으로 삼고, 만민을 덕으로 교화함으로써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는 사람이 없고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도둑이 없었다. 또한 자손이 번창했고 본인도 근 백 살까지 살았다. 당태종은 부처를 공경하고 도를 숭상했으며, 정관의 치로 태평성대를 열고 변경의 이민족들을 잘 포용해 그들로부터 ‘천가한(天可汗·중국 황제인 ‘天子’와 유목민족의 왕인 ‘可汗’을 합친 명칭)’으로 불리는 등 천고에 첫손 꼽히는 황제(千古一帝)의 위업을 이뤘다.
저명한 역사학자 천인커(陳寅恪) 선생은 일찍이 “화하민족(華夏民族)의 문화는 수천 년간 변화·발전하면서 조(趙)씨의 송나라 때 극에 달했다”고 했다. 송태조 조광윤은 불(佛)과 도(道)를 존숭했고, 문(文)을 발양하고 무(武)를 억제했으며, 사대부를 죽이지 않았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는 하늘과 신을 경외하고, 지혜로 아보바이(鰲拜)를 생포하고 삼번(三藩)의 난을 진압하고 대만을 통일하고 러시아를 몰아내고 막북(漠北)을 정벌하는 등 문치(文治)와 군사적 공적을 만방에 드날리고 강건성세(康乾盛世)의 기초를 다졌다.
역사적으로 신불을 공경하지 않다가 패가망신하거나 나라가 망한 예가 적지 않다. 상나라 주왕은 신명에 불경하고 황음무도한 데다 무력을 남용하는 만용을 부렸다. 또 형벌이 무겁고 세금이 많았으며 간언을 물리치는 등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자신도 죽고 나라도 망했다.
북위의 태무제(太武帝) 탁발도(拓跋燾)는 불교를 파괴했다가 44세에 환관에게 살해당했다. 북주(北周) 무제 우문옹(宇文邕)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치며 불교와 도교를 말살했다가 결국 35세의 나이에 급사했다. 당나라 무종 이염(李炎)도 멸불정책을 추진하다가 겨우 32세에 급사했다.
마음속에 신불이 있으면 중대한 일에 늘 노자가 말한 것처럼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 위를 걷는 듯(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하면서 정도를 지키고 치우침이 없어 결국 나라와 백성과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리를 해치는 짓을 일삼으면 하늘을 거스르고 도에 어긋나 결국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고 자손도 해치게 된다.
◇ 하늘과 땅에 대한 경외심
유학의 3경 중 하나인 ‘역경(易經)’에서는 “천지의 가장 큰 덕은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다(天地之大德曰生)”라고 했다.
예법의 이론과 실제를 풀이한 책 ‘예기(禮記)’에서는 “천지의 도는 넓고 두텁고 높고 밝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天地之道, 博也 厚也 高也 明也 悠也 久也)”고 했다.
당나라 때 한악이 펴낸 ‘사시찬요(四時纂要)’에 이르길 “동서남북을 사방이라 하고, 사방의 모서리를 사유(四維)라 하며, 천지와 사방을 육합(六合)이라 하고, 천지를 일러 이의(二儀)라 하는데 사람을 더해 삼재(三才)라 한다. 사방과 상하를 가리켜 우(宇)라 하고 지나간 과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가리켜 주(宙)라 하는데, 천지를 우주라고 하기도 한다. 무릇 천지란 원기가 나오는 곳이다”라고 했다.
천지(天地)에 대한 고인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하늘은 건(乾)이 되고 땅은 곤(坤)이 되며 무릇 천지란 모두 원기가 생기는 곳이다. 또 천지의 도는 넓고 크며, 어질고 후덕하며, 고결하고, 간명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천지만물은 사람을 양육하는 은덕을 베푼다. 햇빛과 공기와 물을 떠나면 사람은 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천지만물에 감사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 대자연 사이에는 ‘선에는 좋은 보응이 따르고 악에는 나쁜 응보가 따른다(善有善報 惡有惡報)’는 인과관계가 있다. 사람이 천지를 경외하고 대자연을 선하게 대하면 천지의 보우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로 하면 엄한 징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 유가에서는 천인합일을 강조하고, 도가에서는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룰 것을 요구한다. 명나라의 대유학자 왕양명(王陽明)은 사람에게는 새나 짐승뿐만 아니라 풀이나 나무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심지어 기와나 돌도 함부로 깨지 않으려는 성정이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만물을 선하게 대하는 마음을 지니면 만사만물이 우호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공산당은 “사람은 반드시 하늘을 이긴다”, “하늘과 싸우고 땅과 투쟁한다”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며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를 북돋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는 삿된 주장(邪說)일 뿐이다. 자연에 맞서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현재 중국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천지와 싸워 이기겠다는 맹목적 정신으로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한 까닭이다. 사람은 하늘과 싸워서 이길 수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람은 천지 앞에 겸허해야 한다.
◇ 도덕에 대한 경외심
노자는 ‘도덕경’에서 두 글자를 중시했는데 하나는 ‘도(道)’이고 다른 하나는 ‘덕(德)’이다. ‘도’란 무엇인가? ‘도’는 우주만물이 생겨나고 발전하고 변화하고 멸망하는 객관적인 법칙을 말한다. ‘덕’이란 무엇인가? ‘덕’이란 우주만물의 객관적인 법칙에 따라 사람이 살아가는 준칙이다.
유가를 창시한 공자의 학설은 근본적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도덕을 가르치는 것인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다섯 글자로 귀결된다. 맹자는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남을 불쌍히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을 배려하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아야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마음 역시 사람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도덕이다.
사람의 언행이 도덕의 표준에 부합하면 좋은 사람이고, 부합하지 못하면 나쁜 사람이다. 전자는 덕을 쌓는 사람으로서 복된 삶을 누릴 것이고, 후자는 덕을 잃는 사람으로서 고난이 따를 것이다.
중국 사학계의 석학이었던 ‘국학대사’ 전목(錢穆)은 “학문과 덕성은 사실 한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학문의 조예는 반드시 덕성 수양을 기초로 해야 하며, 덕성 수양에 한도를 두고 덕성을 가볍게 보면 학문을 깊이 파고들기 어렵다”고 했다.
사람에게 있어 덕은 영원히 첫째로 꼽히는 덕목이다. 덕이 없으면 진정한 재능과 학식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끊임없이 인품과 덕성 수양을 강화해야 복잡한 환경하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고 학문도 끊임없이 향상할 수 있다. 단지 마음에 악이 없도록 가르치기만 해도 호랑이나 이리 떼 속에서도 입신할 수 있다. 큰 덕을 지니고 있다면 반드시 큰 재능이 따를 것이다.
덕을 중시하지 않으면 겉핥기로 조금 배웠다고 해서 잘난 체하고 우쭐대다가 결국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두운 격으로 한 발 잘못 내디디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다!
중국에서는 물건을 팔 때 저울 눈속임으로 근수를 빼먹는 경우가 흔하지만 대만에서는 드물다. 대만에서는 지금도 16냥을 1근(500g)으로 정한 막대저울을 사용한다. 저울대 눈금에는 북두칠성, 남두육성, 복성(福星), 녹성(祿星), 수성(壽星) 등 16개 별이 새겨져 있다.
이 저울대의 끝 부분 눈금 3개는 복성, 녹성, 수성으로 정해져 있다. 왜 그럴까? 이는 물건을 팔 때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라는 경고다. 만약 한 냥을 빼먹으면 복(福)이 없어지고 두 냥을 빼먹으면 녹봉(祿·급료)을 잃고 석 냥을 빼먹으면 수명(壽)이 줄어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중국의 옛 선인들이 만든 글자에는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 ‘공덕(功德)’, ‘공덕’이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덕(德)이 없다면 어디서 공(功)이 오겠는가? ‘위덕(威德)’이란 말을 입에 달고 있어봐야 덕이 없다면 어디서 위엄(威)이 오겠는가?
덕이 많아야 명망이 높을 수 있고, 덕이 많아야 법도가 있을 수 있으며, 덕이 많아야 수신제가치국평천하할 수 있다! 덕이 없다면 금수와 무엇이 다르랴?
◇ 선조에 대한 경외심
“인간 사회의 일은 끊임없이 새롭게 변천하고, 시대가 가고 옴이 고금이 된다(人事有代謝 往來成古今)”고 했다. 과거, 현재, 미래는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진다. 중화민족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오천 년간 역사가 이어진 위대한 나라다. 선조를 경외하는 것 역시 중화민족의 우수한 전통이다.
제석(除夕·섣달그믐), 청명절, 중양절(重陽節·음력 9월 9일), 중원절(中元節·음력 7월 15일 백중)은 전통적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4대 명절이다. 이 명절을 지키는 목적은 후손들에게 조상을 잊지 말고 근본을 잊지 않아야 자자손손 번성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상서‧순전(舜典)’에는 “정월 초하루 순이 종묘에 나아갔다(月正元日, 舜格於文祖)”고 했다. 즉 순임금이 정월 초하루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는 뜻이다. ‘인의(仁義)’와 ‘효제(孝悌)’는 중화민족 전통 도덕의 핵심으로, 후손이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 역시 이에 해당한다. 논어 학이편에서 증자는 “부모상을 당함에 슬픔으로 예를 다하고 제사를 지냄에 공경을 다하면 백성이 감화를 받아 덕이 두텁게 된다(慎終追遠 民德歸厚矣)”고 했다.
공자에게 있어 성인이란 요, 순, 우, 주문왕, 주무왕, 주공 등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요임금을 찬양하며 “위대하도다, 요의 임금됨이여! 높고 높도다. 오직 하늘만이 크다고 하는데 요임금이 이를 본받으셨네. 넓고 넓어서 백성들이 이름 지을 수 없도다. 위대하도다, 그가 이루어놓은 위업이여. 빛나도다, 그 찬란한 문물제도여! ”라고 했다.
주희는 ‘주자어류(朱子類語)’에서 “하늘이 중니(공자)를 낳지 않았더라면 아주 오랫동안 어두운 밤이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한 공자의 말이야말로 도덕의 최고 준칙으로, 모든 사람의 좌우명이 돼야 한다고 했다.
19세기 후반기 러시아에서 한학(漢學)이 일어날 때 기초를 다진 사람은 당시 북경 종교사절단 단장이었던 니키타 비추린(Nikita Bichurin)이었다. 그는 중국 문화를 깊이 연구한 후 “보아하니 공자는 그리스도보다 고명하구나”라며 경탄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두 사람은 모두 중국 문화를 열렬히 사랑했다. 푸시킨은 ‘삼자경(三字經)’을 널리 알렸고, 톨스토이로 직접 ‘도덕경’을 번역했다. 톨스토이는 “공자는 아주 크고 노자는 거대하다”고 했다.
고금(古琴·7현 거문고)은 복희씨가 봉황을 본떠 만들었는데 길이는 1년 365일을 상징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금목수화토 오행을 상징하는 5현이었는데, 나중에 7현으로 늘어났다.
2006년 스웨덴의 작가 세실리아 링크비스트는 15년간 심혈을 기울여 ‘고금’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은 스웨덴에서 출판되자마자 스웨덴 최고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을 수상했고 스웨덴에 중국 문화와 고금 열풍을 일으켰다. 이 책은 3년 뒤 대만에서 중국어로 출판돼 2개월 연속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링크비스트는 “나는 중국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이 책으로 중국에 보답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했다.
이렇듯 러시아인 대문호들도 언어 장벽을 극복하고 생소한 중국 전통문화를 이해하려 애썼고 심지어 중국의 전통 정신을 자국민들에게 전하려 애썼다. 또한 스웨덴인 작가도 이역만리 중국에 와서 중국 고금을 배우고 중화의 정수(精髓)를 체험했고 또 이를 전력을 다해 해외에 널리 알렸다.
외국인들도 이럴진대 중국인으로서 선현을 경외하지 않고 조상을 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진정으로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학문을 닦고 수신양성(修身養性)으로 덕성을 갖춘 군자는 홀로 있어도 삼가고 진정으로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찌 경외하는 뜻을 군자만 품으리오. 천심과 민의에 부합하고, 나라가 태평하고, 가정이 효순하고 화목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나 신불을 경외하고 천지를 경외하고 도덕을 경외하고 조상을 경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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