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집] “국민 요구에 응답하고 공약을 실천하는 후보가 대통령 돼야” 임혁백 교수

제20대 대선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⑥

최창근
2022년 02월 15일 오후 5:33 업데이트: 2022년 02월 15일 오후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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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포크타임스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대선 특집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향후 5년의 운명을 판가름할 차기 대통령이 제시해야 할 비전, 새로운 정부가 수행해야 할 국정과제를 각 분야 전문가의 고언과 해법을 통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 여섯 번째 순서로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를 만나 한국 민주주의 현실, 대선의 시대정신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임혁백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이다. 민주주의 이론 권위자로서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조예가 깊다.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도교수는 폴란드 출신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였다. 이후 조지타운대, 듀크대, 스탠퍼드대학 초빙교수, 미국 민주주의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초빙연구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을 거쳐 1998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고려대 재직 시절 정책대학원 원장,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PDI) 소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 고려대 정년 퇴임 후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광주과학기술원(GIST)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학자로서 저술·번역 활동에도 매진하여 ‘시장 국가 민주주의’ ‘신유목적 민주주의’ ‘세계화 시대의 민주주의’ ‘1987년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 ‘Democratization and Democrcy in South Korea, 1960 to Present’ 등 다수 저·역서를 펴냈다. 그중 ‘신유목적 민주주의’로 2010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비동시성의 동시성: 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으로 2015년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했다.
정책 분야에서는 김대중 정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6년 중도진보 싱크탱크 좋은정책포럼을 창립하여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고 공약을 실천하여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임혁백 교수와의 인터뷰는 2월 7일,광화문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대선보도에서 언론은 국가 비전이나 정책에 초점 맞춰야
21세기형 보호민주주의가 시대정신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 필요
한국은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공고화
민주주의 질 제고 필요

20대 대선 과정에서 국가 비전이나 정책이 사라진 이유는 뭐라 보나요?

“기본적으로 언론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대선 후보들이 국가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해도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이슈에 주목하거나 선정 보도를 하는 속성이 있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두드러지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꺼낸 임혁백 교수는 선거 보도 문제점 지적을 이어갔다.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를 비롯하여 주요 언론사들이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다루기보다는 후보 본인이나 부인, 가족들의 각종 의혹 보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러한 미디어 환경하에서 후보들은 국가 비전이나 정책을 두고 경쟁하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고요. 일종의 미디어 상업주의라 할 수 있는데 언론사 입장에서는 시쳇말로 장사가 잘돼서 좋겠지만 국민에게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시청자나 독자도 네거티브 캠페인에 관심을 더 갖게 되고요.”

임혁백 교수는 정치 이론 전문가이다.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폴란드 출신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로 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요?

시대정신을 묻는 질문에 임혁백 교수는 지난 2016년 세계에서 역사적 사건이 3번 발생했다는 점을 짚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미국 대통령 당선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이다. “영국의 EU 탈퇴,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으로 불리는 미국 우선주의 등장,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것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세계화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들입니다. 더하여 2020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전 세계적인 확산이라는 전 지구 차원의 보건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세계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만큼 중대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죠. 코로나 19 팬데믹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디지털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초위험사회’가 도래한 것이죠. 기후변화라는 지구 환경 위기 문제도 빠트릴 수 없고요. 이 속에서 시민의 안전 문제를 보장하는 국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각종 공공재(Public Goods)를 공급하는 데 있어서 국가가 시장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됐죠. 이제는 국가가 시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말하자면 ‘보호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국가가 위기에 빠진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21세기형 보호민주주의 국가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될 것이라 봅니다.” 이렇게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정의한 임혁백 교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건 ‘억강부약(抑强扶弱)’도 이러한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억강부약은 ‘강한 이를 누르고 약한 이를 돕는다’는 뜻으로 중국 삼국지 위지 왕수전에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국민의 안전 책임지는 보호민주주의 국가 필요

문재인 정부 5년의 공과는 어떠한가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업적은 남북한 평화를 제대로 관리했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남북한 관계는 전쟁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서 남북미 관계를 중재한 결과 김대중 정부 이후로 가장 평화로운 남북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건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K-방역’으로도 불리는 코로나19 방역 성과도 빠트릴 수 없고요. 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은 성공적으로 방역을 수행한 나라입니다. 이 점도 문재인 정부의 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에서 정부의 성공적인 행정과 국민의 협조가 있어 가능했다고 평가한 임혁백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하여 고통을 겪은 국민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정부 방역 성공은 국민들의 지지와 협조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국민의 피해 보상 요구는 당연합니다. 문제는 기획재정부에서 추가경정 예산 편성에 난색을 보인다는 점인데 이는 분명 잘못이라 봅니다.” 임혁백 교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을 ‘신(新)집정관’이라고 빗대기도 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전문 기술 관료)들이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고 정책을 결정·집행하면서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정관들로 인하여 민주주의가 후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는 보편적 재난지원금, 감사원은 탈원전 정책에서 국민의 대표에게 저항했습니다. 모든 임명직 관리들을 선출직 대표의 엄격한 통제하에 두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기본 정신이자 원리입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가 지는 것이 맞지 관료집단이 지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선출된 권력에 의한 선출되지 않은 권력 통제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로버트 달(Robert Dahl)이 민주주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선출된 대표가 지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달은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등의 저서에서 ‘가디언스(Guardians)’로 불리는 선출되지 않고 전문성에 입각한 집단이 선출된 대표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문제를 민주주의의 장애 요인이라 지목했습니다. 이를 ‘가디언십(Guardianship)’으로 정의하고요. 시험 등 능력주의에 입각하여 임명된 테크노크라트들은 대표의 명령을 어기고 자율적 권한을 행사합니다. 테크노크라트들은 고도로 복잡해진 현대 행정 영역에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많은 문제를 비(非)정치화, 탈(脫)정치화시키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책임을 지는 것은 정치가이지 관료가 아니라는 점이죠.” 임혁백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검찰 개혁도 이의 연장 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해야 합니다만 검찰을 정치로부터 독립시켜서는 안 되죠. 행정부에 속한 법무부의 외청(外廳)인 검찰은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합니다. 검찰이 정치적 통제를 벗어나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임혁백 교수는 문재인 정부 탄생의 직접 원인이 된 2016년 촛불시위가 동시성과 비동시성의 성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비동시성의 동시성(Simultaneity of Non-simultaneous)’ 개념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가 바이마르공화국 체제하의 독일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개발한 개념으로, 전근대성과 근대성, 탈근대성이라는 비동시적 시간들이 동시적으로 갈등하면서 공존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가 테크노크라트 통제해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필요하나 정치로부터 독립은 안돼

촛불시위의 동시성의 비동시성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촛불시위에서도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촛불시위를 촉발한 배경에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이 자리했죠. 최순실 사건은 전근대적 주술주의 요소가 있습니다. 막스 베버(Max Weber)가 ‘세계의 탈주술화’를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 짓는 개념으로 제시했잖아요. 여기에 더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과 통치에 기여한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적인 전근대적 요소도 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 나폴레옹 3세가 황제가 된 것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박정희주의를 세습하고 ‘박정희 정신’으로 통치하려한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나파르티즘이죠. 전근대적 요소와 함께 근대적 요소가 촛불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인용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오게 한 것이 촛불혁명의 근대적인 요소입니다. 동시간대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중심으로 촛불시위가 온라인상에서 조직되었고, 연인원 700만 명이 오프라인 시위에 참여한 것은 유례없는 일입니다. 이는 탈근대적인 요소이죠. 따라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촛불시위에는 전근대·근대·탈근대적 요소가 모두 존재합니다.” 동시성의 비동시성 개념을 사용하여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 현상을 설명한 임혁백 교수는 촛불시위를 ‘융합(Heterarchy) 민주주의’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시원인 고대 그리스에는 아고라(Agora)라는 광장이 존재했습니다. 아고라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시현했죠. 촛불 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는 대의기관인 국회와 최고 헌법기구인 헌법재판소가 역할을 했습니다. 광장에서 분출된 시민의 요구를 국회가 수용하여 민주적 절차에 따라 탄핵소추를 하였고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죠. 이는 광장민주주의라는 직접민주주의 요소와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절묘하게 결합된 것입니다. 나는 이를 융합민주주의의 성공 사례라 평가합니다.” 임혁백 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강의는 이어졌다. ‘민주주의 이론’의 권위자인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까?

임혁백 교수는 2006년 중도진보 싱크탱크 좋은정책포럼을 창립하여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좋은정책포럼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임혁백 교수.

민주주의 공고화면에서 한국은 어떤 수준이라 평가하나요?

‘민주주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는 한 사회가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부가 쌓이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쉽게 되돌리지 못할 만큼 뿌리를 내리고 굳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대해 두 번의 정권 교체 테스트(two turnover test)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민주주의적 정부가 두 번 정권 교체될 때 그 민주주의가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당선돼 여야 간 정권 수평 교체가 일어났다. 이후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돼 다시 한번 정권 교체가 일어나 ‘헌팅턴 테스트’를 통과했다.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 민주주의 현실에 대해서 임혁백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주의 공고화를 평가하는 것에는 헌팅턴 방식도 존재하지만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가 정의한 대로 ‘민주주의가 우리 동네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이 되었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 참여자들이 민주주의 외에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다른 방식은 없다는 점을 내면화하고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죠. 쿠데타 등 민주주의 방식 외에 다른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하려 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든 참여자들이 믿을 때 민주주의가 공고화됐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 하더라도 ‘질(質)’적으로는 국가별로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죠.” 이렇게 설명한 임혁백 교수는 민주주의 질(quality of democracy) 제고를 위해서는 자유, 책임성, 응답성, 평등, 투명성 등 각종 민주주의 질을 구성하는 지수가 올라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참여자들이 민주주의가 우리 동네 유일한 게임이라는 것 인식하고 내면화해야
자유 책임 응답성 평등 투명성이 민주주의 질 제고의 핵심 요소

한국식 민주주의는 민주는 과잉이고 공화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역사적 연원을 살펴보면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를 행했던 고대 아테네에서 출발합니다. ‘시민에 의한 지배’를 원칙으로 하죠. 공화주의는 국가 규모가 커져서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없었던 로마 공화정에서 출발한다 할 수 있는데 핵심은 ‘공익(公益) 혹은 공적 덕성의 지배’입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대립하는 요소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적인 제도인 선거로 선출한 시민의 대표가 공익을 추구할 것이라는 믿음을 배반하면 탄핵이나 소환이라는 공화주의적 제도로 책임을 묻습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병립(竝立)하며 조화로울 수 있습니다. 절차를 논한다면 먼저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다음으로 공화주의로 나아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공화주의를 달성하는 데에는 노력을 덜 기울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의 과잉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임혁백 교수는 한국이 ‘더 많은 민주주의’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로 언론의 정치화와 검찰 권력의 비대화를 꼽았다.

임혁백 교수는 제도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한국은 민주주의 질 제고가 필요하다 강조한다.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현실과 이상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정당의 약화입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주역은 정당이죠. 이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Party is over(정당의 파티는 끝났다)’라는 표현이 회자되는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기성 정당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임혁백 교수는 한국 정당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사인(私人) 정당화의 문제점을 꼽았다. 이른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정당이 공당(公黨)이기보다는 특정 정치인이나 계파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극복하지 못했다는 취지이다. 정당 체제에 대한 문제점 지적을 이어가던 임혁백 교수는 이른바 ‘87년 체제’라 불리는 제6공화국 헌법도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하는 제6공화국 헌법의 문제점이 지속 제기됩니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6.29 민주화 선언 주역들 간의 타협의 산물입니다. 5년 단임제하에서 각자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던 것이죠. 그런데 5년 단임제는 여러 가지 문제를 노정하였습니다. 일단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은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치르는데 대통령은 5년마다 새로 선출하니 선거 주기가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이 밖에 단임제이다 보니 책임정치 실종 문제도 있고요. 내각책임제로 개헌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여론조사 결과 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합니다.”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한 임혁백 교수는 구체적인 개헌 방향도 제시했다. “4년 중임제로 개헌하되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권한을 줄여야 합니다. ‘의전용’에 불과하다 평가받는 국무총리도 폐지하고 부통령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회도 상원을 신설하여 양원제로 가야 합니다. 미국 상원이 ‘연방’ 문제를 다루듯이 한국 상원도 전 국가적인 정책을 다루게 해야 합니다. 상원 의장도 부통령이 겸임하게 하고요. 사법 개혁도 필요한데 고위 판·검사를 선출직으로 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책임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배심원제 도입도 필요하고요.” 임혁백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 정치학자로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라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갈등과 대립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극단적인 민주주의로 가서는 안 되죠. 극단적인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은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 추방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중용(memos)’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갈등과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양대 요소 중에서 갈등이 두드러지는 편이니 중용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고요. 정치학자로서 나는 좀 더 민주주의 요소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디지털 정치 플랫폼 등을 통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죠.”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과 이상에 대해 진단한 임혁백 교수는 차기 정부 5년을 이끌어 갈 대선 주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87년 체제는 한계 드러내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 필요

2007년 임혁백 교수(왼쪽)와 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설립 이사장이 ‘87년 체제’의 의미와 한계, ‘2007년 체제’의 시대정신을 주제로 토론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장단점은 뭐라 보나요?

“이재명 후보의 캐치 프레이즈가 ‘이재명은 합니다’잖아요. 여기에 그의 능력과 의지가 담겨 있다 봅니다. 이재명 후보는 공약을 하면 반드시 실천하는 정치인이라는 것이죠. 이는 지난날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수행하면서 증명했다고 봅니다. 나는 이재명 후보의 첫 번째 장점은 공약 실천 능력이라 봅니다. 두 번째 장점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데 ‘책임 정치’ 실현이라고 봅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공약 실천과 책임 정치는 핵심입니다. 주인(principal)-대리인(agents) 이론의 관점에서 봐도 대리인이 주인에게 책임지지 못하면 탄핵도 당할 수 있죠. 나는 이 점에서 이재명 후보가 대의민주주의에 충실한 인물이라 판단합니다. 자신은 대리인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점을 자각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덕목이 ‘정치의 응답성(responsiveness)’입니다. 국민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고 공약을 실천함으로써 책임 정치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 대리인의 소명이지요. 이재명 후보가 가진 행정 능력도 중요한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이제까지 정치가이기보다는 행정가로서 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미국의 사례만 봐도 과거에는 상원의원 등 중앙 정계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근래에는 주(州) 지사 출신들이 대통령이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죠. 카터, 레이건, 클린턴, 조지 H. W. 부시 등이 있습니다. 대도시인 성남시와 인구 기준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를 책임지고 운영해 본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으로서 적합하다 판단합니다.” 이재명 후보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한 임혁백 교수는 단점으로는 다음을 꼽았다. “이재명 후보는 두뇌 회전도 빠르고 언변도 뛰어나 보입니다. 다만 지나치게 이성과 논리에 치우친 리더십을 추구하는 듯해 보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평가한다면요?

“윤석열 후보는 검찰총장 출신입니다. 기본적으로 ‘리걸 마인드(legal mind)’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스스로도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고 있죠. 대통령에 당선되면 법과 질서를 수립하겠다고 밝혀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내고 있습니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적임자로 윤석열 후보를 바라보고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죠.” 윤석열 후보가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이유를 정리한 임혁백 교수는 우려되는 점도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법치(法治)입니다. 국가가 시민의 생명, 자유, 사유재산을 침해하지 못하게 법과 제도로써 제어하는 것이죠. 법치가 지나치면 중국 고대 법가(法家) 사상처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나 ‘사법통치(juristocracy)’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검찰권이 강화되고 이에 기반하여 사법통치를 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선거 유세나 정책 공약에 적극 반영하여 사법통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를 기대합니다.”
여야 대선후보들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표명한 임혁백 교수는 공식 선거기간 동안 네거티브 선거전을 지양하고 국가 비전과 정책 대결을 펼쳐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