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약물, 복용 중단해도 장내 미생물 변화 장기간 지속

신체는 일반적으로 약물을 몇 시간에서 몇 주 사이에 배출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수년 전에 복용한 약물도 장(腸)에 지속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복용 빈도와 기간이 길수록 그 영향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약물의 거의 90%가 장내 세균 구성에 영구적인 변화를 초래한다고 밝혀, 항생제뿐 아니라 고혈압치료제, 신경안정제, 위산억제제 등 소화기계와 직접 연관이 없는 약물에서도 유사한 영향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 같은 결과는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일반 약물이 장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레스바이오틱 뉴트리션’사의 파트너십 담당 이사인 카라 시드먼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약들이 장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腸)은 ‘기억’하고 있다
항생제가 장내 세균을 교란시킨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런 영향을 미치는 약품은 항생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연구는 항우울제, 베타차단제, 오메프라졸 같은 위산 억제제, 벤조디아제핀, 메트포르민 등 인간 세포를 직접 겨냥하는 다양한 약물들 또한 장내 미생물 구성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연구를 주도한 시드먼은 “우리는 흔히 약이 인간 세포에만 작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장내 생태계—미생물, 장벽, 면역체계—와도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약물 복용 중단 후에도 약물이 장내에 미치는 영향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약물의 경우, 복용 중단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효과가 실제로 약물 자체가 원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소규모 참가자 집단을 장기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장내 환경이 예측 가능한 형태로 변화했고, 복용을 중단하면 그 변화가 종종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현상이 나타나, 약물이 직접적인 원인일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연구 결과, 흔히 쓰이는 여러 약물이 항생제와 유사한 영향을 미쳤다. 불안증 치료에 자주 처방되는 벤조디아제핀은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감소시켜 일부 광범위 항생제와 비슷한 변화를 일으켰다. 항우울제 역시 항생제 복용 후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장내 미생물 패턴을 남겼다.
약물이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
항우울제나 베타차단제 등 약물 복용 시 증가하는 대표적인 세균군은 클로스트리디움 계열로 나타났다. 이 중 일부 균주는 드물게 인체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은 도레아 포르미시제너런스(Dorea formicigenerans) 및 루미노코커스 토르퀘스(Ruminococcus torques) 의 증가와 관련이 있었다.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약물이라도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은 서로 달랐다. 예를 들어 벤조디아제핀 중에서도 알프라졸람(상품명 자낙스·Xanax)은 디아제팜(상품명 밸리움·Valium)보다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더 크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톤펌프억제제(PPI) 역시 구강 내 세균인 스트렙토코쿠스 파라상귀니스(Streptococcus parasanguinis)와 베이오넬라 파르불라(Veillonella parvula)의 증가와 관련이 있었다.
이 두 세균은 치주질환과 충치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누적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에 항생제를 복용한 사람들은 마지막 복용이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와 상관없이, 항생제를 한 번도 복용하지 않은 사람과 같은 수준의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이 같은 누적 효과(혹은 패턴)은 항생제뿐만 아니라 벤조디아제핀, 스테로이드, 베타차단제에서도 확인됐다.
약물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약물이 장내 세균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는 다양하다.
일부 약물은 특정 세균의 성장을 늦추거나 멈추게 하는 반면, 다른 세균이 번성하도록 만들어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을 바꾼다. 어떤 약물은 유익균을 직접 죽이거나 억제하고, 또 다른 약물은 위산 농도나 면역 반응에 영향을 미치거나 장 점막을 약화시킨다.
항우울제는 장내 세균의 에너지 생성과 이용 방식을 교란시키며, 때로는 세균을 직접 사멸시키기도 한다.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는 장 점막을 자극해 염증을 유발하고 투과성을 높여, 특정 세균만 생존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장내 유익균은 염증을 완화하는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을 생산한다. 이러한 유익균이 사라지면 단쇄지방산 수치가 낮아져 장 염증이 악화되고 장벽이 손상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지방간, 인슐린 저항성,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 등 대사 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일부 미생물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특히 장내 미생물 구성이 본래 다양했거나 식단이 미생물 재성장을 돕는 경우 회복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완전히 사멸된 세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2024년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약물 중단 후에도 회복이 완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미생물 다양성이 일부 회복되더라도, 특정 세균이 영구적으로 사라지거나 다른 종으로 대체되는 상태가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 특히 영유아 시기는 장내 미생물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2022년 연구에서는 프로톤펌프억제제(PPI)를 400일 이상 복용한 영아의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낮고 균형이 무너져 있으며, 복용 중단 후 한 달이 지나도 이러한 변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PPI의 장기 복용이 단기 복용보다 미생물 생태계를 훨씬 심하게 교란시킬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영유아 시기의 항생제 노출은 이후의 대사성 질환, 아토피 질환, 알레르기, 천식 등의 발병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회복은 개인마다 다르다
약물이 장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지만, 그 정도와 회복 속도는 개인마다 크게 다르다.
연구를 이끈 시드먼은 “식단은 장내 미생물의 건강과 회복력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가 미생물 다양성, 식이섬유 발효, 담즙산 생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며, 이 모든 요소가 약물과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은 항생제 복용 이후 무너진 장내 균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식이섬유가 부족한 식단은 장벽을 약화시키고 염증을 촉진해, 장내 미생물 복원을 더디게 만든다.
장 염증은 약물 흡수 속도에도 영향을 주며, 담즙산 조성의 변화는 지용성 약물의 대사 과정을 바꿀 수 있다.
또한 개인의 기초 미생물 구성(baseline microbiome)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시드먼은 “같은 약을 복용하더라도 사람마다 장내 미생물의 변화 양상과 회복 속도가 다르다. 이는 처음 장내 생태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탄탄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장 건강을 지키는 방법
지속적인 약물 복용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시드먼은 장내 생태계의 회복력을 높이고 건강한 미생물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제안했다.
• 다양한 식이섬유를 섭취하라:
통곡물, 콩류, 과일, 채소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은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높이고 복원을 촉진한다.
• 폴리페놀(polyphenol)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라:
베리류를 먹고, 녹차를 마시며, 코코아를 식단에 포함시키면 유익균의 성장을 돕고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 발효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라:
요구르트, 케피어, 사우어크라우트(독일식 절임채소), 김치 등은 살아 있는 미생물과 장 건강을 돕는 생리활성 물질을 공급해 건강한 장내 생태계를 유지한다.
• 맞춤형 보충제를 활용하라:
특정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는 미생물 균형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와 포스트바이오틱스(postbiotics)를 함께 섭취하면 장벽을 강화하고 염증을 조절할 수 있다.
*레이첼 멜레그리토는 신경학적 질환 환자를 전문으로 하는 작업치료사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대학에서 기초과학과 전문 작업치료 과목을 강의했으며, 2019년 아동 발달 및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2020년부터는 다양한 매체와 브랜드를 통해 건강 관련 주제를 폭넓게 집필하며 전문 필자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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