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전지현과 드라마 《북극성》은 정말 중국을 ‘모독’했을까

10년 전, 한국 배우 전지현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 전역을 휩쓸며 ‘대륙의 여신’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선 이유는 다름 아닌 ‘중국을 모독했다’는 논란 때문이다.
최근 중국 누리꾼들은 전지현이 주연을 맡은 신작 《북극성》 속 대사를 문제 삼았다. 그녀가 연기한 한국 외교관 서문주가 극 중에서 던진 한 마디 때문이다.
“왜 중국은 전쟁을 선호하지? 그러다간 핵폭탄이 국경 지역에 떨어질 수도 있어.”
짧은 이 대사 하나가 삽시간에 중국 누리꾼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중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을 전쟁광처럼 묘사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팬덤 내부에서도 탈퇴 선언이 이어지며, 한때 ‘별그대’로 쌓아 올린 호감 이미지는 곧바로 무너져 버렸다.
논란은 대사에만 그치지 않았다. 드라마 속 중국 도시 ‘대련’이 실제 로케이션이 아닌 홍콩 판자촌 세트로 대체되면서 화면은 낡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붉은 바탕에 노란 오성이 수놓인 듯한 카펫이 등장했는데, 얼핏 보면 중국 국기와 흡사했다.
이런 장면들이 겹치자 ‘중국 모독’ 논란은 사실상 기정사실처럼 굳어졌다.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매체인 《인민문예》는 사설에서 제작진을 직접 겨냥하며 “불순한 의도를 담았다”, “은근슬쩍 정치적 메시지를 끼워 넣었다”라고 비판했다.
대사·소품·촬영지, 정말 ‘모독’이었을까
하지만 사실관계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문제가 된 대사는 제4화에 등장한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미국이 북한 핵 시설을 군사적으로 타격하려 하고, 한국 대통령은 전면전 가능성을 우려해 중국과의 협의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려 한다.
그러나 중국은 냉담하다. 공항 영접조차 없고, 북한 지도자와 비교해 턱없이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부통령과 나란히 앉아 있는데, 우리 대통령은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린다”는 장면이 그대로 묘사된다.
이때 전지현이 연기한 주인공은 의문을 던진다. “중국이 왜 전쟁을 선호하지? 결국 핵 공격의 목표가 국경이 될 수도 있는데.”
맥락을 살펴보면 이는 중국을 ‘전쟁광’으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중국이 왜 이번에는 북한 편만 들며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려 하는가”라는 탄식에 가깝다.
논란이 된 붉은 카펫 역시 사실과 다르다. 이 장면은 제2화 미국 백악관 집무실 회의실에서 등장한다. 실제로 2006년 백악관 집무실을 리모델링한 당시 제작된 카펫 디자인과 일치하는 것으로, 중국 국기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사실 고증에 가까운 것이다.
‘대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북한으로 밀입국하려는 인물이 항구를 찾는 장면인데, 촬영지는 홍콩 판자촌이었다. 제작진은 “실제 대련은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어 밀항 분위기를 살리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설령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해도, 굳이 대련을 깎아내리려 했다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화면에 등장한 것은 ‘낙후된 홍콩’이다.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한 갈등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 미국의 일방적인 외교 방식, 그리고 한국 정치의 불안정이었다. 중국을 정면으로 겨냥한 작품은 아니었다.
《북극성》은 어떤 드라마인가
《북극성》은 한국 제작진이 만든 작품으로, 디즈니 산하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방영 중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배경으로 첩보, 액션, 정치, 멜로가 뒤섞인 종합 드라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철저히 허구에 기반한 픽션이며, 매회 시작 부분에도 ‘본 작품은 픽션’이라는 안내문이 뜬다. 따라서 설령 일부 대사나 장면에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곧바로 ‘중국 모독’으로 단정하는 것은 과민한 반응일 수 있다.
오히려 중국은 자신감과는 거리가 멀고,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예민하게 구는 인상을 남긴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한국과 일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정치적 해석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나 평론가들도 문제의 장면을 대체로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중국 측의 강한 반발이 오히려 국제 언론의 주목을 끌었고, ‘반중’ 주장에 불을 지핀 셈이다.
정작 지적해야 할 근본 문제는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2016년 한한령 이후 중국 본토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공식적으로 거의 수입되지 않는다. 《북극성》 역시 디즈니플러스 전용 제작물이라 중국 내에서 정식 시청은 불가능하다. 결국 중국 네티즌들이 본 것은 불법 유통본이다.
즉, ‘금지된 콘텐츠’를 불법으로 보면서 그 안의 내용을 문제 삼는 셈이다. 이는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드라마를 막아 놓고, 그 결과로 발생한 불법 유통을 통해 다시 ‘모독 논란’을 키운 형국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드라마가 본질적으로 ‘중국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금기와 자유로운 창작 사이에서 충돌이 빚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전지현은 대본에 따라 연기한 배우일 뿐이며, 만약 비판을 해야 한다면 극본을 쓴 작가와 이를 유통한 디즈니여야 한다. 하지만 정작 디즈니에 대한 성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한류는 확장, 중국 영화는 침체
한한령 이후 많은 사람들은 “중국 시장을 잃은 한국 콘텐츠는 곧 몰락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한국 드라마와 K-콘텐츠는 글로벌 OTT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다.
2023년 기준 넷플릭스에서 한국 콘텐츠의 시청 시간은 전체의 8~9%를 차지해, 미국에 이어 두 번째였다. 디즈니플러스 역시 한국 드라마 투자를 확대하는 중이다.
즉, 한국 콘텐츠 산업은 중국 시장이 막혀도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 콘텐츠 산업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과도한 검열과 규제가 창작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 또한 중국은 내수 중심 구조에 갇혀 글로벌 시장 진출이 제한적이고,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투자와 창작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드라마 자체가 아니라, 그 드라마를 둘러싼 정치적 과잉 반응에 있다. 작품은 허구일 뿐이지만 이를 둘러싼 해석과 감정은 현실의 갈등을 부각시켰다.
《북극성》 사태는 작품의 메시지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시각이 더 큰 파장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며, 특히 중국 일부 누리꾼들의 편협한 해석이 잘못된 분노를 불러일으킨 대표적 사례였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에포크타임스에서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 현장을 깊이 경험했고,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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