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영화 ‘제이슨 본’ 시리즈에 담긴 미덕

2025년 05월 07일 오전 10:09

액션 영화는 미덕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다.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말이다. 그는 ‘시학(Poetics)’에서 드라마란 가장 깊은 차원의 행위, 즉 도덕적 성품에서 비롯된 행동의 모방이라고 설명했다. ‘본’ 시리즈의 첫 세 작품은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액션 영화다. 이 세 편은 하나의 위대한 행동, 즉 결함이 있는 한 인간이 선하고 위대한 인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함께 그려낸다.

첫 번째 영화에서 제이슨 본은 악을 거부하고 선을 향해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두 번째 영화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악을 직면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세 번째 영화에서는 특히 관대함이란 미덕이 두드러진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고통을 타인을 위해 사용한다. 이 영화들은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도 미덕이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중함과 ‘본 아이덴티티’

주요 덕목 가운데 으뜸으로 여겨지는 것은 ‘신중함’이다. 이는 인간이 실제 삶 속에서 선을 행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미덕이기 때문이다. 신중함은 때때로 사악한 계략가나 겁쟁이와 연관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악과는 무관하다. 악은 자기 파괴적이다. 똑똑한 악인은 단지 스스로를 정교하게 무너뜨릴 뿐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악이 진정으로 해를 끼치는 대상은 그것을 저지른 사람 자신의 영혼이라고 말한다. 성경도 “악인은 스스로 파 놓은 그물에 걸린다”고 기술한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주인공은 실용적인 인간으로 시작해 선(善)을 추구하고 악을 피함으로써 진정한 신중함이란 덕목을 갖추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이 지중해에서 의식을 잃은 채 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구조된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그는 경찰과 정체불명의 요원들에게 쫓기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이 CIA(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 작전 프로그램 ‘트레드스톤’ 소속 암살자였으며 수십 명을 제거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영화 ‘본 아이덴티티’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Universal Pictures

이러한 발견은 제이슨 본에게 도덕적 위기를 불러온다. 만약 기억 상실이 한 사람의 도덕적 성품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깨달음은 결정적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기억을 잃기 전 이미 마음의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 선택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악을 거부하는 내적 결단은 본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본은 신중함의 미덕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의 행동은 선을 향해 질서 있게 나아가며 영화 초반의 자기 보존과 자기방어란 낮은 차원의 선에서부터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더 높은 차원의 선으로 나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피비린내 나는 결전 장면조차도 더 높은 선을 추구하는 본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 핵심은 바로 과거 암살자로서의 삶을 내려놓으려는 결심이다. 기억을 상실한 상태에서 과거를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 그는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며 그 정보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사악한 과거 고용주를 직접 마주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본은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한다.

이 모든 행동은 단순한 선이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선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 즉 실천적 지혜 또한 갖추고 있어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고전적·기독교적 사상가들은 이러한 실천적 지혜를 구성하는 덕목의 일부인 ‘부분 미덕들(sub-virtues)’에 대해 다양한 목록을 제시해 왔다. 본은 그중 다수를 실천한다. 예컨대 뛰어난 화력과 유리한 사격 위치를 갖춘 저격수에게 위협받는 가족을 보호해야 할 때 그는 재빠른 판단력과 상황 대응 능력으로 이들을 방어한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 포스터.⎟Universal Pictures

‘사려(circumspection)’는 위험을 인식하고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아는 덕목이다. 영화 초반의 주요 액션 시퀀스를 이끄는 덕목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 대사관에서 체포될 위기에 처한 제이슨 본은 그를 붙잡으려는 요원들을 단숨에 제압한 뒤 침착하고 계산된 행동으로 무장 군인들 사이를 뚫고 탈출한다.

정의와 ‘본 슈프리머시’

‘본 슈프리머시’는 신중함에 대한 논쟁으로 시작되며 다음 주요 덕목인 ‘정의’의 실현으로 나아간다. 정의란 인간관계에 관한 덕목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인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는 것”으로 요약한다.

영화 초반 제이슨 본과 그의 연인 마리는 암살자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도망 중 두 사람은 격한 언쟁을 벌인다. 본은 그들의 미래가 이미 결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추격하는 조직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 맞서 싸워야만 했다. 본은 “우린 선택의 여지가 없어”라고 말한 반면 마리는 “아니. 당신에겐 있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바로 그 직후 마리는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본도, 관객도, 그녀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끝내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나머지 부분은 본이 ‘옳은 선택’을 해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작품의 중심에는 ‘정의’란 미덕이 자리하고 있다.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본 슈프리머시’에서 사악한 기관들의 추적을 받고 있다.⎟ Universal Pictures

게다가 ‘본 슈프리머시’의 서사는 워드 애벗 CIA 국장의 부정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패를 은폐하기 위해 제이슨 본 암살을 지시한다. 본의 정의 추구와 애벗 국장의 불의는 서로를 교차하며 영화 전반에 걸쳐 전개된다. 본이 자신의 과거를 점점 더 알아가면서 그가 트레드스톤 요원으로서 처음 벌였던 살인을 기억해 내고 두 서사는 마침내 하나의 결말로 수렴된다. 한편으로는 본이 다양한 차원에서 정의를 실현해 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애벗 국장이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본의 선택에는 언제나 신중함과 정의란 원칙이 깔려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는 그가 CIA 요원 파멜라 랜디를 저격 조준선에 두고 있을 때다. 그는 연인 마리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방아쇠를 당기려 하지만 랜디가 관련됐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그는 재빨리 계획을 수정하고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정의를 개인이 집행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라는 점이 확실하다.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본 슈프리머시’에서 저격을 망설인다.⎟Universal Pictures

영화가 전개될수록 ‘정의’는 한층 더 분명하게 영화 중심에 자리 잡는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한 장면은 아름다우면서도 놀랍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같은 고대 철학자들이 중시한 고전적 미덕이, 유대·기독교 전통의 회개의 미덕과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이다. 본은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또 다른 암살 사건들을 떠올리고 이를 계기로 목숨을 걸고 모스크바로 향한다. 그리고 희생자의 딸을 찾아가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이 장면은 마리가 남긴 마지막 말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어떤 외적 압력이 있더라도 인간에게는 항상 선택의 여지가 있다. 본은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반복해서 ‘정의’를 택한다.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불굴의 용기와 ‘본 얼티메이텀’

‘제이슨 본’ 시리즈는 일관되게 한 가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용기(fortitude)’의 영웅적이고 존경할 만한 성격이다. 그것을 하는 것이 옳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자세가 바로 용기다. 특히 ‘본 얼티메이텀’은 이 미덕을 중심에 놓고 전개된다. 영어에서 ‘용기(fortitude)’란 단어는 라틴어 어원상 ‘용기(bravery)’이자 ‘힘(strength)’을 뜻하며, 본 시리즈는 이를 행동으로 구현해 낸다. 한국어 사용자 입장에서는 둘을 나눠 이해하기 어렵지만 ‘Bravery’가 즉각적이고 감정적 반응에 가까운 용기로 소방관이 사람을 구해내는 행동 같은 경우를 말한다면 ‘fortitude’란 감정보다는 의지와 이성의 힘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옳은 일을 지속하는 힘을 의미한다.

‘본 얼티메이텀’은 전작이 끝난 지점인 모스크바에서 바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번 편에서 제이슨 본의 다음 과제는 자신이 어떻게 트레드스톤 요원으로 선발되고 훈련받았는지를 기억해 내는 것이다. 동시에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남아 있는 부패한 CIA 고위 인사들을 폭로해야 한다. 본은 체포를 피하고 다른 비밀 요원들과의 격렬한 전투를 벌이며 도중에 한 여성을 구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기억을 되찾고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한다.

본 삼부작 중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 장면 중 하나인 ‘본 얼티메이텀’의 액션 씬에서 제이슨 본이 사악한 적들과 맞서 싸운다.⎟Universal Pictures

영화에는 모로코 탕헤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시리즈 중 가장 길고, 가장 잔혹한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때문에 본의 놀라운 신체 능력뿐 아니라, 엄청난 인내심과 끈기가 요구된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주요 덕목들 간 긴밀한 연결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신중함, 정의, 용기는 계층적으로 연결돼 있다. 신중함은 정의와 용기 양쪽의 목표를 설정해 주는 덕목이며 용기의 영역인 ‘위험 감수’는 그 목표가 정의로울 때에만 진정한 미덕이 된다. 본은 신중하고 정의로운 목적, 즉 친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싸움만을 선택하고 그를 위해 싸운다.

정의는 항상 공식적인 방식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기회는 훨씬 더 많다.⎟ Shutterstock

영화의 마지막, 제이슨 본은 용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관대함(magnanimity)’을 보여주며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의 목적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더 나아가 공익을 위한 위대한 행동, 즉 부패한 정부 조직의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세상에 폭로하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도 그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암살자를 살려주고 생명을 빼앗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이 장면은 전작 ‘본 슈프리머시’의 결말과 유사하게 고전적 미덕과 기독교적 미덕이 ‘자비’라는 행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먼저 이 행동은 정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본은 자신 역시 과거에 암살자였음을 자각하며 누군가를 심판할 자격이 자신에게 없다고 판단한다. 동시에 이 장면은 ‘용서’라는 또 다른 미덕의 실천이기도 하다.

미덕은 강하고 악은 약하다

제이슨 본은 열악한 물리적 조건을 극복하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만 영화가 강조하는 핵심은 그가 지닌 단 하나의 강점, 즉 ‘미덕’이다. 본 시리즈는 마치 고압 실험실 속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실험처럼 구성돼 있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이점을 가진 거대 조직의 부(富), 정보력, 권력, 감시 능력을 상대로 단 한 사람이 맞서는 구조다. 단, 그들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미덕이다.

본은 비범한 전투 능력과 암살 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그가 진정으로 강해지는 순간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더 나은 삶을 선택할 때다. 과거에는 단지 조직의 ‘자산(asset)’이자 도구에 불과했던 그가 CIA와 그 방대한 지원 세력들을 이겨낸 이유는 그가 미덕에 따라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의 과거 상사들은 여전히 본의 행동을 계산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본의 결정과 행동은 자유로운 도덕적 주체의 것이어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마보다 예측 가능한 것은 없다. 그것이 바로 제이슨 본이 거의 대부분 적들보다 한 발 앞설 수 있는 이유다. 그는 적들이 어떤 배신을 시도할지 잘 알고 있다. 그는 그들이 신중함과 이성보다는 인력, 기술, 절차에 의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 본은 이성과 신중함에 따라 살 권리를 위해 반복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싸운다. 그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옳은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이 점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에 대한 위대한 저작인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완전치 일치하는 삶을 살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에 따라 살아가지 않으면 인간은 행복할 수 없으며 이성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 표지.⎟ PD-US

‘본’ 시리즈는 인간의 미덕에 대해 사유하고 배울 수 있는 탁월한 매개체다. 물론 이 영화들은 연기, 스토리, 촬영, 그리고 전투 안무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무엇보다도 사실감 넘치는 연출은 특히 주목을 받아왔다. 아마도 이 영화들의 사실감은 더 깊은 현실, 즉 인간을 완성시키는 원칙들, 미덕의 원리에 의해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