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화가, 티치아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창기에 ‘에체 호모(Ecce Homo·보라, 이 사람을!)’로 분류되는 작품 중 하나를 그렸다.
르네상스 초기, 에체 호모(Ecce Homo)는 기독교 미술의 인기 주제였다. 특히 네덜란드 거장들 사이에서 더욱 그러했다. 이 주제는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쓴 예수가 고발자들 앞에 서 있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을 일컬으며 일반적으로 ‘보라(Ecce 에체), 이 사람을!(Homo 호모)’로 번역된다. 그러나 원문 라틴어에는 더 미묘한 함의가 있다. ‘호모’는 성인 남성을 의미하지만 보통 ‘사람’임을 강조할 때도 사용된다.
17세기 이전, 이탈리아 화가들은 적대적인 군중이 예수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장면(누가복음 23:13-25; 요한복음 19:13-16)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베네치아 출신이자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 티치아노(약 1488~1576)는 1543년, 플랑드르 상인 조반니 단나를 위해 이 장면에 대한 초기 해석을 작품으로 그렸는데, 이는 이탈리아 화가로서는 이례적인 주제 선택이었다.
티치아노의 ‘에체 호모’는 관람객의 시선이 계단을 따라 예수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예수는 캔버스 가장자리에 배치되어 있지만, 구도상 중심이 된다.
이처럼 티치아노의 뛰어난 연출, 풍부한 색채 표현, 초상화와 사물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후대 유럽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또한 티치아노는 관객을 군중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양심과 신앙을 스스로 성찰하게 한다.
티치아노의 구도

티치아노의 ‘에체 호모’에는 특히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다. 유대교 성전 경비대의 장교, 제사장,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다. 경비대의 장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를 체포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화면 중앙의 계단 위에 서 있다. 진한 적갈색 의복과 핼버드(도끼와 창이 달린 장창)가 그의 지위를 보여 준다. 계단 아래의 인물은 제사장으로, 흰색과 금색으로 이뤄진 예복, 긴 빨간 망토, 그리고 담비 털로 만든 모제타(팔꿈치 길이의 덧 망토)를 입고 있다. 그의 의복이 교황의 복장과 유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티치아노는 이 인물을 대제사장 ‘가야바’로 의도했을 수 있다.
장교와 제사장은 금발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가운데 두고 있는데, 그녀의 옷은 나머지 군중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전통적으로 순결을 상징하는 색임에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예수의 죽음을 요구하는 무리 속에 포함돼 있다.
이 인물들을 둘러싼 것은 유대 지역 지배층들이다. 짙은색의 갑옷을 입은 세 남성과 흑백의 화려한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 군중은 하늘 배경과 대비돼 시각적으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계단을 따라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다음 인물이 본디오 빌라도다. 선명한 푸른색 옷을 입은 그는 총독 관저의 중립적인 색조의 석벽과 대비를 이루며 두드러진다. 빌라도의 모델이 된 인물은 티치아노의 친구 피에트로 아레티노인데, 이는 상징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당대 저명한 작가였던 아레티노는 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빌라도가 대체로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빌라도가 군중의 압박에 굴복하기 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구하려 했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다만 아레티노를 빌라도의 모델로 택한 것이 티치아노 본인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후원자였던 조반니 단자의 요청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
왼쪽 상단에는 예수가 자리하고 있다. 그의 피부색은 총독 관저 석벽과 거의 한데 섞여 보인다. 티치아노는 예수를 계단 꼭대기에 배치해 그야말로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의 적들 위에 두었다.

기독교 신학에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의 희생적인 죽음은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예언적으로 예표됐다. 천사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킬 때, 어린양의 피로 표시된 히브리인 집의 사람들은 모두 보호했다. 반면, 표시가 없는 이집트인의 집에서는 천사가 ‘지나가자’ 모든 맏아들이 죽었다. 그 이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일환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서기 70년에 파괴될 때까지, 매년 유월절마다 어린 양이 희생됐다. 예수 또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러한 상징성은 이 그림의 제목 ‘에체 호모(보라, 이 사람을!)’와, 티치아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구절인 ‘에체 아뉴스데이, 에체 퀴 톨리트 페카타 문디(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을!)’와의 대비를 통해 강조된다. 이 구절은 세례자 요한이 ‘어린양’의 상징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해 한 말(요한복음 1:29)이자, 가톨릭 사제들이 성체를 분배(*역주-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는 빵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과정)하기 전에 반복적으로 낭송하는 문구다. 티치아노의 동시대 가톨릭 신자들은 이 상징성을 쉽게 알아챘을 것이다.
티치아노는 인물들의 복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에 대한 상징성을 확장했다. 예수, 빌라도, 그리고 한 로마 병사는 서기 30년경 유대 지역의 전형적인 의상을 입고 있다. 반면, 군중의 복장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의상이다. 이는 단순히 티치아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그 당시의 저명한 군인, 기사, 귀족들만을 암시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가 교황을 닮은 인물과 흰옷을 입은 여인을 그림에 포함한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최고위 성직자들, 그리고 거의 완벽하게 순결한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의 죄로 인해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형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있다는 내포를 지닌다.

왼쪽 하단에는 쌍두의 검은 독수리가 그려진 방패를 든 병사가 있다. 이 ‘쌍두수리’는 티치아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인 찰스 5세(1500-1558)가 통치했던 신성 로마 제국의 상징이다. 찰스 5세는 1519년부터 1521년까지 독일 국가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대공이었고, 1516~1556년엔 스페인 국왕이었으며, 1506년부터 1555년까지는 부르고뉴 공작이었다. 이 그림의 후원자인 네덜란드 영주 조반니 단나는 자신의 가문이 찰스 5세의 신하임을 강조하고 싶었거나, 황제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고 싶었을 가능성이 있다.
의미 있게도, 티치아노의 ‘에체 호모’는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19세기 후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가 설립한 이 박물관은 일반 대중이 황실의 훌륭한 예술품들을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박은희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