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재너’…미국 음악의 아버지 스티븐 포스터

레베카 데이(Rebecca Day)
2024년 06월 29일 오후 9:16 업데이트: 2024년 06월 29일 오후 9:45

미국 민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티븐 콜린스 포스터(1826~1864)는 미국 최초의 공식 전업 작곡가다. 그는 ‘오! 수재너’와 ‘켄터키 옛집’ 등 200개가 넘는 곡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계속 사용되며 많은 이에게 향수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포스터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남부 미국의 풍경을 감상하며 인생을 즐기는 평범한 미국인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는 음악에 헌신했고 삶의 크고 작은 순간에 대해 감사했다. 이는 그가 낭만주의 운동의 가장 성공적인 작곡가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문화적 영향력이 큰 작곡가로 성장하게 했다.

독학으로 배운 음악

‘스티븐 포스터의 초상’(1856), 토마스 힉스 | 퍼블릭 도메인

미국독립기념일에 태어난 그는 탄생일에 걸맞게 미국 음악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그가 탄생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는 이탈리아, 독일,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등 다양한 유럽계 이민자들이 모여 지내던 곳이다. 그는 다양한 문화에서 긍정적 영향을 받아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아들의 총명함을 일찍이 알아본 그의 부모는 그를 사립 교육 기관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문학 등 다양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여러 학문을 익히는 동안 그는 음악 공부를 독학으로 병행했다. 기타, 피아노, 클라리넷 등을 공부하던 중 그는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 거장의 음악에 매료돼 자신만의 음악을 작곡하고자 결심했다.

1841년, 그는 제퍼슨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1주일 만에 중퇴하고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신혼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

포스터의 곡 ‘금발의 제니’ 악보 표지. 그림은 그의 아내 제인의 초상화라고 전해진다. | 퍼블릭 도메인

포스터는 1850년 제인 데니 맥도웰과 결혼한다. 결혼은 그에게 영감과 안정을 선사했다. 뉴욕과 미국 남부지방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그는 그곳의 광경에 크게 감동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왕성한 작곡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가 작곡한 많은 대중가요에는 남부 지방의 다채로운 모습과 민속적인 요소가 담겨있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북부에서 보냈지만, 남부의 활기참은 그의 음악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남부를 주제로 그가 쓴 곡인 ‘켄터키 옛집’ 역시 이 시기에 작곡했다. 이 곡은 1928년 켄터키주의 주가(州歌)로 지정됐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서정적인 가사에 담은 이 곡은 많은 인기를 얻었고, 지금까지도 매년 켄터키 주민들은 켄터키 더비(경마 경주)에서 경기 시작 전 이 곡을 합창한다.

‘오! 수재너’

포스터가 작곡한 남부풍의 곡 중 또 다른 유명한 곡은 ‘오! 수재너’다. 포크풍의 이 곡은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남부를 여행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848년에 발표된 이 곡은 아프리카 악기의 하나인 밴조로 시작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파된 음악 장르인 폴카의 박자에 따라 진행된다. 이 곡은 포스터의 대표곡으로 꼽히며 미국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왼쪽) 1905년에 출판된 포스터의 ‘켄터키 옛집’의 악보. (오른쪽) ‘켄터키 옛집’의 필기 초안 | 퍼블릭 도메인

그는 작곡 활동을 펼치는 중 한 장르에 치중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우아하고 능숙하게 섭렵했다. 특히 그는 19세기 초 민스트럴쇼라는 연극 형식의 공연을 위한 곡도 다수 만들었다. 이 장르는 백인 배우가 흑인으로 분장하고 공연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대중적이며 널리 사랑받은 공연 예술의 하나로 정착했다.

미국 음악의 아버지

스티븐 포스터 기념관에 전시된 ‘아름다운 몽상가’의 엽서 | 퍼블릭 도메인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포스터는 1864년 1월 열병에 걸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소식에 음악계는 큰 상실을 겪었다. 그의 가족은 포스터의 사망 이후 미발표곡 ‘아름다운 몽상가’를 발표해 그의 유산을 기렸다.

미국 음악의 아버지라 불린 그는 독창적인 음악으로 미국 예술계에 크게 공헌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는 스티븐 포스터 기념관이 설립돼 그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그가 미국 음악계에 남긴 영향력은 세대를 이어가는 새로운 음악가들에게 계속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레베카 데이는 독립 음악가이자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컨트리 그룹 The Crazy Daysies의 리더이기도 합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