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덕후’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캐드버리 초콜릿’. 영국의 초콜릿 브랜드인 캐드버리는 영국 왕실 인증 허가를 받은 브랜드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50개국 이상에서 운영되고 있다. 영화로도 제작된 유명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모티브가 된 회사가 바로 캐드버리다.
올해로 자그마치 설립 200주년을 맞은 캐드버리의 역사는 사실 ‘존 캐드버리’라는 한 사람에게서 출발한다.
1801년,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난 존 캐드버리는 어릴 때부터 총명한 자질로 주목받는 아이였다.
캐드버리의 집안 어른은 “존은 현명하고 활기차다”는 편지를 남겼으며, 캐드버리의 친누이 마리아도 어린 캐드버리의 영민함과 에너지에 대한 글을 남겼다.
학교를 졸업한 후 캐드버리는 차 판매상의 견습생으로 취업, 음료 사업을 배웠다. 그러던 중 아들의 자질을 믿고 있던 부친이 캐드버리에게 사업 자금을 빌려주었고, 이는 캐드버리의 인생을 바꾼다.
1824년, 캐드버리는 버밍엄의 주요 상업지구인 불 스트리트에 작은 식료품점을 연다.
그곳에서 캐드버리는 술 대신 ‘건강한 음료’를 판매했다. 커피, 차, 코코아 등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캐드버리는 자신의 사업이 수십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전 세계적인 ‘초콜릿 제국’으로 거듭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캐드버리의 가게는 멋지게 꾸며져 있었고 많은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곤 했다. 가게에는 그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던 마호가니 원목 틀의 아름다운 통유리창이 있었다. 통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가게 내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동양 인형으로 장식돼 있었다.
처음 캐드버리는 절구를 이용, 손으로 코코아콩을 갈아 직접 코코아 가루를 만들었다. 그러다 1831년 첫 공장을 세우면서 코코아 생산 절차를 간소화했다. 1842년이 되자 캐드버리는 16가지 초콜릿 음료를 제조 및 판매하는 사업가로 거듭나 있었다.
1854년에는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며, 단 것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던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공식 코코아 제조 담당자로 임명됐다.
초콜릿, 그 이상
초콜릿 사업을 하는 한편으로 캐드버리는 자신의 남는 시간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용했다. 사업에서 창출된 이익을 지역사회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캐드버리의 삼촌이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일을 계기로 캐드버리와 캐드버리의 부친은 함께 금주 운동 단체를 설립했다. 1829년, 캐드버리는 버밍엄 시의회의 초기 모델인 버밍엄 거리 위원회 위원으로 뽑혔다. 이 시기 캐드버리는 지역 내 빈곤 퇴치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캐드버리는 굴뚝 청소부로 일하던 어린 소년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목격했고 이에 굴뚝 청소 기계를 개발, 도입했다. 그 밖에도 차량에서 배출되는 매연과 공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캐드버리가 살았던 시대인 19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동물 학대는 위법 또는 불법이 아니었다. 당시 인기가 높은 스포츠 하면 닭싸움이었으며, 당시 대중교통수단인 역마차의 말들은 대개 죽기 직전까지 노역에 시달리곤 했다.
이러한 실태에 가슴 아파하던 캐드버리는 ‘동물친구협회’를 설립했다. 캐드버리가 설립한 이 단체는 오늘날 영국 최대 규모의 동물 복지 단체인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의 전신이다.
사업이 번창한 뒤 캐드버리는 주로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캐드버리는 바구니에 채소를 가득 담고 마을의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채소를 배달하며 자신의 풍요로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다.
1855년, 아내가 사망한 뒤 캐드버리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1861년, 캐드버리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889년, 캐드버리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직원들을 돌보고 지역사회에 환원하면서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나갔다. 이들 형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터와 가까운 곳에 삶의 보금자리를 꾸리면 좋겠다. 그런 마을을 건설하고 싶다”는 아버지의 꿈을 실현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영국 버밍엄 외곽의 본빌 마을이 바로 그것이다.
캐드버리 기업은 자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해 당대 최고 수준의 근무환경이 조성된 본빌 마을을 지었고 근로자들에게 정원이 딸린 주택을 제공했다. 현재도 본빌 마을은 근로자들의 복지를 생각한 편의 시설과 녹지 공간 등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캐드버리 가문은 200년 가까이 ‘사회적 기업’의 상징으로 불려 왔다. 캐드버리 가문 출신으로 자신만의 초콜릿 회사를 설립한 한 사업가는 지난 2023년 영국 일간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하기도 했다.
“캐드버리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 주머니에 돈이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제 조상들은 자선가였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후대를 위한 부를 창출하는 대신 기부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존 캐드버리는 맛있는 초콜릿, 그리고 초콜릿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세상에 남겼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더 낫게 할 것!”
트레버 핍스는 범죄, 역사, 스포츠를 전문으로 다루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