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앞에 세운 웅장한 규모의 정문, 포털(Portal)
도덕적 메시지를 담아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다
중세 프랑스때 건설된 성당과 수도원은 다양한 조각들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특히 ‘포털(Portal)’이라 불리는 웅장한 정문은 유서 깊은 건물에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중세에 세워진 포털은 지금까지 건물의 정문을 지키고 있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훼손되거나 분해되어 현재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포털은 어디에 있든 그 장소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러 양식의 포털
중세 프랑스의 교회 건축물을 위해 만들어진 포털은 대부분 화려하게 꾸며졌다. 주로 두 가지 건축 양식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문 상단에 반원형 아치가 설치된 로마네스크 양식과 뾰족한 아치가 특징인 고딕 양식이 있다.
포털의 정면(건물 정면의 외벽)은 여러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다. 상인방(입구 위 수평으로 걸쳐둔 석재. 벽 윗부분 무게를 지탱해 주는 뼈대 역할)과 그 위 공간, 아치 등이 주요 요소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종교적 장면을 새겨 넣었다. 이 덕분에 포털은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예술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무티에-생-장 수도원
무티에 생-장 수도원의 포털은 원래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한 수도원에 장식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무티에-생-장 수도원은 5세기경 프랑스 최초의 기독교 왕인 메로베우스 왕조의 클로비스 1세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후 1250년경, 건물 입구를 장식할 포털이 제작되었다. 이는 고딕 양식의 포털 중 훌륭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모 대관식’은 13세기 프랑스 예술계에선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였다. 무티에 수도원의 포털을 제작할 때도 이 주제를 선택했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가 성모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하늘의 여왕으로 임명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인물 주위는 성체를 상징하는 동시에 수도원이 있는 부르고뉴 지역의 위상을 상징하는 포도덩굴과 포도송이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보다 더 위에는 무릎을 꿇고 성모에게 존경을 표하는 천사들이 있다. 천사 조각상들은 머리를 잃고 몸과 날개만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는 16세기 후반 종교 전쟁 중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입구의 양옆에 세워진 인물 조각상은 각각 클로비스왕과 클로타르왕을 묘사한 것이다. 이 조각상은 프랑스 혁명 기간에 분해되어 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특히 조각상의 머리는 참수당하듯 분리되어 있다. 혁명 이후 수도원 건물은 농장 헛간으로 이용되었다. 가치를 알아보는 이 없이 약 200년이 흘렀고, 1920년대에 이르러 미술품 상인들에 의해 발견된 후 193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이를 매입하게 된다. 이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다른 예술품 수집가에게서 조각상을 구매한 후 포털과 조각상을 복원하여 오늘날까지 함께 보존되고 있다.
생 라자르 대성당
부르고뉴 지방에 위치한 생 라자르 대성당은 1120년에 지어졌다. 대성당의 주 출입구인 포털역시 거대하고 웅장하게 꾸며져 있다. 상인방 위에는 ‘최후의 심판’의 한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마태복음 속 내용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60여 개의 인물조각과 여러 장식으로 이뤄져 있다.
규모와 섬세함이 압도적인 이 작품은 프랑스 조각가 기슬레베르투스가 1125년에서 1135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성당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지만, 작가의 삶과 기타 작품은 대부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기슬레베르투스의 이 작품은 심판의 무시무시한 장면을 묘사했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기술력으로 ‘심판의 순간’을 생생하게 구현한 이 작품은 중세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맨 아래 줄 오른쪽에는 죄인이 심판받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거대한 손이 등장해 죄인의 머리를 마치 굴삭기가 들어 올리는 것처럼 묘사했는데, 기슬레베르투스의 매우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석조 조각은 지금처럼 기술력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중세 시대에 대규모 작품을 제작할 때 대부분 여러 명이 공동으로 작업했지만, 이 작품은 기슬레베르투스의 이름만 제작자로 명시되어 있다.
화면 가운데를 차지한 거대한 그리스도상은 양손과 무릎을 양쪽으로 펼쳐 포용과 연민을 느끼게 한다. 신의 자비와 죄인들의 심판이 대조를 이루며 웅장함과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은폐 덕에 보존된 걸작
1125년 경 제작된 이 작품은 시간이 흘러 1776년 즈음에는 더이상 인기를 얻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석고로 이 작품을 가렸고, 그 과정에서 돌출되어 있던 그리스도의 얼굴이 잘려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은폐 덕분에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 기간 훼손되지 않았고 석고 아래에서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1830년대, 한 수도사가 중세 문서에서 이 작품에 대한 내용을 발견하고, 석고에 가려져 있던 작품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잘렸던 그리스도의 얼굴은 이후 인근 박물관에서 발견되어 제자리를 찾아간 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프랑스 파리 시테섬에 위치한 이 건물은 12세기에 파리 주교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고대 기독교 건축을 대체할 새로운 건축 양식을 찾던 중 때마침 확산되기 시작한 고딕 양식으로 결정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서쪽 정면에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은 세 개의 웅장한 포털이 있다. 왼쪽부터 각각 성모 마리아의 문, 최후의 심판의 문, 성 안느의 문으로 불린다.
성모 마리아의 문은 마리아의 죽음과 천국으로 승천한 후 대관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담았다. 성 안느의 문은 1200년경 설치된 것으로, 세 문 중 가장 오래되었다. 이곳에는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이 새겨져 있다. 프랑스 왕과 파리 주교가 성모와 어린 그리스도를 만나, 모자를 벗고 예를 갖추고 있다. 이는 프랑스 왕족과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 조각된 가운데 문이 바로 주요 출입구다. 상인방 아래쪽에는 천사들이 나팔을 불어 죽은 자들을 깨운다. 그 위에는 대천사 미카엘이 영혼의 무게를 재고 있고, 그 옆에는 악마가 자리해 그를 방해하려 한다. 미카엘 왼쪽의 구원받은 자들은 천국으로 올라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악마의 옆에는 죄인들이 지옥으로 끌려간다. 그들 위 그리스도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고, 그 옆에는 마리아와 성 요한이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9년, 지붕 처마 밑에 화재가 발생했었다. 다행히 포털을 포함해 큰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첨탑, 지붕, 상부 벽 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지금까지 재건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2024년 12월에 대중에게 다시 공개될 예정이다.
도덕성 고취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
포털은 성당, 수도원 등의 외부에 설치된 구조물이다. 따라서 예배나 기도 중에 도움을 얻고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도덕적 메시지를 담아 건물 밖에서 언제든, 누구든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도덕성을 고취하도록 한 것이다. 더불어, 포털은 훌륭한 예술적 완성도와 역사성을 갖췄기에 특별한 보존과 각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