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서울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계경보가 발령됐다. 이유와 행동 요령을 밝히지 않은 경계경보와 방송 탓에 시민들은 우왕좌왕했다. 무엇보다 지난 6년 동안 민방위훈련을 실시하지 않은 탓에 어디로 대피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면 만약 ‘진짜 경보’가 발령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미국 등에서 널리 알려진 ‘핵전쟁 생존지침’ 등을 토대로 꼭 기억해야 할 점들을 정리했다.
◇정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전시 대피요령 공개…실효성 낮아
정부와 지자체는 국민재난안전포털 등을 통해 전시대피요령을 공개하고 있다. 주요 행동 수칙은 ▲집에 머물면서 정부 지시에 따라 행동할 것 ▲대피령이 내려지면 비상물자를 갖고 신속히 대피할 것▲정부 통제에 적극 협조할 것 등이다.
국민재난안전포털은 각 지역 대피소와 급수시설 주소를 공개하고 있다. 지하철역과 빌딩, 학교 등 지하시설이 있는 공공건물이 모두 대피소이고 산책로 등에 있는 약수터나 학교가 급수시설이다.
그런데 재난안전포털에는 유사시 챙겨야 할 물품 목록, 대피 방법, 대피소 사용 요령 등에 대해서는 전혀 소개하지 않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두루뭉술하게 설명해 놓고 있다. 사실상 쓸모없는 정보가 대부분이다.
◇전쟁 전 챙겨놔야 하는 생존배낭과 이동수단…차량은 불가
전쟁이 터지기 전에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생존배낭과 이동수단이다. 생존배낭은 가족 수대로 준비해야 한다. 최소 3일 치의 식량과 식수, 외투, 양말, 속옷, 수건, 침낭, 방수가 되는 텐트 또는 깔개, 우의, 라디오, 응급처치용 의약품, 정수제 또는 정수필터가 달린 빨대, 등산용 버너와 연료, 모기약, 손전등, 배터리는 무조건 갖춰야 한다. 필요하다면 휴대용 태양광 배터리와 전자기기 보호를 위한 EMP 방호 주머니도 챙길 수 있다.
식량 문제는 가장 중요하다. 대다수 사람들은 라면이나 햇반 또는 3분 요리 같은 레토르트 식품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량은 피란에 어울리지 않는다. 라면은 우선 물과 연료 소모가 많다. 햇반이나 3분 요리는 수분이 있어 무겁다. 가장 무난한 게 등산용품점에서 파는 건조전투식량과 비상용 미네랄바다. 비스켓이나 건빵도 대용이 된다.
우의는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것이다. 1회용 우의를 여러 개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깔개와 침낭은 노숙 때 필수다. 라디오는 전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안전한 피란 경로를 확보할 때 필요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정부에서 전파 사용을 제한하므로 휴대전화 사용이 매우 어렵다. 인터넷 사용도 마찬가지다. 만약 가까운 사람들과 통신할 필요가 있다면 야외용 무전기 세트를 구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챙긴 생존배낭은 무게가 20kg가 넘고 부피도 50ℓ가 넘을 수 있다. 이걸 직접 메고 이동하는 건 성인 남성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 전시에 차량으로 이동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전시 작전계획에 따르면 일반 차량은 통행이 불가능하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은 군의 작전을 위해 차량 통행을 차단한다. 오토바이를 쓸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연료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수단은 자가 충전이 되는 전기 자전거다. 여기에 배낭을 싣고 이동한다면 그나마 고생을 덜 할 수 있다.
◇피난 목표지와 경유지 미리 고려해 놔야…전쟁 초기에는 일단 아파트·건물 지하로
생존가방은 만일을 대비해 미리 챙겨놔야 한다. 그다음엔 전쟁 발발 시 어디로 어떻게 피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피란은 보통 적 공격 초기 단계와 그 이후 단계로 나뉜다. 적 공격 초기에는 어디로도 이동하지 말고 아파트나 사무실 등이 있는 대형 건물 지하, 지하철역으로 대피해야 한다. 운전자도 차를 세우고 근처 지하시설로 대피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물은 대부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라 핵공격만 아니면 미사일이나 포격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가정용 방공호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적의 미사일·포격으로부터 대피할 수 있는 곳은 이런 지하시설뿐이다.
아파트나 건물 고층의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본의 아니게 북한의 포격과 미사일 공격을 막는 방호벽 역할을 한다. 즉 건물 고층에 미사일이나 포탄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하시설로 대피하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대부분의 지하철과 아파트·건물 지하시설에는 식수나 식량 등을 비축해 놓지 않는다. 대피 기간이 길어지면 지상 구조물이 파괴되면서 아예 갇혀서 죽을 수도 있다.
적의 첫 번째 공격이 그치면 귀가해 생존배낭을 챙겨 피란을 가야 한다. 이때 차량 이동은 불가능하다. 전시 작전계획에 따라 모든 민간 차량 운행은 통제를 받는다. 특히 서울 일대는 차량 진출입을 막는다. 오토바이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포장 도로 등을 지날 수도 있고 연료 문제도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자가 발전이 가능한 전기 자전거가 가장 나을 수 있다.
어디로 피난을 떠날지, 언제까지 도착할 수 있는지도 미리 생각해 놓는 게 좋다. 가족이 각각 생존배낭을 갖고 이동하고, 피란길이 막힌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루 30km 이동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서울 용산구를 기준으로 하면 경기 광주, 성남, 안양, 군포 정도 거리다. 사흘 동안 이동한다면 충북 진천, 음성, 충주, 충남 예산, 서산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다. 전기 자전거로 이동하면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겠지만 부산이나 남해, 거제, 통영까지는 무리다.
이처럼 현실적인 요소를 고려해 미리 준비를 해놓으면 유사시 생존 가능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한반도 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크게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격이나 미사일 공격은 국지적이고 한시적이다. 반면 북한군은 전방 지역을 겨냥해 장사정포 수백 문을 배치해 놓고 있고, 탄도미사일 1400여 발과 수백 발의 초대형 방사포로 제주를 포함에 우리나라 전역을 겨누고 있다. 따라서 생존배낭 준비, 2단계 피란 계획을 미리 세워두지 않는다면 전쟁 발발과 동시에 큰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