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국 150여 편 출품
무대서 이란 히잡 시위 관련 퍼포먼스도
홍콩 상황·인도 카스트 제도 다룬 영화 등 수상
11월 18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자유(Liberty)와 인권(Human Rights)을 주제로 하는 제2회 리버티 국제영화제(LIMF : Liberty International Movie Festival) 개막식이 열렸다.
리버티 국제영화제는 지난해 대한민국 최초로 지자체 지원 없이 시민들의 성금으로 운영되는 ‘시민 참여형’ 국제영화제로 출범해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덕영 감독은 “지난해 코로나 정국에도 불구하고 350편이 출품돼 심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으며 “올해 참가 기준을 높였는데도 40여 개국에서 150여 편의 영화가 들어왔다”고 소개했다.
김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유’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삭제하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뒤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는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리버티 국제영화제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자유의 가치를 되새기고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북한인권시민연합 김석우 이사장은 축사에서 “북한에서 200만 명이 굶어 죽은 것은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며 “영화를 통해 소중한 자유의 가치를 전하는 리버티 영화제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우수 장편 영화상은 자유를 상실한 홍콩의 현재 모습을 담담하게 그린 ‘환적항구(Entrepot)’가 수상했다. 영화를 연출한 호이 킷 청(Hoi Kit Cheung) 감독은 이날 최우수 신인감독상도 수상해 2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호이 킷 청 감독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2년 동안 전 세계의 시선이 홍콩에 집중돼 있었다”고 운을 뗀 뒤 “영화를 통해 작년 홍콩의 분위기와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홍콩에서 영화 심의 규정이 달라진 후 대만 양안 관계 등 사회적 의제를 다룬 영화들은 삭제 요청을 받고 있다”면서 “제 영화가 큰 상을 받았지만, 홍콩에서 상영할 수 없다는 건 모순”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사회 발전의 중요한 요소인 자유의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며 “이 영화를 힘없는 홍콩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최우수 감독상은 ‘누브부의 새로운 선택(NENU CARE OF NUVVU)’을 연출한 인도의 사가 토마스(Saga Thomas) 감독에게 돌아갔다. 카스트 제도 아래서 사랑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아픔과 그들의 구원을 다룬 이 영화는 카스트 제도의 불합리성과 더불어 ‘명예 살인’ 등 가부장적 질서가 몰고 오는 문제점을 고발한 작품이다.
자신이 수상자로 선정된 사실도 모른 채 리버티 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토마스 감독은 에포크타임스에 “인도 사람들이 한국 영화, 한국 문화를 아주 좋아한다”며 “한국에서 이 상을 받은 것은 큰 영광이고 매우 자랑스럽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인도에 여전히 카스트 제도가 있다는 건 우울한 일”이라며 “카스트 제도는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하고 특히 직업에 대한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면서 “다음에는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자신보다 타인을(Others before self)’은 미국인 세스 맥클렌(Seth McClellan) 다큐멘터리 감독이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를 어린 학생들의 시선으로 조망한 작품이다. 말과 문자를 빼앗긴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오랜 시간 관찰해 만든 영화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외에 주요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
▲최우수 단편영화상 ‘마야 엘런’(이스라엘 요니 모데체이 감독) : 디지털 현대 사회 속에서 점점 무기력해져 가는 대중의 존재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
▲최우수 단편 다큐멘터리영화상 ‘탄자니아의 여성 할례와 맞서 싸우는 디지털 챔피언들’(탄자니아 스티븐 허뷔 감독) : 여성 할례가 용인되는 대표적 나라 탄자니아를 배경으로 여성 할례가 지니고 있는 반인권적인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최우수 프로듀서상 ‘우리는 저 깃발 아래 살 수 없다’(이탈리아 루치오 라우겔리 감독) : 2021년 8월 민간 정부를 전복하고 20년 만에 국가를 장악하고 여성, 시민 사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탈레반 이야기
▲최우수 여우주연상 ‘그녀가 주인공이다’(벨기에 사라 카를롯 제이버 감독)
▲최우수 남우주연상 ‘헌터 랩소디’(대만 차이 차이 감독)
▲최우수 편집상 ‘환희의 노래’(이탈리아 감독 리아 벨트라미) :인도 캘커타 빈민가에서 꿈을 좇아 자신을 구원하려고 애쓰는 세 소녀 이야기
▲최우수 각본상 ‘공기의 벽’(중국 유 야오 감독) : 중국 내 거주하는 탈북민들의 자유를 향한 도전과 열망을 그린 작품
이번 영화제에선 ‘종교와 자유’ 주제로 콘퍼런스도 개최됐다. 최근 이란에서 벌어진 ‘히잡 시위’를 화두로 자유를 지키려는 이란 여성들의 삶과 종교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이란 히잡 시위를 이끈 박씨마 목사는 “우리는 빵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말했다. 1990년대 한국에 귀화한 이란 출신 박씨마 목사는 이란에서 벌어지는 반(反)인권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여성이 머리카락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죽어 나간다면 그런 정권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이란인 유학생들이 박 목사와 함께 무대에 올라 여성의 자유를 뺏는 히잡 착용에 반대하며 히잡을 벗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