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한국인에게 여전히 낯선 이름 정율성. 그는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 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후 해방 후 잠시 ‘북한인’이 됐다, ‘중국인’으로서 삶을 마감한 ‘한인(韓人)’ 음악가이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제2국가(國歌)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을 작곡하여 녜얼(聶耳)·센싱하이(冼星海)와 더불어 중국 현대 음악계 3대 악성(樂聖), 중국 군가의 아버지로도 꼽힌다. 생애 동안 360여 곡을 남긴 그의 노래를 14억 중국인 중 10억 이상이 알고 있다.
정율성의 삶을 두고서는 항일(抗日) 독립운동가라는 평가와 평생을 북한·중국을 위해 헌신한 공산주의자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에포크타임스는 5회에 걸쳐 정율성의 행적과 논란을 다룬다.
지난 10월 23일부터 29일까지 ‘빛고을’ 광주에서는 1주일간 ‘정율성 음악축제’가 개최됐다. 광주광역시 주최, 광주문화재단 주관으로 열린 음악제는 광주 출신 음악가 정율성(鄭律成) 기념행사 중 하나이다. 행사를 주관하는 광주문화재단 ‘정율성 음악축제’ 홈페이지는 정율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3억 중국인의 가슴마다 아로새겨진 ‘중국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 정율성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조국인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중국의 200만 조선족 동포들에게는 추앙을 받고 있는 작곡가다. 정율성은 조선인이면서도 1937년 이후 중국에서의 항일투쟁과 탁월한 음악적 업적으로 최고의 중국 음악인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 첫 프로그램과 2000년 6.15 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만남에 울려 퍼진 곡이 모두 그의 곡이었다는 사실은 중국과 북한에서의 그의 음악적 위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홈페이지 공식 소개에 따르면 정율성은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북·중 양국에서 추앙받는 음악가이다. 다만 한국인들에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각종 미디어에서 정율성을 재조명하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2020년 제작된 영화 ‘경계인(境界人)’이 2021년 8월 12일부터 IPTV(KT, LGU+, BTV)와 OTT에서 상영 중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으로 태어나 ‘중국인’으로 삶을 마감한 정율성의 중국 활동을 다룬 영화이다. 뮤지컬 영화 ‘투란도트: 어둠의 왕국’ 등을 연출한 재(在) 호주 감독 김시우가 메가폰을 잡았다. 사단법인 정율성 기념사업회, 중국 현지 영화법인 PNK픽쳐스&미디어, 호주 영화사 나인테일스(9 tails films Australia)가 공동제작했다.
영화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경계, 머나먼 나라’도 동시 상영되고 있다.
고향 광주에서는 독립운동가, 위대한 음악가
영화 개봉 후, 정운영 광주광역시 남구청 문화관광과장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성악 정율성’ 기고문을 광주 지역 신문 ‘광남일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글에서는 “정율성은 중국의 영웅인 동시에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명문가 이회영 육형제는 조국이 망하자 가산을 정리해 마련한 600억 원으로 서간도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한 장교들 대부분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다. 해방 후 우리는 이회영 육형제를 통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배웠다. 정율성 삼형제도 비록 노선이 달랐지만 이회영의 육형제와 같은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2022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해서 정율성의 삶을 다룬 또 다른 영화 제작 소식도 전해졌다.
10월 11일 KBS는 ‘한·중이 주목한 ‘이 사람’… 반중 감정 속 합작, 어떻게 될까?’ 제하에 “한국 제작사 미래숲미디어문화주식회사와 중국 6개 제작사 합작으로 인물 전기 영화 ‘정율성’, 30부작 TV 시리즈 ‘열혈군가’ 등을 제작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KBS는 “영화 ‘정율성’은 한국인 배우가 주인공을 맡고 촬영은 중국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날(8월 24일)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에서 ‘한한령(한류 금지)’이 시작된 뒤 사실상 한중이 처음으로 힘을 합쳐 제작하는 영화이다”라고 전했다.
같은 날 SBS도 ‘한중 합작 영화 ‘정율성’ 제작…‘한한령’ 풀리나’ 제목으로 비슷한 소식을 전했다.
2022년 한중 합작 영화 상영 예정,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반대 청원
뉴스 보도 이틀 뒤인 10월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산당 영웅 정율성 영화 제작 및 상영을 반대합니다’ 청원이 게시됐다.
“공산주의 영웅 정율성의 영화를 한중 합작으로 제작하고 상영하는 것을 반대한다” 주장한 청원인은 다섯 가지 반대 이유를 제시했다.
정율성은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하고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정율성의 항일운동은 조선의열단 활동시 난징(南京)의 구러우(鼓樓)전화국에서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했다는 기록 외에는 별다른 특이 기록이 없다. ▲항일 운동 보다 더 큰 업적은 중국 공산당과 북한 공산당을 위한 음악을 작곡한 것이다. ▲6.25전쟁에 중공(中共) 인민지원군 일원으로 참전하여 전선에서 중공군과 북한 인민군을 지원 했었고, 중공군 인민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했고 김일성이 예찬했다. ▲정율성을 위한 영화를 한중 합작으로 만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사상을 지우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심기 위한 수단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고향 광주에서는 항일운동가·독립투사로 추앙하며 기념 음악제까지 개최하고 한중 합작 영화 제작까지 추진되는 정율성에 대한 극명하게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율성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평전, 논문, 기사, 자료를 바탕으로 정율성의 삶을 추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