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아로 자랄 확률 1%’ 낙태 권유받은 아기
어느덧 어엿한 6살 꼬마 숙녀로 성장 “기적”
여느 신생아의 10분의 1 몸무게인 364g 초미숙아로 태어난 나오미 바커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살아남기 위한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의료진은 모두 아이에게 희망이 없다고 걱정하며 우회적으로 낙태를 제안했지만, 아기의 부모는 단호했다. 신(神)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부모는 기도했다.
그 후 6년 뒤, 여섯 살이 된 나오미는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여느 아이들처럼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네바다주 리노에 살고 있는 안젤라-마이클 바커 부부는 임신 22주 차 때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아가 발육 부전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인들은 부부에게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마이클은 에포크타임스 영상 인터뷰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우리가 리노 병원에서 들었던 것과 거의 유사한 말을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의사들은 아이 몸무게를 약 350g으로 추정했고, 태어난 후에도 살아남으려면 대략 500g은 더 자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엄마 안젤라는 임신 합병증인 자간전증 초기 진단을 받았고, 의사들은 낙태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언제든 일찍 끝낼 수 있다’며 우회 제안했다.
마이클은 “당시 아내는 임신 24주 차였고, 그 시점 이후로 낙태를 하는 건 불법이었다”면서 “하지만, 의사들은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안젤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아기의 발길질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같았다”며 “부부가 함께 의논해 낙태는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산모와 아기는 임신 28주 차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버티지 못했다. 2015년 7월 엄마 안젤라의 자간전증은 점점 악화됐고 아기의 심장 박동은 불규칙해졌다.
의료진은 안젤라를 인근 전문시설로 옮겼고 그녀는 임신 25주 차에 제왕절개로 딸 나오미 바커를 낳았다. 중간 이름은 기쁨을 뜻하는 ‘조이(Joy)’로 지었다.
16명의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는 너무 작아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조용히 태어났다. 의사들이 아기의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 기도 삽관을 시도했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수술방은 환희로 가득 찼다.
나오미의 두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고, 몸무게는 364g 미만이었지만, 아기는 살아 있었다. 나오미는 신생아 집중 치료 시설로 옮겨졌다. 부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한숨 돌리는 것도 잠시, 의사들은 아기가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1% 미만”이라며 청각소실증과 시각소실증, 뇌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이어 “생후 24시간이 아기에게 가장 큰 고비”라고 말했다.
엄마 안젤라는 답답한 마음에 소셜미디어에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아기 없는 병실에 대기하면서 나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을 위한 모임이 있는지 페이스북에서 찾아봤다”고 말했다.
마침 여러 사람에게서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었고 이는 용기를 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안젤라는 “그때의 경험으로 나 역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게 됐다. 어떤 부부는 내 조언을 듣고 용기를 내 낙태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도움이 필요한가? 사람들이 당신을 도울 수 있도록 손 내밀어달라. 사람들은 당신을 돕고 싶어 한다”며 “만약 당신에게 아픈 아이가 있다면, 며칠에 한 번씩은 삶과 죽음의 무게에 짓눌리게 될 것”이라며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조언했다.
안젤라는 출산 후 이틀 만에 처음으로 딸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간호사들 도움 덕분에 약하디약한 아기와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24시간의 고비를 넘긴 것이 끝은 아니었다. 아기는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입원한 142일 동안 두 번의 장 치료와 탈장 수술, 폐허탈, 만성 폐질환 등을 겪었다.
안젤라는 “의사 중 한 명은 무신론자였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기도하라. 효과가 있을 테니 계속 기도하라’고 조언했다”고 회상했다.
생후 채 반년도 안 되는 기간에 남들 평생에 걸쳐 겪을 만한 위기를 경험한 아기 나오미는 그 모든 고난을 견디고 추수감사절에 맞춰 퇴원했다.
안젤라는 “나오미가 퇴원한 날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말했다.
나오미가 집으로 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 간호사 캐리 아치는 “340g짜리 아기가 이런 수술을 잘 버틴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감격했다.
눈물이 고인 의료진들의 환송을 받으며 집으로 향한 나오미는 이후 약 7개월 동안 몸무게가 점차 증가하고, 산소 탱크와 작별하는 등 삶의 중대한 변화를 차례대로 겪었다. 그리고 마침내 삶은 좀 더 편해졌다.
아빠 마이클은 이 과정을 세세하게 블로그에 기록했다. 사랑하는 딸의 성장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방문 횟수가 금세 증가하게 되면서, 이 블로그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간이 됐다.
나오미는 식물과 동물 같은 생명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고, 미국의 ‘낙태반대 운동’(March fof Life) 행사가 열린 날에는 우연히도 첫걸음마를 뗐다. 가족들은 이러한 나오미의 첫 번째 경험들을 축하해 줬다.
안젤라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딸의 첫 번째 경험에 대해 크게 호들갑을 떨었다”며 “딸은 생명을 만들 순 없지만, 걸을 순 있었다”고 말했다.
곧 있으면 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나오미는 오빠처럼 글자를 읽고 쓰며, 심지어 스노우보드도 탈 수 있는 평범한 아이로 성장했다.
치킨 너겟을 좋아하고 농담도 많이 하며, 활기차게 지내고 있다.
처음으로 유치원 가는 날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걸어 들어가는 용감함을 보이기도 했다.
엄마 안젤라는 “미국 최고의 의사들은 딸에 대해 잘못 판단했다”며 “그러므로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이되, 그들이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빠 마이클은 “딸의 희망적인 성장 이야기는 신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나오미가 정상적인 아이로 자란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