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주) 중국총영사관의 항의 및 압력 행사가 사실이라면, 중국 정부의 내정간섭이며, 홍콩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마저 힘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오만한 패권주의이다.”
‘세계 인권의 날’인 지난 10일 오후 광주시 동구 금남로 YMCA 백제관에서 열린 전남대 ‘홍콩 시민활동가 초청 간담회’ 대관취소 기자회견에서 광주 시민단체 대표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억압에 맞선 시민들’이란 제목으로 홍콩시민과의 간담회를 열려던 광주인권회의 등 9개 단체는 행사장 대관이 연거푸 취소되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대관 취소 배경에는 주광주 중국총영사관의 압력이 가해진 정황이 제기됐다.
광주인권회의 황법량(24) 간사는 “(전남대) 철학과가 갑작스럽게 취소를 통보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중국인 유학생들에 의한 폭력 사태’가 걱정된다는 근거를 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주 광주) 중국총영사관이 항의 및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실토했다”고 밝혔다.
행사 5일 전 대관 취소…무슨 일 있었나?
주최 측은 이날 전남대 철학과가 관리하는 ‘이을호 강의실’에서 간담회를 열 계획이었다. 11월 26일 철학과 학과장 직권으로 승인된 대관이었다. 하지만 9일 뒤인 12월 5일, 철학과 학과장 A 교수는 광주인권회의 측에 전화로 “형식상의 문제가 발견되어 대관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행사를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
대관 취소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A교수는 “(주광주) 총영사가 와서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면서, “(행사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들도 책임을 못 지고, (중국인 유학생들이) 통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대관 취소 배후에 주광주총영사관의 직접적인 압력 행사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대학본부에서는 학교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에 이걸 그대로 승인하지 못한다”라면서, “(대관 문제를) 총장이 직접 인문대 학장한테 얘기해서, 학장은 지금 나한테 큰일 났다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관 취소에 총장의 개입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A 교수는 대관 취소에 있어 인문대학이나 총장의 지시가 아니라 철학과 학과장 개인의 판단으로 대관을 취소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관련 보도 기사가 나오면서 해명은 달라졌다. 12월 8일 전남대 측은 대변인 보도자료에서 “인문대학에서 논의하여 취소를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철학과 측은 “(중국총영사관의 압력에 대한) 발언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이튿날 광주 MBC와의 인터뷰에서는 “설득을 위해 자신이 임기응변으로 말을 지어냈다”며 해명 내용을 뒤집었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 영사관 직원들이 전남대를 찾아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광주 MBC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의 전남대 관계자는 “중국 영사관에서 전남대학교 국제협력실을 찾아와 중국 유학생들이 간담회를 몸으로라도 막겠다고 말하자, 학교 측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소 옮긴 행사, 하루 전 또 다시 대관 취소
우여곡절 끝에 간담회 장소는 전남대에서 옛 전남도청 별관으로 대체됐다. 주최 측의 협조 요청으로 5.18 재단에서 장소를 대관했다. 그러나, 5.18 재단은 행사 하루 전 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ACC)으로부터 사용 불가를 통보받았다.
5.18 재단 측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ACC 측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행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ACC 측에서 윗선으로부터 (대관 취소 관련)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또 다른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라고도 했다.
ACC의 상위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이다. 문체부 직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행사가 열린다는 건 처음 알았고, ACC도 국가기관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ACC측은 10일 해명 자료에서 “홍콩 시민활동가 초청 간담회 개최를 위한 시민단체의 대관 요청을 취소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취소·불허·통보 등 일체 행정 행위가 없었다”고 밝혔다.
간담회 주최측은 “옛 전남도청 별관은 5.18재단을 비롯한 5.18 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사용해왔기에 사용 불가는 전례를 찾기 매우 힘들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책임 떠넘기기를 중단하고 이번 결정의 근거와 주체를 명백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시민-정부 갈등 뒤에는 ‘중국 총영사관’
홍콩 관련 간담회는 5.18 민주 항쟁의 시발점인 전남대학교, 민주 항쟁의 최후 항쟁지인 전남도청에서도 불발되고 YMCA 백제관에서 가까스로 열렸다.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서 ‘민주화’를 이야기하려던 시민단체들은 행사 하루 전날까지 장소를 찾아 헤매야 했다.
광주인권회의 측은 대관 취소의 시작이자,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내부 혼란의 근원이 된 (주광주)중국총영사관의 압력을 질타하고, “4월 1일 명예광주시민증이 수여된 쑨시엔위 (주광주)중국총영사에 대한 명예광주시민증 박탈”을 광주시청에 요구했다.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은 “중국 영사관에서 한국에 국립대학인 전남대 측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일종의 사회문제를 모여서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을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다”라며, “국민의 기본권행사에 대해서 영사가 문제 제기한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충분히 볼 만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국립대 총장은 대한민국 특히 거점 국립대학교이기 때문에 국립대 총장은 장관급 인사”라며, “우리 정부의 장관급 인사가 중국 영사의 압력에 반응한 건 매우 문제가 있다”면서, “국립대학은 시민들의 재산이고, 국민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할 자유가 있다며 장소 대관 취소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전남대학교에 게재했다가 훼손된 홍콩 시위 지지 현수막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던 김동규(24, 목포) 씨는 “훼손된 현수막은 광주가 홍콩에 연대했다는 준엄한 증거이고, 훼손은 표현의 자유가 도전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면서, “이번 시민단체들의 간담회를 중국영사관에서 외압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자 주권침해”라고 주장했다.